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2년 전이다. 그 이후 어머니는 집에서 밥을 거의 하지 않는다. 같은 집에 있지 않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어머니가 쌀을 사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을 보아 거의 확실하다. 대신 어머니는 빵을 찾는다. 홀로 밥물을 안치고 불을 올려 국을 끓이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사정이 어머니만 겪는 것은 아닌 듯싶다. 일본에서도 빵 소비액이 쌀을 뛰어넘은 것이 벌써 2010년의 일이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하여 소비액으로 치면 2015년 빵이 쌀을 뛰어넘었다. 나도 전보다 훨씬 자주 이런저런 곳에서 빵을 사 놓는다. 어머니 때문이다. 평생 그랬듯 어머니는 맛을 가지고 타박을 주지 않는다. 당신에게는 그저 싸고 적당하면 된다는 어머니 마음이 나이가 들수록 더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괜히 서운하고 씁쓸하기도 한 것이었다.
상도동 성대시장 근처에 갔을 때만 해도 이 동네에 빵집이 있을 성싶지 않았다. 시장에는 고기를 썰고 생선을 토막 내는 손목 굵은 상인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성대시장 반대편 쪽으로는 5층을 넘지 않는 무표정한 건물들이 이끼가 긴 거목처럼 덤덤히 서 있었다. 그 도로가 살짝 고개를 틀며 꺾이는 곳에 ‘양씨네제빵소’라는 집이 보였다. 뜨내기 손님이 오기 힘든 곳이었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빵과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편안한 표정은 단골티가 났다. 크지 않은 가게의 절반 이상은 주방이었다. 오븐 사이 비좁은 틈에 주인장이 혼자 서서 반죽을 넣고 빵을 꺼냈다. 손이 빠르고 붙임성 좋은 종업원 하나가 카운터에 서서 손님을 받았다. 매장 앞쪽에는 통통한 베이글이 있었다. 본래 기름기 없이 밀가루, 소금, 물, 이스트만 써서 만드는 베이글은 이에 착착 감기는 쫀득한 식감을 지녔다. 이 집 베이글은 통통한 외관에 밀가루의 고소한 맛이 은근히 느껴지는 담백한 맛을 지녔다. 크림이든 잼이든 어떤 것도 수더분하게 함께할 수 있을 듯했다.
매대 위쪽에는 짙은 갈색을 한 피낭시에가 놓여 있었다. 프랑스어로 금융을 뜻하는 말에서 비롯된 피낭시에(financier)는 실제로 금괴 모양이 특징이다. 버터를 태우듯 끓여 반죽에 섞어 만드는데 덕분에 버터의 향이 극대화된 과자이기도 하다. 한입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향이 심상치 않았다. 알고 보니 이 집은 프랑스산 버터만 따로 구입해 쓴다고 했다. 이런 작은 곳에서 쓰기에는 싸지 않은 종류의 버터였다. 버터를 거의 밀가루만큼 집어 넣어 굽는 브리오슈(Brioche) 식빵은 먹기 전에도 버터의 향이 느껴졌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당신은 내 빵의 버터이고 내 삶의 숨결이야.” 프랑스에서 버터는 단순 식재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뭐랄까? 맛의 정점, 혹은 모든 맛이 지향해야 할 무언가 정도일까? 심장이 멎을 정도로 듬뿍 넣은 버터의 밀도는 그 자체로 맛과 향이 되어서 혈관 속으로 스며들었다. ‘바질 크런치’는 도넛 모양에 가로로 잘라 바질 크림을 발랐다. 언뜻 단단해 보였지만 씹는 순간 과자처럼 부서져 내렸다. 여기에 이국적인 바질 크림이 어우러져 산뜻한 팝 음악을 듣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단추마냥 낮게 모양을 잡지 않고 높게 쌓아올린 이 집의 에그타르트는 보는 순간 ‘진품’이란 느낌이 왔다. 검은색에 가깝게 강하게 구워 타르트의 고소한 맛이 한계치 끝까지 올라왔다. 달걀 노른자와 우유, 설탕 등을 졸여내듯 끓여 익힌 크림은 활화산에서 흘러내린 마그마마냥 끈적하고 농밀했다. 오래된 성벽처럼 무너져 내리는 타르트와 그 속의 노란 크림은 어떤 도덕관념도 무시하는 쾌락주의의 현신(現身) 같기도 했다.
이 집을 나설 때는 빵을 양손 가득 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왜 이리 빵을 많이 샀냐’며 타박 아닌 타박을 했다. 나는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는 재료와 솜씨를 아끼지 않은 빵이어야 했다. 홀로 있는 방, 아무도 없는 식탁에 앉아 흔한 빵을 먹기에 어머니의 인생은 소중하기 때문이었다. 한번도 당신의 인생에 불평을 하지 않은 어머니는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었다.
#양씨네제빵소: 베이글 3500원, 브리오슈 식빵 6000원, 피낭시에 2500원, 에그타르트 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