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친 직후였다. 지난 15일 밤, 국내 카레이싱 최상위 레벨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슈퍼6000′ 대회 결승. 올해 첫 야간 경주였다. 젖은 노면을 감안해 빗길 전용 웨트(wet) 타이어를 끼우고 출발했다. 실수였다. 채 두 바퀴 돌았을 뿐인데, 트랙이 금세 말라버렸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달릴수록 뒤처졌다. 결국 세 바퀴에서 피트인(pit in). 드라이 타이어로 갈아끼웠다. 약 1분이 소요됐다. 멈춰있는 동안, 경쟁 차량 16대는 배기량 6200㏄의 굉음을 토하며 나아갔다. 거의 한 바퀴가 벌어졌다.
레이서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 계기판 속도가 ‘0′에서 금세 ‘245′에 도달했다. 어택을 거듭하며 차근차근 순위를 끌어올렸다. 23번째 마지막 바퀴, 우승자는 결정된 상황. 아직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 결승선에 가까워질수록 레이서가 탑승한 도요타 GR 수프라 차량이 거듭 달아올랐다. 골인. 1분38초742. 이날 가장 빠른 랩타임(트랙 한 바퀴 도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레이서 이정우(29)씨가 ‘패스티스트 랩 어워드’(Fastest Lap Award) 주인공이 된 순간이었다. 가장 빠른 사나이.
◇밥 먹고 게임만 했더니, 게임이 현실로
–극적인 질주였습니다.
“최고 기록은 타이어 상태가 제일 좋은 경기 초반에 나오는 경우가 보통인데요,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직 안 끝났다고. 경기 전날 컴퓨터 게임으로 미리 대회를 연습한 것도 꽤 도움이 됐어요.”
–게임요?
“레이싱 게임요. ‘아세토 코르사’라고. 이번에 달린 강원도 인제스피디움 트랙이 실제처럼 구현돼 있거든요. 요즘엔 게임 회사에서 경기장을 며칠 통째로 빌린 뒤에 레이저 스캔해서 게임에 집어넣어요. 도로 바닥 흠집까지 똑같아요.”
이쯤에서 이씨와 게임의 상관관계를 밝혀둬야겠다. 그는 원래 ‘심레이서’였다. ‘시뮬레이션 레이서’의 줄임말. 용어가 거창하지만, 쉽게 말해 집에서 레이싱 게임만 죽어라 해대던 ‘방구석 레이서’였다는 얘기다. 보통의 ‘뿅뿅’ 오락기는 아니고, 자동차 핸들과 브레이크·액셀 페달 등이 장착된 꽤 비싼 게임기로. 다만 떡잎이 달랐다. 그는 월드 클래스였다.
–‘심레이서’에서 ‘찐레이서’가 되셨죠.
“사연이 좀 긴데요, 일본 자동차 회사 닛산이 게임 회사 소니랑 손잡고 이벤트를 개최했어요. 레이싱 게임(‘그란투리스모’) 대회를 열고 가장 빠른 우승자를 정식 프로 카레이서로 데뷔시키는 프로젝트. 오락실 가면 보이는 그런 자동차 경주 게임으로요. 2015년, 교환학생 신분으로 일본에 머물던 때였어요. 참가자 6만4000명 중에 제가 1등을 했죠.”
–그럼 바로 데뷔한 건가요?
“다른 아시아 지역 입상자가 총 30명이었어요. 최종 1등을 해야 돼요. 카레이싱의 성지, 영국 실버스톤으로 가서 2주 교육을 받았어요. 다만 이제부터는 게임이 아니라 ‘진짜 차’를 몰고 테스트를 치러야 했죠.”
–어땠나요?
