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흐윽. 죄송합니다.” 퇴임인사를 하던 그가 고개를 깊게 떨구었다. 6월의 마지막 날, 일하고 있는 영화제 사무국 최초로 정년퇴임식이 있었다. 2009년 1회 영화제 개최부터 올해 16회 영화제를 앞둔 지금까지 그는 16년을 오롯이 이곳에서 보냈다. 회사가 먼저 없어지든 아니면 내가 먼저 사표를 내고 나오든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사라진 지 오래이고, ‘철밥통 공무원’도 저임금과 악성 민원에 시달려 그만둔다는 세상에서 16년 시간의 무게는 묵직하다.
특히나 영화제가 어떤 곳인가. “1년에 일주일 영화제 하고 나면 도대체 뭘 하는 거예요?”라는 질문이 돌아오는 이곳은 남들이 보기엔 참으로 이상한 직장이다. 일주일 축제를 위해 작품을 찾고 자막을 입히고 상영 준비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연속성을 갖는 업무는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정규직은 극소수이고 ‘시간제 전문직’이라는 이름으로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20대들이 대다수인 조직. 고다르와 트뤼포가 쓴 벽돌책을 읽고 아녜스 바르다의 다큐멘터리를 보며 밤새워 영화비평문을 쓰는, 멸종 직전의 씨네필인 그들은 5월에는 전주, 7월엔 부천, 10월엔 부산까지 전국 영화제를 돌며 1년 일자리 일정을 꾸린다. 이렇듯 훌훌 짐을 풀고 꾸리기 쉬워 늘 사람들이 들고 나고, 또 작년에 열린 영화제가 올해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지곤 하는 곳에서 16년이라니, 그리고 정년퇴직이라니.
나는 8회 영화제부터 지난 8년간 그와 함께 일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의 정년퇴임식을 준비하고 사회를 맡았다. 영화제 곳곳을 누비던 그의 사진으로 앨범을 만들고 감사패와 꽃다발을 준비하기로 했다. 오래된 기록사진 파일을 뒤져서 찾아낸 16년 전 그의 모습은 지금과 달랐다. 주요 행사장마다 연단 앞에 마이크를 쥐고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항상 그였다. 유명배우들 곁에서 여유 있는 미소로 안내하던 사람도 그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연단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모임의 가운데에서 맨 끝자리로 작아지더니 점점 더 그가 나온 사진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지난 8년간 그의 자리는 그렇게 사라져갔다. 오랫동안 맡아온 관리직에서 내려와야 했고 총괄하던 업무들도 하나둘 줄어들었다. 커다란 책상과 책장을 홀로 쓰던 방에서 나와 창가 옆 책상에 가림막을 높이 세우고 점점 더 모습을 감추었다. 그 시절 그는 크게 상심한 때문인지 오랫동안 병가를 내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회사로 돌아왔고 마지막 몇 년은 영화제 게스트를 위한 관광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진행하는 일을 맡아 대학생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현장을 뛰어다니다가 정년퇴임식을 맞았다. ‘나 하나 꽃피어 달라질 것이 없는 세상’이라고 믿지 않았다. 묵묵히 홀로 잎을 밀어 올리며 정년퇴직이라는 작은 꽃을 피워낸 그의 인생이었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울음을 참듯 한마디, 한마디, 조동화 시인의 시를 간신히 읊어나가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오히려 울음이 터진 건 나였다. 그리고 내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30년 넘게 일하신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셨다. 아침이면 회사에 가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그 성실하고 한결같은 매일이 쌓인 시간이었다. 늦은 밤 술에 취해 돌아와, 잠든 어린 딸의 볼에 굵은 수염을 비벼 깨우던 젊은 아버지, 대입시험을 앞둔 딸에게 끝까지 알리지 않고 홀로 위암 수술대에 오른 중년의 아버지, 돌아가신 할머니를 누인 관을 붙들고 꺼이꺼이 어린애처럼 소리 내 울던 늙은 아버지. 그의 인생에 슬픈 날도, 기쁜 날도, 괴로운 날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어느새 같은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손 닿을 수 있는 그곳에.
아버지, 승진에서 밀려 후배들과 나눈 술 한잔 뒤에 허물어지고 싶은 발길로 밤거리를 헤매다가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던 그 밤은 언제였나요. 위암 진단을 받고 남겨진 삶과 죽음을 생각하며 두려워하던 그 밤은 언제였나요. 홀로 5남매를 키우며 고생하신 어머니에게 장남으로서 해드린 것 하나 없다며 그리워하던 밤은 언제였나요. 아버지, 당신을 위한 정년퇴임식에서 당신도 눈물을 보이셨나요.
아버지가 한결같이 지켜낸 30년이, 뿌리침을 당하고 밀려나더라도 머리 숙이고 지켜낸 자리라는 걸 미처 몰랐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좀 더 용기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건 돌아보면 눈 닿는 곳에 언제나 당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켜낸 매일이 나를 살게 했습니다. 이제야 당신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들춰봅니다.
나는 눈물을 닦고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에게, 내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긴 시간 당신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겨주신 꽃 한 송이가 제 마음의 꽃밭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