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근욱(왼쪽) 기자가 지난 10일 서울 북촌에서 대만 관광객들을 인력거에 태우고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고 있다. 미숙한 운전 연수생이라 탑승 요금을 받지 않았지만 원래는 시간당 4만원을 내야 한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시내를 1m 높이로 공중 부양하는 것 같았다. 지난 10일 오후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였다. 눈앞에는 ‘아띠 인력거’라고 적은 파란 티셔츠를 입은 조남훈씨가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고 있었다. 그 뒤로 까만 2인용 좌석이 있는 바퀴 달린 수레가 끌려갔다. 그곳에 앉아 보았다. 조씨는 골목에서 요리조리 방향을 전환하면서 수시로 자전거를 세웠다. 몸통과 다리를 옆으로 꺾어 자전거가 밀리지 않게 막으면서 뒤쪽을 돌아봤다. “경복궁으로 흐르던 하천을 메우고 만든 도로라, 하천 모양대로 구불구불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북촌 일대에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아띠 인력거’. 조씨는 8년째 서울의 오래된 골목길을 따라 이동하며 여행 해설까지 하고 있다. “골목 구석구석 누비며 주민들과 안부 인사를 하다 보니 온갖 이야기를 알게 됐다”고 했다. 인력거가 어느 저택 앞에 멈췄다. 굳게 닫힌 대문 밖으로 수풀이 삐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이 빈집의 정체는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인력거는 자전거 뒤에 2인용 좌석 수레가 매달린 형태다. 말하자면 자전거로 움직이는 삼륜차. 길이 3m, 폭 1m, 높이는 2m다. 승객은 안전벨트도 맨다. 경적은 달지 않았다. 주택가 골목길에서는 시끄러울까 봐 “안녕하세요!” 등 육성으로 경적을 대신한다.

구닥다리 물건으로 얕볼 게 아니다. 21세기에 걸맞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갖췄다. 전기 모터가 달린 인력거 또는 ‘전기 자전거’와 같다. 자전거 왼쪽 손잡이에 버튼이 달려 모터 전원을 켜고 끄면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최고 시속 15㎞까지 나온다. ‘오픈 인력거’에서 듣는 전기 모터의 “위이잉~” 소리는 강렬했다. 어쩐지 귀엽게 들렸다.

아띠인력거의 ‘전기 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적응해야 했다. 오른쪽은 교관 조남훈씨.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인력거 운전은 힘들어

인력거를 직접 운전해 보았다. 빈 수레를 뒤에 두고 자전거에 앉아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전기 모터를 켜자 뒤에서 누가 미는 것처럼 앞으로 달려나갔다. 수레가 날 덮치러 쫓아오는 것 같았다. 자전거 기어는 3단, 모터 기어는 5단. 두 기어를 동시에 조작하면 내구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언덕길에서는 적절한 단수를 계산하느라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인력거 운전에서 가장 까다로운 기술은 좁은 골목의 ‘코너링’. 핸들만 좌우로 꺾었다가는 큰일난다. 뒤에 딸린 수레가 기울면서 바닥에 고꾸라질 수 있다. 핸들을 꺾는 쪽의 다리를 굽히고 힘으로 버텨야 했다. 각도도 세밀해야 한다. 수레 두 바퀴의 궤적을 예상해 한번 핸들을 꺾은 각도 그대로 가야 좁은 골목도 돌아나갈 수 있다.

인력거 운전 교육을 받는 모습.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연습을 마치자마자 첫 손님이 나타났다. 대만에서 친구와 여행 온 왕이쳉(20)씨가 한복 대여점을 찾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무료로 모셔다 드리기로 했다. 그러나 좌충우돌이었다. 배운 대로 코너를 돌았는데 인력거 한쪽이 뭔가에 부딪혔다. 쿵쾅 소리가 나면서 수레가 좌우로 비틀거렸다. 과속방지턱도 고비였다. 비스듬하게 넘자 수레도 기울어졌다. 인력거가 간신히 통과할 좁은 골목길, 게다가 언덕이었다. 따라오며 조언해 주던 조씨가 운전석을 넘겨 받았다. 그는 “잘했다”고 했지만 자동차 도로 연수였다면 ‘실격’ 상황이었다.

인력거를 모는 데 힘이 많이 들진 않았다. 전기 모터의 도움을 받기 때문. 아띠 인력거는 연습용을 제외한 인력거 대부분을 2019년에 전기 인력거로 교체했다. 그래서 여성, 고령 라이더(rider)도 늘었다. 강동우 대표는 “사업 초기 9대1이던 남녀 성비가 지금은 7대3”이라며 “힘보다는 운전 기술과 대화 능력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관광객에게 인력거는 낯선 여행지의 ‘구원투수’와 같다. 친절한 말동무이자 길잡이 겸 운전수. 맛집을 알려주고 여행 계획을 짜주기도 한다.