“너무 무섭더라고요. 게임은 눈과 손의 감각에 의존해요. 현실에서는 등이랑 엉덩이로 차체의 움직임을 느끼죠. 너무 긴장해서 밥도 똑바로 못 먹었어요. 게임은 ‘재시작’ 버튼이 있지만, 현실은 아니잖아요. 한 필리핀 친구는 차를 깨먹고 바로 탈락했어요. 그래도 경주마처럼 눈앞에 매달린 당근만 보면서 달렸죠. 며칠 타니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할 만한데?” 이 독특한 선발전은 지난해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그란투리스모’로도 소개된 바 있다. 영화 속 한국인 캐릭터가 바로 이정우. 주인공은 아니었다.
–결국 몇 등 하셨나요?
“2등요.”
◇현실엔 ‘재시작’ 버튼이 없다, 계속 달릴 뿐
문턱에서 무너졌다. “탈락하고 펑펑 울었어요. 아, 이제 끝인가. 어디 적당한 취직 자리나 알아봐야겠구나.” 사실 그가 고등학교 3학년부터 급히 일본어를 익히고, 일본학과(계명대)에 들어가고, 도쿄에 있는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떠난 단 하나의 이유는 이 게임 대회였다. “토할 정도로” 매일 방에서 5시간 넘게 레이싱 게임을 했던 것도, 여기서 우승해 진짜 레이서가 되고 싶어서였다. 2년간의 맹목적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왜 그토록 게임에 매달렸나요.
“일곱 살 때 창원에서 모터쇼를 보고 반해버렸어요. 그 이후로 제 꿈은 확고했어요. 카레이서가 되자. 근데 돈이 정말 많이 들어요. 제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카트(Kart·소형 경주차)를 탔어요. 한 해에 3000만~4000만원 들었어요. 타이어 한 세트가 40만원, 하루면 다 닳아요. 카트 한 대에 1000만원 정도 해요. 1년 타면 열화(劣化) 때문에 교체해야 하고요.”
–지름길을 택한 거군요.
“흔히 부자들의 스포츠라고 하잖아요. 2년 탔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대구 집에서 경주에 있는 연습장까지 왕복 4시간 걸렸어요. 남들과 똑같은 길로 가서는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 그 게임 대회를 알게 된 거죠. 동아줄이었죠.”
–좌절이 컸겠네요.
“그날따라 영국 날씨가 어찌나 우중충하던지. 다 울고 나서, 우승자 축하해주러 다 같이 맥줏집에 갔어요. 엄청 마셨죠. 평소 저를 많이 챙겨준 닛산 소속 일본인 드라이버가 한 분 계셨어요. 등 두드려주면서 그러시데요. 계속 레이싱 하고 싶냐고, 그럼 이번엔 지름길 말고 정도(正道)로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휴학계를 냈다. 일본 워킹홀리데이 생활이 시작됐다. 모터스포츠 선진국. 아마추어 ‘주니어 포뮬러’ 팀에 들어갔다. 가장 밑바닥부터 달리기로 했다. 낮에는 이삿짐 센터에서 짐을 날랐다. 택배차를 몰았다. 저녁에는 긴자의 일식집에서 일했다. “서빙부터 설거지까지 다 했어요. 나중엔 요리도 시키던데요. 주방장이 포뮬러 팀을 운영하면서, 재력가들과 후원도 연결해주셨어요.” 밤에는 가라오케에서 청소를 했다. 한 달에 500만~600만원을 벌었다.
–많이 벌었네요.
“전액 차에 쏟았죠.”
–성과는 있었나요?
“2016년 ‘후지 챔피언십 레이스’ 우승, 그보다 더 큰 대회 ‘수퍼 다이큐’에서도 우승했죠. 조금씩 ‘한국에서 온 애가 열심히 한다’는 얘기가 돌았어요. 근데 딱 그 정도였어요.”
–조바심이 났겠군요.
“선배들이 조언을 해주더군요. 언제까지나 맨땅에 헤딩할 수는 없다. 데드라인을 정해라. 그게 보통 3년이에요. 프로가 되는 과정을 보면, 3년 안에 결판이 나거든요.”
