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열고 ChatGPT(이하 ‘챗GPT’)를 실행시킨다. 매년 똑같이 보내는 여름휴가가 지겨워 이번 여름휴가 땐 챗GPT 속 AI 비서를 ‘임시 고용’해보기로 했다. 챗GPT는 Open AI(오픈에이아이)에서 2022년 11월 말 공개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 우선 일주일간 ‘무료 체험판’부터 써보기로 했다. 어차피 휴가는 일주일. 휴가 끝나고 해고(구독 취소)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드는 음성을 선택하고 가성비 여름 휴가지부터 물었다. 제주도·속초·부산·경주…. 질문을 조금 달리해도 제주도와 속초가 상위를 차지했다. 비서와 함께라면 조금 색다를 수 있겠단 기대에 속초로 정하고 질문을 이어간다. “속초 여름휴가 가성비 코스를 추천해 줘.” AI 비서는 몇 초 만에 장장 4박 5일 일정의 여름휴가 코스를 쏟아냈다. AI가 추천한 코스 중 뻔한 곳은 피하고, 코스를 따라가 보며 팩트 체크해 봤다. 손품, 발품 팔아 AI 비서도 몰랐던 속초의 숨은 명소들도 소개한다.
◇”’영금정’과 가까운 주차장을 알려줘!”
비대면 방식의 AI 비서여도 자기소개는 필요한 법. 정중히 부탁하니 AI 비서는 “안녕하세요! 저는 ChatGPT, ‘OpenAI’에서 개발한 AI 언어 모델입니다. 다양한 질문에 답하고, 정보 제공, 대화 및 여러 주제에 대한 논의가 가능합니다….” 곧바로 ‘여름휴가 지원 특별 업무’에 투입시켰다. 속초는 연간 2500만명이 찾는 인기 여행지이기에 이미 알려진 곳이 많지만, 그중 가성비 여행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속초에서 한적하게 바다를 전망하기에 좋은 장소를 추천해줘!” AI 비서가 1초 만에 외옹치해수욕장·영금정·동명항 방파제 등을 제시했다. 추천 사유에 “바다를 바라보며 산책하기 좋다”는 영금정으로 향했다. 영금정은 ‘속초의 인증 샷 명소’를 물어봤을 때도 AI 비서가 3순위 안에 꼽았던 곳. 뙤약볕에 걷기가 부담스러워 ‘영금정 근처 주차장’을 묻자 비서는 ‘속초항 공영주차장’으로 안내했다. 주소대로라면 영금정까지는 도보 15분 거리나 됐다.
다시 “영금정과 가장 가까운 주차장을 안내해달라”고 했다. 이번엔 골목 안쪽 ‘영금정길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도보 3분으로 훨씬 가까운 거리였지만, 영금정과 가장 가까운 주차장은 ‘속초시 수협 동명활어센터 주차장’이나 ‘영랑해안길 주차장’이다. 동명활어센터 주차장은 유료(최초 30분 1000원 이후 10분당 300원)다. 그보다 속초 빠꼼이들에게 많이 알려진 영랑해안길 주차장은 규모가 크진 않으나 무료다. 영금정까지는 도보 2~3분 거리. 해외 출신인 비서가 국내 현지 사정엔 어두울 수 있어 해당 사항에 대해 정보를 정정해주니 “네, 맞습니다. 영금정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장은 영랑해안길주차장입니다” 하고 열린 마음(?)으로 수긍, 답변을 정정해 다시 알려준다. 상사의 지적에 평정심을 잃지 않는 음성이 마음에 든다.
영금정은 암반 위 속초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다. 외옹치항 해안 산책길인 ‘외옹치 바다향기로’와 함께 속초 바다를 최대한 가까이에서 조망할 수 있다. 다소 투박하나 튼튼하게 지어진 구름다리를 건너 ‘영금정해맞이전망대’에 닿으면 탁 트인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영금정정자전망대에 서서 다시 AI 비서에 “속초 영금정에 대해 알려줘” 하니 마치 문화관광해설사가 된 듯 영금정의 주요 특징부터 역사적 의미 등을 들려주었다. 구체적인 정보보단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가 전해진다’거나 ‘일출·일몰 시에 환상적인 경치를 제공한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답변들이었다.
AI 비서는 “영금정은 ‘영원한 금’”이라며 아는 척도 했다. “이 지역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지키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곤 한다”면서. 뜻은 그럴싸하나 동명항과 가까이 있는 영금정(靈琴亭)은 파도가 석벽에 부딪칠 때마다 신비한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가 거문고[琴]를 타는 것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대 넓게 펼쳐져 있는 암반을 아우르는 지점을 모두 포함한다. 원래 돌산처럼 자리했다가 일제강점기 말 속초항 개발로 파괴돼 암반 형태를 띠게 됐다고. 아담한 정자에서 가만히 귀 기울이니 거문고 소리보단 시원한 파도 소리가 속세의 소음에 찌든 귀를 씻어주는 듯했다.
