축구 종주국은 영국이지만 제일 잘하는 나라는 브라질이듯, 한국은 라면에 있어 종주국 일본을 훨씬 뛰어넘었다. 하지만 한 획만 다른 ‘라멘’은 또 다른 이야기다. 일본의 라멘은 면 하나만 해도 일본, 호주, 프랑스 각 나라의 밀가루로 실험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두께와 형태를 가지고 수백 가지의 조합을 만들어 낸다. 돼지, 닭, 해산물의 기본 육수를 섞고 졸이고 따로 담고 위에 향신 기름을 붓는 등 국물을 입에 머금었을 때의 무게감과 비강으로 느껴지는 향에 이르기까지 라멘을 먹는 모든 과정을 통제하려 한다.
한국의 라멘은 마니아 특유의 비장함은 오히려 증폭되었지만 그 부작용인 불친절함이 만만치 않다. 잦은 부정기 휴무, 마치 변덕스러운 예술가처럼 기분을 파악하기 힘든 접객은 한국 라멘집의 특징이 되었다. 연예인 사생 팬이라도 된 듯 소셜미디어를 매번 확인하지 않으면 라멘 한 그릇 먹기도 어려운 지경이니 먹기도 전에 기분이 먼저 상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라멘집 밀도가 제일 높은 합정동·망원동에 들어섰던 때는 비가 한참 내린 다음 날이었다. 파란 하늘이 깨끗하게 펼쳐져 서울 한복판 같지 않았다. 망원시장에는 허리가 반쯤 굽은 노인과 목까지 올라온 문신을 한 청년이 같은 길을 걸었다. 시장은 인파와 좌판이 한데 엉켜 어떤 군락을 이뤘다. 시장에서 샛길로 빠져 또다시 걸었다.
라멘집은 건물 1층에 있었지만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건물 축을 세로로 가로지르며 계단 밑으로 얇게 들어선 라멘집 이름은 ‘희옥’이었다. 일렬로 늘어선 카운터 좌석이 전부였다. 주방은 카운터 너머로 좁게 펼쳐졌다. 메뉴는 어차피 ‘보통’과 토핑이 후하게 올라간 ‘특선’뿐이라 복잡할 일은 없었다. 라멘은 간을 하는 방법에 따라 소금, 간장, 된장으로 나뉜다. 이 집은 일본 말로 소금을 뜻하는 ‘시오’를 메뉴 앞에 붙였다.
그다음은 국물이다. 닭 육수를 쓴 이 집의 국물은 약간 무게감이 느껴지지만 여전히 산뜻했다. 여기에 간장이 아니라 소금 간을 하여 그릇 바닥이 훤히 보였다. 이제 문제는 닭 냄새다. 국물의 무게감은 기름에서 나오지만 그 기름에서 보통 잡내가 낀다. 닭뼈도 마찬가지다. 닭뼈가 깨지거나 오래 우려내면 역시 산뜻한 국물은 어렵다. 이 집 닭 육수는 무게감과 산뜻함, 모순된 목표 중간 어딘가에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고 있었다. 통밀을 섞어 뽑은 얇은 면발은 물을 적게 써서 반죽했고 짧게 삶아 단단했다. 면발은 워낙 취향을 많이 타지만 이렇게 힘이 실린 국물과 함께 먹으려면 이 정도는 단단해야 할 성싶었다.
‘특선’ 메뉴에는 돼지 목살, 등심, 그리고 닭 목살까지 세 가지 고명이 올라갔다. 닭 목살은 수증기로 가볍게 데운 후 토치로 불을 쐬어 맛을 입혔다. 돼지 등 지방이 붙은 등심은 저온 조리하여 핑크빛이 살짝 남아 있었는데 얇게 저미고 곱게 접어 면 위에 올렸다. 목살은 살코기 부분만 점잖게 삶아 냈다. 동그란 대접 위에는 점과 선, 면으로 구성된 칸딘스키의 그림처럼 가느다란 면과 색색의 기하학적 고명들이 저마다 정확한 자리를 잡았다. 정중동의 진중한 국물이 비린 맛 없는 말끔한 이음새의 질감을 만들어냈고 단단한 면발과 제각각 다른 부드러움을 지닌 고명들이 이어서 끊김 없는 맛의 결을 이어나갔다.
부지런한 주인장은 마르고 단단한 몸으로 독일 군인처럼 절도 있게 움직이다가 손님을 마주할 때가 되면 또 수줍어져서 희미한 경북 사투리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이었다. 뒤로는 물 끓는 소리가 기관차가 달리듯 규칙적으로 숨을 내쉬었고 또 그 뒤로는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의 리듬이 공간 전체를 단단히 받치고 있었다. 누구에게는 그저 라멘 한 그릇일 뿐이다. 그러나 젊은 주인장에게는 그 한 그릇이 하나의 세계이고 인생이며 매일매일 부딪히는 고난이자 운명 같은 비극일지도 모른다. 끝내 웃고 마는 그 마음은 절대 지는 법이 없을 것이다.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삶은 질 수 없다. 지려야 질 수 없다. 그런 이가 만드는 음식도 마찬가지다.
#희옥: 시오라멘 1만원, 특선시오라멘 1만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