2018년, 그가 설정한 최종 기한이 다가왔다. “올해는 무슨 차를 타야 하나….”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한국에서 온 전화였다. “어릴 적 카트 타면서 알게 된 ‘삼촌’이 한 분 계세요. 그 분의 친구가 레이싱 대회에 출전하려고 차를 하나 개조했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어려워졌다는 얘기였죠. 네가 한번 타볼래?”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브레이크 잘 밟아야 더 빨리 달린다
2월 전남 영암 서킷, 제네시스 쿠페를 튜닝한 레이싱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주(車主)에게 인정을 받아야 했다. 이 차를 몰 자격을.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어요. 레이싱 게임으로 영암 경기장도 달려보고…. 제 최고 랩타임을 바로 보여줬죠.”
–‘웰컴 투 코리아’였네요.
“이제 마지막이라는 각오였어요. 대구로 돌아와 복학하고 레이싱팀 찾아다니며 기회를 엿봤죠. 이듬해 2월에 CJ로지스틱스 레이싱(현 오네 레이싱)에서 연락이 왔어요. 오디션 한번 보겠냐고.”
경쟁자 6명과 비공개 테스트를 치렀다. 1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부가 아니라요,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도 최대한 정성껏 했어요. 너무 간절하게 달렸어요. 그날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안 나요.” 한 달 뒤 계약서에 서명했다. 꿈에 그리던 프로 데뷔였다.
–불안하지는 않았나요?
“불안하자면 한없이 불안할 수도 있었죠. 저는 생각을 많이 안 해요. 그냥 하루에 해야 할 일을 해요. 일을 한다든가, 달리기를 한다든가, 밥을 먹는다든가. 그러다 보면 어느새 목표에 다가가 있다고 믿어요.”
최고 시속 300㎞, 평균 160㎞로 내달리는 스포츠. 매 순간 액셀만 밟을 수는 없다. 밟는 족족 쭉쭉 나간다면 인생이 얼마나 쉬울까. 그러나 길은 휘어지고, 가속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도처에 있다. “브레이킹이 관건이에요. 100%, 50%, 20%…. 나눠 밟기를 잘해야 돼요. 고비마다 얼마나 힘을 빼고 속도를 줄일지 재빨리 결정해야 앞질러 나갈 기회를 잡을 수 있죠.”
–뭔가 의미심장하네요.
“데뷔하자마자 바로 우승할 뻔한 적이 있어요. 세 바퀴 남긴 상황에서 1등으로 독주하고 있었어요. 2등이랑 15초 차이가 났죠. 무조건 우승이다. 근데 갑자기 액셀이 안 먹는 거예요. 차가 서버렸어요. 내부 스위치 하나씩 다 눌러보고, 혼자 막 소리도 지르고…. 난리를 치다가 일단은 차에서 탈출했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전기 계통 트러블이었대요.”
–억울했겠군요.
“많이 배웠어요.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다. 이성의 끈을 놓지 말자. 출발하기 전에 늘 눈 감고 명상해요. 1등 해야지, 이런 생각 안 해요. 그냥 제때 밟고, 제때 꺾자.” 다 잡은 우승을 놓쳤지만, 그는 바로 다음 경기에서 포디엄(3위)에 올랐다.
◇차는 혼자 타도, 혼자 달리는 게 아니었다
꿈에 도달하는 여러 방법이 있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늦었다고 자책하지 않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2022년 7월, 팀을 옮겨 엑스타 레이싱 소속으로 나선 대회. 최종 점검 주행 도중, 왼쪽 앞바퀴가 깨졌다. “코너링하는데 ‘뚝’ 소리가 나더라고요. 조향이 안 됐어요. 연기가 솟으면서 벽으로 돌진했죠. 시속 150㎞로요.” 차가 반파(半破)됐다. 예선 3시간 전이었다.
–사실상 게임오버 아닌가요?
