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육볶음은 짜장면이나 국밥 같은 혼밥 음식에 물렸을 때 구두쇠씨가 자주 떠올리는 메뉴였다. 고기 구이에 소주 한 잔 하다가 밥과 국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서민들의 전형적인 저녁 메뉴이지만, 혼자인 손님을 환영해 줄 고깃집은 없었다. 그럴 때 제육볶음을 찾곤 했다. 대한민국 모든 구내식당에 주 1회 이상 등판하는 음식, 한식 뷔페나 밥차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메뉴이면서 웬만한 밥집에 다 있는 요리였다.
두쇠씨는 제육볶음과 고추장돼지불고기, 돼지주물럭, 돼지두루치기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숙성을 시키는지 육수를 넣어 조리는지에 따라 각각 다른 음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맛은 엎어치나 두루치나 어슷비슷했다. 맛이 없기 어려운 음식인데도 고기가 너무 퍽퍽하거나 양념이 과하면 금세 질리는 음식이기도 했다.
군산식당에 다녀온 사람들이 말하는 제육볶음에는 ‘산더미’라는 공통 수식어가 있었다. 양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두쇠씨는 그러나 제육볶음 양보다는 이 집 반찬들에 더 끌렸다. 제육볶음 맛있게 하는 집은 이미 많고 기껏해야 돼지 앞다릿살 쓰는 그 음식을 배터지게 먹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지하철 5호선 강동역 근처 45층짜리 아파트가 위압적으로 솟은 동네에 식당이 있었다. 좁은 길 건너편엔 재건축을 앞둔 상가 건물이 텅 비어 있었다. 출입문을 열면 작은 현관이 있고 그 위로 앉은뱅이 식탁 6개가 놓인 옛날 밥집이었다. 그중 하나는 잡동사니가 놓여 있어 앉기 어려웠고 나머지 식탁 5개 중 2개에 손님이 각각 두 명씩 앉아 있었다.
그들 모두 제육볶음을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한 두쇠씨는 9000원짜리 제육덮밥을 주문했다. 그래야 다른 테이블과 함께 음식이 나올 것이었다. 제육덮밥은 1인분씩, 제육볶음은 2인분 1만8000원짜리를 주문할 수 있었다. 어차피 밥 위에 제육을 올리느냐 따로 주느냐의 차이였다. 주문을 하며 슬쩍 주방을 살펴보니 등이 약간 굽은 주인 할머니가 부지런히 돼지고기를 볶고 있었다.
큰 쟁반 가득 반찬이 담겨 나왔다. 그릇이 무려 11개였다. 고추장아찌·청경채무침·우엉조림·깻잎무침·멸치볶음·배추김치·생오이·김이 나왔고 된장과 간장도 딸려나왔다. 공깃밥과 오이미역냉국이 뒤를 이었다. 이 많은 반찬에 밥을 한 공기만 먹기란 불가능할 것 같았고 소주를 따지 않는 건 이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옆 테이블의 제육볶음 2인분이 먼저 등장했다. 말 그대로 제육의 산이었다. 족히 4인분은 될 것 같았다. 이어 두쇠씨의 제육덮밥이 나왔다. 제육 1인분의 양을 보려고 밥을 따로 달라고 해놓은 터였다. 채소라고는 부추와 양파가 조금 있을 뿐 돼지고기 비율이 95%는 되는 듯했는데 한식 뷔페에 가서 그만큼 담았다간 눈총 받기 좋을 만큼의 양이었다.
비계가 적당히 낀 돼지고기는 부들부들했고 양념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아 매콤달콤했다. 맛있는 제육볶음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딱 그 맛이었다. 쌈채소가 없어 다들 제육을 김에 싸서 밥과 함께 먹었다. 완벽한 밥 안주였다. 두쇠씨는 조용히 냉장고로 가서 빨간 뚜껑 달린 어른의 음료를 꺼냈다.
한 점씩 먹었다간 다 먹지 못할 것 같아서 두쇠씨는 한 젓가락에 두어 점씩 집었다. 그러나 밥 공기가 다 비었을 때쯤 제육볶음은 절반 이상 남아 있었다. 제육을 남길지언정 군산 할머니가 담근 깻잎무침에 밥을 싸먹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은가, 하고 두쇠씨는 생각했다. 옆 테이블에서 공깃밥을 추가할 때 두쇠씨도 밥을 더 청했다.
오후 2시 반, 식당은 만석이었고 모든 식탁에서 제육볶음의 산을 무너뜨리느라 젓가락 공사가 한창이었다. 옆자리에선 급기야 네 번째 공깃밥을 주문했고, 할머니는 급히 밥을 새로 안치며 “아이고 비상 걸렸네. 나 먹을 밥도 없네” 하고 읊조리듯 말했다. 그 사이 두 팀이 새로 왔다가 “지금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돌아갔다.
밥 두 공기를 비웠는데도 제육은 남았다. 애초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제육을 고봉으로 주고 한번 배 터지게 먹어 보라는 할머니를 이길 수도 없고 이겨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천호동에 올 때마다 제육볶음이 생각날 것 같았고, 제육볶음이 생각날 때마다 천호동을 떠올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