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 동삼중리 자갈마당에는 늘 좌판이 깔렸다. 태풍이 불어 사람이 서 있기 힘들고 파도가 넘치지 않는다면 고무 잠수복을 입은 해녀들은 기어코 허술한 천막 아래 탁자와 낮은 의자를 놓는 것이었다. 얼굴이 붉고 거친 사내들은 그 작은 의자에 앉아 소금물처럼 지독한 사투리를 고함 치듯 내지르며 소주잔을 깨버릴 것처럼 쾅쾅 탁자 위에 내던졌다. 한편에는 빨간 고무 대야에 해삼, 멍게, 성게, 고둥, 이름 모를 잡어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그 좌판 사이를 걷노라면 레몬을 닮은 멍게의 새큼한 향과 찐 고둥의 구수한 냄새, 작은 버너 위에서 끓는 매운탕의 얼큰한 내음이 파도 소리를 뚫고 우리를 포위하듯 감쌌다. 그때는 그게 흔했다. 통조림에서 골뱅이를 꺼내듯 소라, 고둥을 잡아 쪄 먹었고 콜라 캔을 따듯이 성게를 반으로 갈랐다.
서울에 오니 해산물에서 비린내가 나거나 회에서 밍밍한 물맛이 나기도 했다. 산지 직송이라고 적어 놓은 곳에 가도 값을 높게 받을 수 있는 활어가 전부였다. 바다 바위 틈에 굴러다녀서 사람 손이 아니면 잡을 수 없는 작은 해산물은 찾을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잡히는 양이 많지 않고 가지고 오더라도 쉽게 맛이 변하기에 오래 둘 수 없다. 그런데 그 맛을 서울 한복판 을지로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을지로3가역을 빠져나와 명동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방파제 테트라포드 틈으로 빠지듯 좁은 샛길이 삐져나온다. 그리고 막다른 골목이라 생각한 곳에서 거친 ‘실비바 파도’라고 쓴 간판을 마침내 찾아냈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그곳에는 남해 해안선처럼 구불구불한 바가 기다랗게 놓였고 그 좁은 틈에 사람들이 몸을 기대며 아슬아슬하게 앉아 있었다. 하얀 칠판에는 주인장이 손 글씨로 써놓은 메뉴들이 빼곡했다. 주인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삼천포와 통영에 내려가 직접 눈으로 보고 물건을 고른다고 했다. 그 바닷가 생리라는 것이 사람들과 몸을 부딪치고 이곳저곳 살피지 않으면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훌훌 빠져나가 버린다는 것을 주인장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매일 정해진 메뉴라는 것은 없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매번 메뉴에 올라오는 것은 ‘당일바리 3종’이다. 이날 올라온 생선은 감성돔, 삼천포에서는 ‘야도’라고 부르는 새끼 방어, 도다리였다. 갯바위에 사는 감성돔은 살점이 탄탄했고 작은 섬들을 돌고 돌아 육지로 밀려온 해풍처럼 희미한 꽃향기가 났다. 새끼 방어는 대방어만큼 기름이 돌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느끼하지 않고 흙내가 나지 않아 맛이 깔끔했다. 도다리는 살이 포슬포슬하고 기름기가 살짝 돌아 회 한 점을 먹고 나면 자연스럽게 작은 잔에 손이 갔다. 나팔 같은 커다란 껍데기와 함께 나온 쫄깃한 ‘참소라 숙회’는 내장 쪽으로 갈수록 선지를 먹는 것처럼 진득한 맛이 올라왔다. 이런 안주를 앞에 두고 싱겁게 물을 마실 수는 없는 일이었다. 병맥주나 소주를 시키면 주인장은 포구에서 그러하듯 얼음 가득 채운 파란 플라스틱 통에 병을 넣어 앞에 올려놨다.
생맥주를 시키면 작은 접시에 마른 멸치를 한 줌 올려 내놓았다. 씁쓸하고 쌉쌀한 맥주를 마시면서 멸치를 씹노라니 바다 어딘가에 놓인 돌덩어리마냥 삐걱거리는 의자에 몇 시간이고 앉아 술을 마시던 그 사내들이 내 옆에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서울에서 부산에 내려와서도 꼭 OB맥주를 찾던 아버지가 이 집을 좋아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손가락으로 돌돌 말아서 입에 넣고 싶은 파김치에 쭉 짜면 기름기가 떨어질 듯 살이 오른 장어를 함께 끓인 ‘파김치 장어 전골’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처럼 그 빨갛고 진하고 얼큰한 맛이 혈관 속까지 흘러들었다.
하나같이 시끌벅적한 음식들이었다. 여기서 소리를 지르면 저곳에서 알은척하고 여기서 술잔을 들면 저기서는 그 잔을 가득 채워줄 것처럼 너와 내가 없고 우리만 있는 그런 맛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고 그래서 이제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리라 생각한 소금기와 해풍, 그곳에서 스스로 풍경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바싹 마른 근육이 반짝반짝 빛나는 어체(魚體)에 실려 서울 한복판에 온 것이었다.
#실비바 파도: 당일바리3종 1인분 2만9000원, 참소라 숙회 3만원, 파김치 장어 전골 3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