“진짜 왜 이렇게 안 풀리지? 근데 지게차에 실린 차가 피트에 들어오자마자, 10명 넘는 메커닉(정비공) 스태프가 전부 달려드는 거예요. 파손 부위 뜯어내고 절단하고…. 복구를 시작한 거죠.”
–그게 3시간 안에 되나요?
“되더라고요.”
2시간 50분 만에 수리가 끝났다. “기름 넣고 출발하자.” 무전이 나오자 기어를 1단으로 놓고 액셀을 밟았다.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드라이브 샤프트(동력축)가 부러져 있었다. 경기는 시작된 상황. “이제는 진짜로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이씨는 말했다. 그러나 곧장 전동 공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4분 뒤 시동이 걸렸다. 그렇게 해당 예선을 통과했다. “뭉클했어요. 어떻게든 되는구나. 이게 ‘팀’이구나. 나 혼자가 아니구나. 절대 먼저 포기하지 말자.”
–사고가 많은가요?
“그래도 의외로 안전해요. 보호 장비가 워낙 많거든요. 리어윙이 부러져서 차가 빙글빙글 돌면서 벽에 충돌한 적이 있어요. 갈비뼈에 살짝 금만 가고 입원도 안 했어요. 축구보다 안전합니다.”
–차에 불 난 적도 있다고….
“올해 4월 ‘슈퍼 6000′ 개막전에서요. 그날도 비가 왔는데요, 잘 달리다가 갑자기 차가 미끄러지는 거예요. 뭐지? 엔진 어딘가에서 오일이 샜더라고요. 피트인 하자마자 엔진룸에서 불이 났어요. 비가 안 왔으면 달리는 도중에 불이 붙었겠죠.”
운전은 중노동이다. 타고난 동체 시력 외에도 강철 체력을 요한다. 일반 양산차와는 달리 레이싱카 브레이크는 70~80㎏ 무게의 운동 기구를 밀어내는 힘으로 밟아야 한다. 지면을 꽉 물고 있는 바퀴를 돌리려면 핸들도 있는 힘껏 꺾어야 한다. 한여름 운전석 온도는 섭씨 60도에 달한다. “두꺼운 방염(防炎) 슈트가 땀으로 다 젖어요. 경기 끝나면 몸무게가 2㎏ 정도 줄어 있죠.”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10㎞ 뛰어요. 브레이크를 잘 밟아야 하니 하체 운동을 주로 하죠.”
이씨는 지난 4월 제대했다. 늦깎이 입대, 거기서 그는 ‘두돈반’으로 불리는 군용 트럭을 몰았다. “보병으로 지원했는데 그해 운전병이 부족해서 차출됐다”고 했다. 수송 중대에서 부식을 나르고, 소형 방탄차량을 몰았다. 공백기에도 그의 속도가 다행히 ‘0′은 아니었던 셈이다. 군복을 벗자마자 참가한 지난 4월 ‘슈퍼6000′ 복귀전에서, 그는 보란 듯이 생애 첫 ‘패스티스트 랩 어워드’를 거머쥐었다. 랩타임 1분56초475.
–더 빨라졌네요.
“일단 체력이 좋아졌고요. 정신적으로도 튼튼해진 것 같아요. 휴가 나와서도 연습했어요.”
20대의 마지막 해, 군 제대와 함께 친정팀(오네 레이싱)으로 돌아왔다. “다시 데뷔하는 기분으로 불 태우려고요.” 인제·용인·영암을 오가며 대회를 준비한다. 그래서 얼마 전 중고차를 한 대 샀다. 주행 거리 15만㎞를 넘긴 폴크스바겐 파사트. 그 전에는 중고 모닝·쏘나타를 탔다. “이동 거리가 멀어서 1년에 7만~8만㎞를 타거든요. 새차 사기는 너무 아까워서…. 수퍼카도 몇 번 타봤는데 기름 많이 먹고, 정이 안 가더라고요.”
–레이서의 운전 철학이 궁금합니다.
“정속 주행. 연비 운전. 조급해하지 않기. 차라리 일찌감치 출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