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오늘 ‘노 웨딩(결혼식 없는 결혼)’한다고 계좌 번호 적힌 청첩장을 주더라고요. 예식장에 초대한 거라면 못 가는 게 미안해서라도 줘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노 웨딩인데 굳이 축의금을 줘야 하나? 안 주기도 그래서 5만원 했는데 일종의 섭섭함과 함께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여러분이라면 축의금 하실 건가요?”

Re: “축하 인사만 할 듯요. 무슨 수금하는 것도 아니고.”

Re: “어렵네요. 제 결혼식에 왔었다면 돌려준다는 마음으로 보내겠지만.”

Re: “친한 사이면 제 결혼 여부를 떠나서 축하의 의미로 줄 것 같아요!”

Re: “축의금 받으려면 적어도 식사 대접하면서 이벤트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앙금이 돼버린 축의금

일러스트=김영석

최근 한 결혼 준비 정보 카페에 올라온 게시글과 댓글, 다이내믹 코리아의 신(新)결혼 풍속도나 다름없다. 결혼식은 건너뛰고 내 집 장만에 집중하는 이른바 ‘노 웨딩족’이 늘고 있다. 최소 규모의 ‘스몰 웨딩’을 넘어 웨딩마치를 아예 생략하는 것이다. 딱 하루 동안의 예식 비용만 수천만 원이 우습기 때문이다. 신혼여행만 다녀온 뒤 혼인신고 하는 실속파, 그래도 결혼은 알려야겠기에 청첩장을 보낸다. 이제 고민의 시간이 찾아온다. 축의금을 보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친구가 혼전 임신으로 결혼식 생략하고 혼인신고만 하고 살겠다는데 축의금을 줘야 하나 궁금해요.” “모바일 청첩장에 부모님 계좌 번호만 넣을 생각인데요, 결혼식도 안 하면서 계좌 번호 보낸다고 욕하는 분들 있을까 봐 고민돼요.” “제가 노 웨딩으로 결혼했는데 축의금 주지 않은 직장 동료가 이번에 결혼한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사연은 늘고 있다. 축하하는 뜻으로 주는 돈, 축의금은 그러나 결혼 예식 비용을 메우는 실용적 용도에, 복잡다단한 관계의 징표 기능도 한다. 누가 얼마를 냈는지 개인 장부에 기록되고, 이후 관계 재정립에도 활용된다. 회사원 한모(37)씨는 “축의금 액수를 보고 ‘우리가 이 정도 사이였나’ 다시 생각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국룰 10만원’ 깨져… 호텔은 12만원

그래픽=송윤혜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축의금 평균 금액은 1994년 2.8만원, 2001년 3.6만원, 2005년 4.2만원, 2013년 6만원, 2019년 7.7만원 순으로 점진적 증가세를 보여왔다. 물가가 반영돼 있다. 요즘엔 어떨까? 지난해 KB국민카드 설문 조사(400명)에서는 친한 친구나 직장 동료 축의금은 평균 17만원, 4촌 이상 친척은 평균 26만원이라는 응답이 나왔다. 지난 4월 신한은행이 발표한 설문 조사(1만명) 결과에서는 평균 11만원이었다. 식장에 참석하지 않고 봉투만 보낼 경우엔 8만원. 예식 장소가 호텔이라면 축의금은 평균 12만원으로 올라갔다. 20만원을 낸다고 응답한 비율이 15.6%에 달했다. 비싼 호텔 밥값을 고려한 것이다.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경우 ‘식충이’ 취급을 받지 않으려 돈만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조사 비용에 대해 20·30세대의 77.7%가 “사회적으로 합의된 금액이 있다”고 응답했다. 40대 이상의 응답률(67.4%)보다 높았다. 젊을수록 그만큼 더 눈치를 본다는 뜻이다. 보통은 “내가 받은 만큼 준다”는 식의 기브앤드테이크, 품앗이 개념이 강하다. 다만 회사원 허모(37)씨는 “내가 받았던 액수 그대로 주자니 물가 상승률이 마음에 걸려 요새는 웃돈을 붙여 준다”면서 “주면서도 섭섭해할까 봐 고민해야 하는 게 맞나 싶다”고 말했다.

