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여름을 기다리는 사람, 여름이 오는 게 두려운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전자다. 여름을 제외한 모든 계절을 여름을 기다리는 데 쓴다. 야호, 드디어 내가 사랑하는 계절이 왔다!
지금보다 젊을 때만 해도 여름이라는 날씨가 무작정 좋았다. 열기와 젊음, 무모함과 도전, 맥주, 바다, 수영복…. 흑역사에 몸부림치다가도 다음 날이면 ‘여름이었다…’를 중얼거릴 수 있는 객기마저 좋았다. 반면 요즘은 날마다 심각해지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무더위를 견디기 쉽지 않다. 체력도 달리고 뭘 하면 재미있는지도 모르겠고, 뭘 입고 뭘 발라도 안 어울려서 대부분 집구석에 쭈그러져 있다. 밖에 나가고 싶지도 않지만 불러주는 사람도 없다.
그대신 입으로 여름을 즐기고 있다. 여름이 오면 우리 집에는 사흘이 멀다 하고 택배 상자가 도착한다. 한 해 중 딱 이맘때만 먹을 수 있는 과일과 채소들을 부지런히 구해다 먹는다. 대표적으로는 제주 초당 옥수수, 장흥 블루베리와 경산 신비 복숭아. 첫물 초당 옥수수를 판매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진짜 여름이 온 것이다.
제철 채소와 과일은 씻어 먹기만 해도 만족스럽지만, 오늘은 특별히 여름 음식 하나 소개하러 나왔습니다, 여러분. 바로 여름 샐러드. 재료는 좋아하는 여름 과일 및 채소에 올리브유, 레몬즙, 소금, 후추만 있으면 된다.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은 5분에서 7분. 음식 솜씨가 없는 사람도 쉽게 만들 수 있고, 상큼하고 시원한 맛으로 더위에 집 나간 입맛을 돌려놓는 데도 효과적이다. 평소 채소를 잘 안 먹는 아이들에게 채소 섭취를 할 수 있게 도와주며, 손님 상차림 음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직장인 분들은 아침으로 챙겨 먹기도 수월하고, 도시락으로 싸 가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건강식에 다이어트식이라는 거. 어떤 음식인지 궁금하시죠? 지금부터 저와 함께 만들어 보시죠.
필수 재료는 완숙 토마토(방울토마토도 좋다)와 오이다. 그 외의 재료는 과일을 기호대로 준비하면 되는데 특히 참외나 자두, 딱딱한 복숭아가 궁합이 좋다. 나는 파인애플과 오렌지도 종종 넣는데 물이 너무 많이 생기는 수박이나 잘 뭉개지는 물복숭아, 망고 등은 추천하지 않는다. 모차렐라 치즈나 페타 치즈를 넣으면 고소하고 쫄깃한 식감에 지중해 느낌마저 물씬 난다.
먼저 모든 재료를 깍둑썰기 한다. 안이 깊은 그릇에 썬 재료를 넣고 레몬 4분의 1개 내지 반 개를 짜서 즙을 넣는다. 그다음은 갈아 넣는 소금과 갈아 넣는 후추 일고여덟 바퀴쯤, 올리브유는 크게 두세 바퀴쯤 뿌려준다(기본 재료 양에 따라 소금, 후추, 올리브유를 조절해 주세요). 그런 다음 모든 재료를 잘 섞어주면 끝이다. 좋아하는 그릇에 잘 담아 상에 올리면 알록달록한 색감에 먹기 전부터 기분이 상쾌해진다. 나의 대부분의 여름 아침 밥상에는 이 샐러드와 좋아하는 빵, 커피가 올라간다. 오늘도 먹었다.
과일과 채소만으로는 허전하다는 분들을 위해 끼니가 될 만한 메뉴를 하나 더 추천한다면 유부초밥이다. 그중에서도 김밥처럼 말아서 만드는 롤 유부초밥을 추천한다(이 안에는 유부 이외에 김도 들어 있지요). 유부초밥 패키지에 든 재료들에 밥만 넣어서 만들어도 맛있지만, 나는 깻잎과 오이, 차가운 백묵은지 혹은 쌈무를 넣어 더 시원하고 개운하게 만들어 먹는다. 김밥 김처럼 길게 잘린 유부에 김을 깔고, 그 위에 깻잎 한 장, 쌈무 한 장을 깔고, 양념한 밥을 올리고 그 위에 길게 자른 백묵은지 혹은 오이를 넣어서 돌돌 말면 완성. 이 메뉴 역시 간단하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든든하게 밥을 챙겨 먹기에 좋다. 앞서 소개한 여름 샐러드에 유부초밥을 곁들이면, 거기가 바로 피크닉 돗자리입니다, 여러분. 올여름, 다들 한 번씩 잡숴 보시기를 추천한다.
예전에는 ‘몸보신’ 하면 고기를 떠올렸다. 여전히 복날에는 수많은 닭이 인간의 체력을 위해 운명을 달리한다. 하지만 진짜 ‘몸보신 음식’은 언제든 간단하게 만들어서 즐겁게 먹을 수 있는 한 끼가 아닐까 싶다. 만드는 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치우는 데 귀찮지 않고, 눈도 즐겁고 입도 즐거운, 거기다 소화도 잘되고 계절감까지 물씬 느낄 수 있는 메뉴. 그게 나에게는 여름 샐러드와 롤 유부초밥이다.
매년 여름이 올 때마다 지난여름과 한층 달라진 몸과 마음에 기분이 조금 가라앉는다. 작년까지는 괜찮았는데 올해 더위는 왜 이렇게 힘들지? 이 옷, 분명 작년까지는 잘 입고 다녔는데 올해엔 왜 전혀 안 맞지? 하면서. 하지만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아마 내년 여름에는 지금을 그리워할 거라고.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회한과 슬픔으로 얼룩지게 만들 순 없기에 오늘도 나는 밥을 차린다. 제철 과일과 채소를 신나게 깍둑썰기하고, 유부를 돌돌 말아 아침상 앞에 앉는다. 그러다 보면 또 여름이 왔네, 이번 여름도 너무 좋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