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솔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요?” “저는… 착한 아줌마요.” 가수 ‘예솔이’로 유명해진 다섯 살 이자람은 40년 전 TV에서 이렇게 말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예솔아~ 할아버지가 부르시냐?” 묻던 시절이었다. 꼬마는 의지를 가지기도 전에 유명해져버렸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지긋지긋한 예솔이를 떼어내려고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그 무렵 판소리를 만났다.
현재 이자람은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이수자. 소리꾼이자 뮤지션, 배우이자 작창가로 종횡무진한다. 2007년에는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판소리로 재창작한 ‘사천가’로 주목받으며 세계 순회공연을 했다. 벌떡 일어나 브라보를 외치는 외국인 관객 때문에 공연이 멈추었다가 진행되는 기쁨을 맛봤다.
압권은 헤밍웨이의 소설을 판소리로 옮긴 ‘노인과 바다’. 이자람은 휑한 무대에 돗자리 하나 깔고 고수와 함께 등장했다. “겉으로는 평안해 보이지만, 내면은 복잡하고 프로페셔널하게 바쁜 주인공 산티아고의 마음을 한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한국 관객을 곧장 쿠바 바닷가로 데려가며 1인 다역을 소화했다. 망망대해에서 커다란 청새치를 낚게 될 노인의 사투 속으로. 등뼈만 남아 귀가하게 될 인생 속으로.
이자람의 목소리와 소리북 장단만으로 묵직한 감동을 받았다. 다랑어를 잡아 회를 쳐 먹는 산티아고의 모습을 그리며 “이 양반은 옛날 쿠바 양반이라 간장과 와사비는 모를 것이다”, 지쳐서 잠이 오는 순간에 “침대가 그리우면 지는 거다”라고 노래할 땐 관객이 박장대소했다. 판소리는 우리 모국어로 누릴 수 있는 가장 호사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무대는 늘 예측 불가능하다. 이자람은 마음속에 진땀이 나는 순간을 대비해 연습을 한다. 안숙선 명창이 어느 공연의 분장실에서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단다. “소리를 하다 보면 나이가 들면서 점차 몸에 힘이 달리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나 곧이어 전에 없던 다른 힘이 그것을 받쳐줄 테니 겁먹지 마라.”
‘노인과 바다’를 작업할 때 다뤄야 할 것이 노인의 건강한 체념인 줄 알았다가, 버리지 않는 희망인 줄 알았다가, 주어지는 삶을 버텨내는 것인 줄 알았다가, 청새치와의 싸움인 줄 알았다가, 지금은 “모든 크고 작은 싸움이 나 스스로에게 와 있다”고 이자람은 말했다. 살아온 삶을 몽땅 쏟아 낚싯줄을 당긴다. 노인의 바다와 소리꾼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다. 그 깨달음을 판소리로 노래하다니, 헤밍웨이가 추임새 넣을 일이다. 얼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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