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까. 애니메이션 영화 ‘라따뚜이’(2007)에서는 가능했다. 주인공 쥐 ‘레미’는 노력 끝에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가 됐다. 말도 안 된다고? 사람과 쥐가 서로 대화한다면, 불가능하지 않다. 레미는 TV에 나온 인간 요리사가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다”고 한 말에 감명받아 요리에 도전했다.

사람이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는 세상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쥐의 말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맛있다’ ‘요리’ ‘부탁한다’고 하는 것도 ‘말이 된다.’ 사람은 동물의 말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주 쓰이는 발음도 구분해 낸다. 외국어를 배우듯이, 동물의 말을 배워 쓸 날이 올 수 있다.

고양이가 집사를 향해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바라보며 ‘야옹’ 울음소리를 내는 모습. 이때 고양이 말을 통역한다는 스마트폰 앱 ‘미아우 토크(Meow Talk)’에는 “내 사랑, 이리 와서 날 찾아볼래(My Love, come find me)”라는 영어 문장이 표시됐다. /틱톡

인공지능(AI) 덕분이다. 그 방식은 고대 문자를 해석하거나 암호를 풀어내는 것과 비슷하다. 규칙이 없어 보이는 무수한 글자나 소리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 의미를 짜맞추는 것. 동물의 경우는 언어의 방식이 사람과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동물의 소리와 동작 등 데이터를 대량으로 모은다. 그 속에서 AI를 활용해 언어로 보이는 규칙을 발견하는 것이다. 딥러닝(Deep Learning) 또는 기계 학습.

◇고래 문자는 21자

실제로 쥐의 말을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는 2019년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이 만들어냈다. 쥐가 내는 초음파를 분석하는 ‘딥스퀵(DeepSqueak)’이다. ‘행복하다’ 등 약 20가지 언어의 레퍼토리를 발견해 냈다. 수컷 쥐는 암컷 쥐가 근처에 있을 때 말이 번잡해졌다. 암컷 쥐가 보이지는 않는데 냄새만 느껴질 땐 말이 보다 격정적이었다고.

지난달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은 국제 과학 전문지 네이처커뮤니케이션스에 ‘향유고래가 음성 알파벳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향유고래는 길이가 10~20m로 거대하며 가족끼리 집단 생활을 한다. 특히 지구상에서 뇌가 가장 큰 동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카리브해에 서식하는 향유고래 약 60마리가 내는 ‘딸깍하는 소리’ 8719개를 AI로 분석했다. 그 결과 리듬, 지속 시간 등이 다른 짧은 소리 총 21가지 유형을 이리저리 조합해 긴 소리를 만드는 모습이 나타났다. 모스 부호와 비슷했다. 현대 한글이 24자이듯이 카리브해에 사는 고래 말은 21자로 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연구진이 특정한 코끼리 소리 녹음을 들려주자 한 코끼리만 마치 자기 이름을 들은 것처럼 고개를 돌리고 귀를 펄럭이고 있다. /CBS

코끼리들끼리 이름을 부르는 모습도 AI로 발견했다. 지난 10일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연구진은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초저주파를 포함해 코끼리가 내는 울음소리를 분석했다. 코끼리마다 혼자만 반응하는 특정한 소리를 한 가지씩 지니고 있었다. 소리를 녹음해 틀었더니 사람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한 코끼리는 귀를 펄럭이며 고개를 들었지만 나머지 코끼리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는 어떨까. ‘말 못하는 동물’이어서 아픈 것을 뒤늦게 알고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2020년 고양이와 대화하는 스마트폰 앱 ‘미야오토크(Meow Talk)’가 출시됐다. 다만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온다. 앱 사용자들은 고양이가 서로 다른 상황에서 같은 소리를 내는 경우가 잦다고 지적한다. 고양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동물인 셈이다. 반면 강아지는 언어가 단순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웅종 강아지 훈련사는 “개가 사람에게 하는 표현은 반가움·즐거움·무서움 등 20~30가지 정도로 적다”며 “지능을 넘어서는 사람의 언어는 개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조성진 삼성호암상 수상기념 리사이틀'에 초대받은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관람석 맨 앞자리에 자리잡은 모습./인스타그램

◇사람이 동물과 의견 조율하는 세상?

동물과 대화하는 세상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다. 2017년 고래 말을 AI 분석으로 연구하는 단체 CETI(고래 말 해석 프로젝트)’가 생겼다. 과거 외계인이 보내는 신호를 연구하던 ‘SETI(외계 지능 탐사)’와 비슷하게 지은 이름이다. 고래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다음에는 항해할 때 고래와 의견 조율이 필요할 수 있다. 대화를 나눈 외계인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다.

인간 사회와 동물 세계는 구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동물이 인간처럼 말할 수 있다고 해서 그 말에 책임을 물릴 수 없다. 책임은 인간만 가질 수 있고 동물과의 의사소통은 인간이 동물과 공존을 시도하는 수단 중 하나”라며 “특히 동물권을 우선시하다 인간 사회 문제에 소홀해진다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동물 언어를 분석하는 비영리단체 ESP(지구 종족 프로젝트) 대표 케이티 자카리안은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지구상에서 공존하는 방법을 알아내려면 다른 종의 의사소통에 대한 이해가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고양이 울음 소리를 해석한다는 스마트폰 앱 ‘미아우 토크(Meow Talk)’를 바라보는 고양이 모습. 집사는 “버튼을 눌러봐” “오늘 기분이 어떘는지 말해봐”라고 말하지만 고양이는 무심한 듯 짧게 눈길을 던질 뿐이다. /유튜브

동물이 소리와 몸짓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을 언어라고 볼 수 없다는 견해도 나왔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아기 울음소리도 패턴 분석을 통해 기쁨과 슬픔 등을 파악할 수 있지만 그것을 언어라고 하진 않는다”며 “언어는 인간의 특징으로 여겼던 만큼 언어에 대한 정의를 면밀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동물과의 직접적 의사소통을 불쾌해하는 사람도 있다. 기계의 힘을 빌려 동물처럼 의사소통하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불도그를 10년간 키우고 있는 송재우(32)씨는 “종이 다르더라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AI 없이도 충분히 교감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동물의 입장도 물어봐야 할 것 같다. 그들은 지금까지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었을 수도. 너무 요란스럽게 말을 걸어서 자연의 평화를 깨는 것은 아니어야 할 테니.

지난 19일 울산 남구 장생포 앞바다에서 목격된 참돌고래 떼. / 울산남구도시관리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