◇“나는 돌려받을 수 있을까”

초대장과 케이크 모양의 '비혼 선언' 금속 배지. 온라인 펀딩으로 판매됐다. /텀블벅

결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예 비혼(非婚)을 선언하기도 한다. 그냥 혼자 살겠다는 것이다. 다만 뿌려둔 축의금은 이제 회수가 불가능해진다. 아니다. 방법이 있다. ‘비혼식’ 혹은 ‘싱글 웨딩’을 여는 것이다. 지난해 모바일 금융회사 토스가 주최한 에세이 공모전에서 뽑힌 ‘비혼주의자의 축의금’ 이야기를 소개한다. 비혼을 알리는 작은 잔치를 준비하고, 식기 세척기 같은 선물 목록을 모바일 초대장에 적어 하객들에게 보냈다는 사연. “‘이거 청첩장을 가장한 위시 리스트 아냐?’ 청첩장을 받아 본 동생이 핀잔을 줬지만 ‘축의금을 얼마나 준비해야 할지’ ‘언제 봉투를 건네야 할지’ 소모적인 눈치 게임을 하게 만드느니 뻔뻔스러운 게 낫다고 생각했다.”

기업들도 ‘비혼 축하금’ 마련에 나섰다. 결혼하는 사람만 축의금이라는 사내 복지를 누려서는 안 된다는 공정성 목소리가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1월 비혼 선언을 한 직원에게 기본급 100%와 유급 휴가 5일을 주는 ‘비혼 선언 지원 제도’를 도입했다. 약 400만원에 해당한다. 시행 한 달 만에 6명이 신청했다고 한다. SK증권도 종전 결혼 축의금과 같은 비혼 축하금 100만원과 유급 휴가 5일을 주기로 했다. 사기업에 이어, IBK기업은행 같은 공공기관까지 이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면서 논란이 되는 형국. 축의금과 달리 ‘생활 원조’ 성격이 없는 돈인 데다 자칫 ‘솔로 장려’로 비칠 우려 때문이다.

◇돈만 내라고? 카드 결제 할부까지

“‘저희 의견에 따라 간소하게 식을 진행합니다’ 청첩장에 이런 식으로 쓰여 있고, 결혼 날짜와 장소는 없더라고요. 근데 계좌 번호는 적혀 있었어요. 결혼식은 간소하게 할 거라 당신을 결혼식에 초대하진 않을 거지만 축의금은 내세요, 이건가요?” 지난 4월 한 30대 회사원이 올린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달궜다. 직장 상사가 자식 결혼 소식을 전한 모바일 청첩장이었다. 괜히 화를 돋울 수 있는 청첩장, 그렇다 보니 “청구서 느낌이 나지 않는” 청첩장 인사말도 나돈다. 미혼 직장인 박모(38)씨는 “스몰 웨딩 청첩장을 받으면 ‘돈만 내라’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면서도 “정성과 예의를 갖춘 청첩장을 받으면 또 마음이 달라지더라”고 말했다.

한 남성이 '무인 조의금 키오스크'로 조의금을 납부하고 있다. 특이사항은 카드 결제 할부가 된다는 점이다. 6개월까지. /연합뉴스

인생은 경조사의 연속. 축의만큼 조의(弔意)도 예민한 문제다. 특히 은퇴해 벌이가 일정치 않은 경우 더 부담이 크다. 최근 화제가 된 서울 연세대 신촌장례식장 ‘무인 조의금 납부기’에는 특별한 기능이 하나 있다. 조의금 할부. 장례식장 호실을 선택한 후 납부자 이름과 조의금을 입력하는 방식인데, 최장 6개월까지 카드 할부가 가능하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구정우 교수는 “빚까지 내가며 조의금을 내고 축의금에 스트레스 받는 건 결국 관계에 따른 액수가 획일화돼 있기 때문”이라며 “각자의 처지를 이해하는 분위기가 생겨야 이런 상부상조 문화가 억압으로 인식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