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읍, 하, 스읍, 하아아.... 맵긴 한데 부족해요. 더 맵게 해주세요!”
대한민국은 지금 맵파민(매운맛+도파민)에 빠졌다. 더 자극적이고 강렬한 맛을 원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맛은 고추장, 고춧가루 맛으로 통할 정도로 K푸드 중심에 매운 음식이 자리 잡았다. 불티나게 팔리는 삼양식품 불닭볶음면 3종이 ‘캡사이신 수치가 높아 급성 중독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덴마크 시장에서 회수되는 상황까지 벌어졌으니 아이고, 맵다 매워.
그런데도 소비자는 더 매운맛을 원하고, 시장은 그 욕구를 반영해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밀크티에 떢볶이 소스를 버무린 펄을 얹어 팔고, 연일 ‘열’ ‘불’ ‘핫’ ‘땡초’ 등을 붙이며 누가 더 매운가 경쟁하기 바쁘다. ‘괴식’이라고 조롱해도 상관없다. 잘 팔리면 그만이니까. 소비자는 여름도 왔겠다, 내 주머니 사정은 좋지 않은데 물가는 오르겠다, 스트레스까지 겹치니 ‘이열치열’이다. 오늘도 매운 음식을 찾아 식당을 고르고 배달앱을 켠다. 속이 빨갛다 못해 검게 타들어 가고 있다는 걸 망각한 채.
매운 음식 먹방 챌린지 같은 영상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 널려 있다. “살려줘” “실명 위기” “사장님이 절대 못 먹을 거래요” “지옥불 경험”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1위 고추로 만든 짬뽕” “먹다가 기절” “각서 쓰고 먹는 열짜장” 등 클릭을 유도하는 섬네일만 봐도 매워서 입에 침이 고일 지경이다.
신길동 짬뽕, 신대방삼거리 디진다돈까스, 송주 불냉면 등 전국 3대 매운맛 식당은 마니아층에서 유명하다. 자칭 ‘맵고수(매운 거 잘 먹는 사람)’인 인플루언서가 이곳에서 너무 매워 1리터짜리 우유를 몇 개나 먹어치웠다는 후일담이 넘쳐난다. 그런데도 이들을 따라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로 이 식당들은 오픈런을 해야 할 만큼 문전성시다. 이러니 카레, 만두, 파스타, 닭발, 김밥 같은 음식을 파는 가게도 1단계부터 10단계, 더 심하게는 원자폭탄급 맛, 사망 맛이라고 홍보하며 그 뒤를 쫓아가고 있다.
치킨, 햄버거, 과자, 라면 등을 파는 프랜차이즈, 식품 업계도 앞다퉈 맵게 더 맵게 경쟁 중이다. 매운맛은 2020년을 전후로 ‘불닭볶음면’이 대박을 친 이후 식품업계의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비자들이 원하는 매운 강도가 세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1980년대 출시된 농심 신라면의 스코빌지수(맵기 척도로 캡사이신 농도를 계량화한 수치)가 1300SHU였는데, 40년이 흐른 지금 3400SHU까지 올라갔다. 소비자 입맛이 얼마나 많이 자극적으로 변해왔는지. 최근엔 염라대왕라면 2만1000SHU, 극한체험 틈새라면 1만5000SHU 등 ‘3배 매운 불닭볶음면’ 1만3000SHU보다 ‘더 매움’을 자랑하는 라면들도 시장에 데뷔하고 있다. 매운맛 열풍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닌 것 같다. 미국에서도 코카콜라가 매운맛 콜라를, 스타벅스가 매콤한 칠리파우더를 첨가한 음료를 선보였다.
업계에는 “경기가 안 좋으면 매운 음식이 더 잘 팔린다”는 말이 있다.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은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을 분비해 일시적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매운 게 잘 팔리면 그 사회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고 있다는 뜻일 수도. 그러나 최근엔 “핵심 소비층인 MZ의 맵부심(매운맛+자부심) 영향이 큰 것 같다”는 분석이 많다.
유행도 좋지만 건강은 꼭 챙기면서 먹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과자로 유명한 미국 업체의 ‘파퀴 원칩’. 빨간색 해골이 그려진 관 모형의 포장 박스에서 느껴지듯 이 과자 한 조각의 맵기는 220만SHU. 이걸 먹고 작년 미국의 한 10대가 기절한 뒤 사망했는데 사인은 심폐정지였다. 얼마나 맵겠냐고 쉽게 먹었다가 목숨을 잃은 것. 우리나라 유튜버들이 원칩 챌린지에 도전한 영상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당시 이 과자는 결국 판매가 중단됐었다. 최근엔 미국 10대가 1600만SHU인 트러블버블껌을 씹다 화상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든가, 중국 여성이 매운 마라탕을 먹고 인후통과 호흡 곤란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매운맛에 목숨까지 걸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