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나는 ‘이소룡 키드’였다. 1973년 서른셋 이소룡(리 샤오룽)이 급사했을 땐 큰 충격을 받았다. 중학생 시절엔 무협소설로 밤낮을 지샜다. 김광주의 ‘비호’와 ‘정협지’, 와룡생의 ‘군협지’에 빠져 무림 고수가 돼 강호를 평정하는 공상에 잠긴 아이였다.

이소룡은 1970년대 초 세계적 문화 영웅이 됐다. 세계가 ‘아시아로의 귀환’을 말하기 훨씬 전이다. 동양에 대한 서양인들의 판타지를 무술영화로 일깨웠다. 하지만 사실 그는 중국 전통무술의 신비주의를 깨트린 선구자다. ‘쿵후는 춤이다’라는 이소룡 발언이 중국 무술계를 격분시킨 건 유명한 일화다.

무협은 판타지다. 공상과학소설처럼 특정 문법과 경향을 따르는 장르문학이다. 일반 대중을 겨냥한 장르문학이 순수문학보다 열등하다는 이분법은 깨진 지 오래다.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처럼 대중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서양 판타지 작품이 대표적이다.

무협 같은 동양 판타지가 구사하는 상상력과 신비주의는 우선 재미있다. 상상력은 삶의 윤활유이지만 무협소설에 빠진 사람도 하늘을 날거나 장풍을 쏠 수 있다고 생각진 않는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무협은 경시하면서 풍수나 사주명리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관상이나 역술을 통계적 지혜라고 주장하는 지식인들도 많다.

집안에 우환이 이어져 부모님 묘를 이장했더니 문제가 풀리더라는 한 지인의 경험담에 놀란 적이 있다. 영화 ‘파묘’ 비슷한 얘기다. 역대 대선에서 대권을 노린 여러 정치인이 부모 묘를 명당으로 옮겼다는 뉴스도 있었다. 선거, 입시, 인사가 닥치면 점집이 문전성시인 게 우리네 현실이다.

풍수와 사주는 전통문화의 지혜를 담고 있는 측면도 있고 흥미로운 서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검증과 반증이 불가능한 이야기들을 부풀려 일상에서 남용하면 혹세무민의 신비주의에 빠진다. 고삐 풀린 채 폭주하는 신비주의는 당사자의 삶과 사회에 두루 해롭다.

현대과학이 모든 걸 설명하진 못한다. 과학이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지 않는 이유다. 과학은 잠정적이며 증거 앞에 수정 가능하고 항상 비판에 열려 있다. 이와 달리 비전(祕傳)에 의존하는 신비주의적 전통 담론은 폐쇄적이고 교조적이다. 예컨대 풍수의 동기감응(同氣感應)설은 검증 자체가 불가능하다. 햇볕 잘 드는 집터 선택은 의미가 있지만 묫자리 잡는 음택풍수 효과는 황당하게 들린다. 한국적 자생 풍수를 세운 고 최창조 교수는 묫자리로 골머리를 앓느니 차라리 화장하라고 권했을 정도다.

서양 판타지인 점성술·골상학처럼 풍수·관상·음양오행설 같은 동양 판타지도 매력이 없진 않다. 그러나 판타지에 미혹(迷惑)되면 삶의 중심이 흔들린다. 중국무술은 역사가 길고 유파도 많다. 이소룡은 그 화려한 허구를 폭로하면서 과연 실전성이 있는지 물었다. 동양 판타지 담론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도 성찰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세상엔 수많은 도사(구루, 요기, 법사)와 수련법이 있다. 신비주의로 포장한 도사들은 어쩌다 맞는 말도 하지만 대부분 황당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영적 성취는 주관적 환상과 위태롭게 겹친다. 한반도 고유의 수련법을 계승한 한 도사는 하늘의 계시로 정치를 넘보다 80년대 전두환 신군부에게 호되게 경을 치렀다. 수많은 유력자의 운명을 짚어준 전설적 관상가는 자신이 화장실에서 급사할 운명임을 알지 못했다는 얘기도 전해 온다.

이소룡의 사자후는 아직 유효하다. 서로 다른 맨손 무술끼리 대결하는 현대 이종(異種) 격투기에 쿵후 선수는 거의 없다. 중국 현대 격투가 쉬샤오둥은 전통무술의 자칭 천하제일 고수들을 주먹 한 방에 쓰러트려 이소룡의 말을 증명했다. ‘동양적인 것’의 매혹을 살리려면 미혹을 칼같이 잘라내야 한다. 예전에도 지금도 판타지는 판타지다. 건강한 어른의 삶은 도사를 거부한다. 도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