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조유미 기자(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에버랜드의 놀이기구 ‘아마존 익스프레스’ 알바생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아마존은 특유의 춤과 멘트 때문에 에버랜드 알바생 사이 최고 인기 놀이기구로 꼽힌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누군가 “더운 날 놀이기구도 타고 시원한 물도 맞고 춤이나 추면서 돈까지 버는 재미난 꿀 알바”라고 말한다면 분기탱천할 것이다. ‘꿀 알바’는 없다. 귀가 터질 듯 환호성이 들리고 눈앞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내가 힘들수록, 고객은 행복하다. 그들을 위해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아도 3절까지 이어지는 노래에 격정적인 춤을 출 수밖에 없는 곳. 에버랜드의 놀이기구 ‘아마존 익스프레스’ 알바 얘기다.

“내앞에있는안내근무자의안내를받아한자리에두분씩한보트에열분이서머리젖습니다옷도젖습니다….”

아마존은 띄어쓰기가 없는 속사포 알바생 멘트 영상으로 화제가 됐다. 초여름 더위가 시작되면 물과 관련된 놀이기구 인기가 급상승한다. 근데 ‘물 위에서 떠 가는’ 이 놀이기구를 탄 사람들은 놀이기구 얘기는 하지 않고 온통 알바생 얘기만 한다. 올초 에버랜드 소속 직원과 함께 아마존 춤을 추는 이벤트성 알바(4명)에 총 1764명이 몰려 441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도대체, 어떻길래?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장성규의 직업 체험 프로그램에 등장해 더 유명해진 그곳에서 일일 알바생을 체험했다. 날이 뜨거운 만큼 간 김에 물 속에 풍덩 빠져 캐리비안베이 청소도 하고 왔다. 시원하게~ 청량하게~.

날이 뜨거운 만큼 간 김에 물 속에 풍덩 빠져 캐리비안베이 청소도 하고 왔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조유미 기자가 캐리비안 베이 풀장에 잠수해 수중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숨 막히는 수중 청소

오전 8시. ‘안전 요원’(라이프가드) 옷인 붉은색 민소매와 반바지로 갈아입자 그제야 살 것 같다. 물 위로 드러난 곳의 바닥 청소나 할 줄 알았는데 풀장 속으로 잠수해 수중 청소기로 바닥 훑는 일을 맡게 됐다. 물과 이물질을 흡입해 필터로 걸러낸 뒤, 물만 다시 내보내는 원리. 더워 죽겠는데, 그야말로 ‘생큐’다.

물이 찰랑이는 새하얀 바닥을 밟아 본다. 휴가철 바다에 온 듯 시원한 기운이 발끝에서부터 퍼졌다. 수심 2.4m, 폭 120m, 길이 104m의 ‘파도풀’이 이날 내 구역이었다. 개장 시간 50분 전인 오전 9시 10분까지 청소를 마쳐야 한다. 수경을 쓰고 잠수를 하니 바닥에 떨어진 낙엽이나 손님들이 떨어뜨린 꼬리빗, 팔찌 등이 보였다.

난관은 ‘숨 참기’. 이물질을 빨리 치워 없애고 싶은데, 숨을 참을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분이었다. 수면 위로 고개를 빼고 가쁜 숨을 내뱉었다. 무리해서 숨을 참으면, 다음번 잠수까지 숨 고르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안전 요원 이동익(29)씨는 “숨 참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캐리비안 베이 ‘안전 요원’(라이프가드)은 매일 구조 연습을 한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캐리비안 베이 워터 슬라이드인 ‘메가스톰’ 운영 전 안전 요원들이 점검 차 놀이기구를 타보고 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물에 빠진 생쥐 꼴로 1시간 가까이 청소를 했다. 분명 물 속인데, 땀이 나는 것 같다. 본체와 복잡하게 연결된 호스 때문에 청소기는 오직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었다. 꼼짝 없이 이 넓은 풀장을 왕복해야 한다는 의미. 안전 요원들은 풀장별로 돌아가며 당번을 정해 매일 이 작업을 한다. ‘재밌는 아마존 알바하고 싶다….’ 잠수 내내 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괜히 ‘E’버랜드가 아니다