기자가 운전하는 인력거의 첫 손님이 된 대만 관광객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고학력 MZ 인력거

이 회사는 올해로 12년째가 됐다. 처음엔 사장 지인들이 ‘열정’으로 운영하는 회사였다. 이제는 MZ세대 직원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신식’ 일자리가 됐다. 등록된 라이더는 30~40명. 다양한 사람이 라이더로 모였다. 만화가, 사진작가 등 예술가들이 부업으로 하기도 한다. 역사학 전공자 등 전문 여행 가이드 지망생에게는 직업훈련 기회도 된다고. 대학생 박소은(22)씨는 “외국인 손님과 대화하며 영어·중국어 실력을 키울 수 있겠다 싶어 시작했는데 건강까지 좋아졌다”고 했다.

근무시간은 자유롭다. 프리랜서처럼 일하길 원할 때, 또 일감이 몰릴 때 출근하면 된다. 일정이 없는 시간에는 사무실에서 각자 원하는 일을 해도 된다. 그림 그리는 도구가 널려 있었고 어떤 직원은 노트북으로 작업을 했다. 사무직으로 은퇴 후 새롭게 도전하는 60대 라이더들도 있었다.

대우는 능력과 경력에 따라 다르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외국어를 구사하는 라이더(15명)는 일반 직원의 1.5배를 번다고. 또 조씨처럼 숙련돼 관광객 하루 투어까지 책임질 역량이 되면 급여가 배로 뛴다. 평균적으로 하루 8시간 주5일 일하면 한 달에 300만원을 벌 수 있다.

북촌 골목길을 달리는 인력거.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인력거 손님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은 오후 4시쯤. 지쳐서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관광객들은 인력거를 보고 굳은 표정을 편다. 특히 아이나 어르신을 동반한 일행은 인력거의 ‘VIP’로 통한다. 라이더에게 가장 힘든 것은 뭘까.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조씨는 “인력거는 옛 이미지가 좋지 않았고 육체노동을 무시하는 분들도 있어 상처를 받는다”며 “특히 ‘젊은 사람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하는데 일일이 설명할 수 없어 그냥 웃어넘긴다”고 했다.

이 업계에도 위기가 있었다. 2010년대 후반 인력거 인기가 시들해졌다. 여럿 생겨난 경쟁사 대부분이 폐업했다. 버티던 아띠 인력거도 창립자가 2019년 회사를 매각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고, 지금 아띠 인력거는 전성기이던 2017년의 라이더 수를 회복했다. 성수, 명동 등에서 일일 인력거 운행 행사를 하기도 한다. 혜화 등으로 운행 지역을 넓힐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인력거 회사의 차고지이자 사무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은 인력거와 잘 어울려요”

인력거는 죽지 않는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관광지에서 젊은이들이 인력거를 끄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베트남, 태국, 인도 등 동남아에서는 관광 상품이자 ‘현역 교통수단’. 인력거가 환영받지 못하는 도시는 북한의 평양 정도다. ‘흉물’로 지정해 아예 금지하고 있다.

서울은 인력거가 꽤 어울리는 도시다. 유경숙 세계축제연구소장은 “해외 관광객에게 서울은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져 신기하다는 점이 매력”이라며 “전통적 교통수단인 인력거야말로 역동적인 서울의 멋을 드러내는 데 매우 적합한 콘텐츠”이라고 했다.

인력거 운전 중 횡단보도를 만나서 주위를 살피고 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인력거를 위한 교통 규정이 부족한 것은 보완할 점이다. 자전거 인력거는 교통법규상 자전거로 분류되는데, 서울에는 자전거 전용 도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다. 인력거는 ‘요령껏’ 차도와 인도를 넘나들어야 했다. 좌회전이 가장 어려웠다. 횡단보도가 없는 삼거리에서만 자동차처럼 차도에서 좌회전이 가능했지만 그런 곳은 많지 않았다.

인공지능, 자율 주행 등 첨단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는 중이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다. 그래도 인력거는 살아남는 모습이다. 두 발로 운전하는 사람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경력 8년차 라이더 조남훈씨. 운전하던 인력거를 멈춰 세우고 승객석을 뒤돌아보며 여행지 해설을 하고 있다. 기자가 직접 승객석에 타보니 서울 시내를 1m 높이로 공중 부양하며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장근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