“세 번이나요? 힘들 텐데요.” 오후 1시, 드디어 아마존. 놀이기구에서 콸콸 쏟아지는 물 소리에 귀가 서늘해지려는 찰나, 아마존 알바 8개월 차인 베테랑 윤정환(22)씨가 서늘한 말투로 말했다. 아마존은 알바생의 ‘춤’이 유명하다. “몇 번이나 춤을 출 예정이냐?” 질문에 “그래도 세 번은 춰야 체험 기사를 쓸 수 있지 않겠냐”고 답하자 생긴 일. 세 번이 뭐 많은 건가? 30번도 출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춤을 배우기 시작하자 와장창 깨졌다. 안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위로~ 아래로~’ 엉덩이를 튕기고 팔로 허공을 찌르고, 박수를 치고 현란한 스텝을 밟고. 외우는 건 별개로 치겠다. 문제는 ‘리듬’이었다. 아다지오(Adagio) 느낌으로 느리게 배웠는데 맙소사, 노래가 ‘매우 빠르게’인 프레스토(Presto)였다. 음에 맞춰 춤을 매우 빠르게 춰야 한다. 겨우 다 배웠다 싶었는데 “이게 1절”이라고 한다. 이리저리 스텝이 꼬여 땀투성이가 된 날 보고 윤씨가 “일단 2절은 빼고, 막춤 느낌인 3절로 바로 이어갈 테니 해보자”고 했다. 어라, 이게 3절까지 있어?

1·3절의 길이는 총 2분 50초 정도. 해 볼 만하다 싶어 관객 앞에 섰다. 환호가 쏟아졌다. 눈앞에 휴대전화 수십 대가 보인다.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이다. “리듬을 탑니다~ 리듬을~ 튕기면서~ 아 원, 아 투, 아 원 투 스리 포!”(멘트 진행자) 고객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어 연습할 때보다 열심히 췄다. 안무가 익숙하지 않아 계속 틀렸지만, 그냥 췄다. 곁눈질하며 일단 췄다. 더 열정적으로 췄다. 막 췄다. 막춤일 땐 더 막.

골반뼈가 빠질 것만 같았다. 동작을 크게 할수록 환호성이 커졌기에, 격정적으로 출 수밖에 없었다. 흡사 광란의 콘서트장이었다. 땡볕에 입이 바싹 말라 정수기 물을 다섯 번 들이켰다. 이걸 연달아 세 번 할 수 없는 이유를 알았다. 윤씨가 “1시간에 세 번 췄던 날 기절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보통은 3~4시간에 한 번씩 돌아가며 춘다고. 선글라스를 끼고 미친 듯 춤을 추던 정열의 알바생 정원석(22)씨는 “일을 시작하고 2주 만에 3㎏ 빠졌다”고 했다. 대부분 20대인 아마존 알바생(시급 9860원~1만1800원)은 통상 20분 일하고 20분간 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엉덩이를 튕기고 팔로 허공을 찌르고, 박수를 치고 현란한 스텝을 밟고. 외우는 건 별개로 치겠다. 문제는 ‘리듬’이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본지 조유미 기자가 아마존 알바생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 모습.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따로 알바생 체력 시험 같은 걸 보나요?” 내가 물었다. 그런 건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윤씨가 “생각보다 잘 따라오니, 이번엔 2절까지 1·2·3절을 다 해보자”고 했다. 칭찬은 감사했지만 섬뜩했다.

공포의 두 번째 댄스 타임. “박수는~ 이렇게! 이렇게~ 컴 온! 앗싸 신난다, 신난다~ 아마존!” 신날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입에서 단내가 났다. 웃을 수 없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죽겠는데 들려온 말. “2절 갑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더 좋아했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었다. 울면서 겨자 먹는 심정으로 주변 알바생 표정을 보는데 모두 방긋방긋이다. 고통을 즐기는 것 같기도…. 이런 서비스 정신을 보고 배워야 한다. 아마존 알바생은 MBTI 첫 글자가 전부 외향형인 ‘E’인가? 내향형 ‘I’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다. 괜히 ‘E’버랜드(Everland)가 아니었다.

◇산수가 어려워

이번엔 고객 안내. 아마존은 한 보트에 좌석이 총 다섯 개다. 그런데 좌석 하나당 자리가 두 개씩 붙어 있어, 한 보트에 10명까지 앉을 수 있다. ‘일행은 붙은 자리에 앉혀야 한다’는 것이 원칙.

간단한 산수였다. 하지만 헷갈린다. 일행 6명을 한 보트에 태웠는데, 다음 순서의 일행은 5명이라고 한다. 자리가 모자란다. 그럼 일행이 1~2명인 손님 두 팀, 혹은 일행이 3~4명인 고객을 소리 질러 찾아야 한다. “몇 분이세요?” “일행 두 분 계신가요!” 다섯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고객 수를 셌다. 아뿔싸. 빈자리 있는 보트가 그냥 지나간다. 적게 태울수록 고객의 대기 시간은 길어진다. 죄송했다.

폭풍 같은 알바가 끝났다.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는데, 헬스장 PT를 받으며 허벅지 운동만 했을 때처럼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깨도 아프다. 몸을 압축해서 쓴 느낌. 다시 말하지만 세상에 ‘꿀 알바’는 없었다. 모든 일은 나름의 이유로 힘들다. 직업도 마찬가지일 터. 앞으로 기자 관두고 할 일 없을까 두리번거릴 때마다 이날 에버랜드의 현란한 ‘스텝’이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