◇'해녀’ ‘안전지킴이’… 현지 ‘지식in’ 등장
망망대해를 보며 감상에 젖을 무렵 영금정 가까이에서 물질하고 올라오던 해녀를 ‘목격’했다. 속초 해녀가 직접 물질하는 광경을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기에 AI 비서에 “속초 해녀에 대해 알려줘”라고 했다. 비서는 ‘해녀’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만 늘어놓았다. 심지어 ‘속초에 있는 해녀촌, 해녀박물관’에 가보란다. 속초 해녀박물관은 금시초문인데 그사이 생긴 곳인가 싶어서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외옹치항에 있다”고 답했다. 뭍으로 나오던 제주 출신 속초 해녀 김영숙씨는 “속초 해녀박물관은 없다”며 “속초엔 현재 열댓 명의 해녀가 활동 중이며 그중 아흔을 넘긴 해녀도 있다”고 했다.
이어가는 코스는 ‘속초등대전망대’. AI 비서가 속초 여행 코스에서 영금정과 함께 가볼 만한 전망대로 꼽은 곳이자 속초 8경 중 하나다. ‘속초등대전망대까지 가장 편하게 올라가는 길’을 물었더니 비서는 주차장 옆으로 난 계단 길을 추천했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계단 개수에 대해선 “약 250개”라고 답했다. 확인 결과 정답이었다. 계단을 오르려 하니, 해상안전지킴이 자원봉사를 하던 ‘속초시니어클럽’의 한 회원이 나서서 “계단이 전망대까지 오르는 가장 빠른 길이긴 하지만 가파르다. 천천히 편하게 오르고 싶다면 ‘등대옛길’인 골목길로 가보라”고 귀띔했다. 김영숙 해녀와 함께 현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속초 토박이 지식인이었다. 등대옛길로 돌아가니 좁다란 골목에 정겨운 벽화들이 마중 나왔다. 소박한 어촌 마을의 정취가 그대로 녹아있는 골목을 조금 걸어 올라가자 대숲이 그늘을 이루는 계단길이 나왔다. ‘무풍 에어컨’보다 시원하고 청량한 바람이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
속초등대전망대에 오르면 사방으로 동명항과 속초항, 속초해수욕장의 대관람차, 설악산 등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왕 비서를 대동했으니 속초등대에 대한 문화 관광 해설도 부탁했다. 속초등대는 “1907년에 최초로 세워져 이후 여러 차례 개축과 보수가 이루어졌다는 것부터 지금의 등대는 1966년에 완공됐다”는 설명과 구조적 특징 등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속초등대는 1957년 등댓불을 밝혀 2006년 지금의 모습으로 신축된 것이다. 한 탐방객이 속초등대가 있는 위치가 해발 몇 m인지 궁금해하기에 AI 비서를 다시 소환했다. “속초등대는 해발 60m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해수면으로부터는 48m, 전체 60m의 높이를 자랑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중 개방한다.
내려올 땐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계단길을 이용했다. 갑자기 동요 ‘등대지기’가 생각나 AI 비서에 “동요 ‘등대지기’를 불러줘”라고 했더니 비서는 “저는 노래를 직접 부를 수는 없다”며 일부 가사를 소개하거나 그와 어울리는 음악을 추천해줄 수 있다고 했다. 에리크 사티의 ‘Gymnopedie’, 클로드 드뷔시의 ‘Clair de Lune’ 등을 선곡해주었다.
◇그늘 찾아 ‘미시령계곡’으로
바다 실컷 보고 나니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숲속 계곡이 그리워졌다. “속초에서 자동차 타고 갈 수 있는 제일 가까운 계곡을 알려줘” 하니 비서는 ‘미시령계곡’ 등을 추천했다. AI 비서의 안내에 따라 “속초에서 약 30분 거리로 입장료가 있지만, 비교적 저렴하며 주변에 그늘도 있다”는 미시령계곡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맛집 추천을 받아 물회를 먹기로 했다. AI가 추천한 곳은 이미 유명한 ‘청초수물회’. 가는 도중 현수막에 ‘성게 제철’이라고 쓴 ‘바람꽃해녀마을 본점’으로 갔다. AI 비서에 해당 식당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니, “활전복을 사용한 싱싱한 전복물회, 전복뚝배기 등을 맛볼 수 있는 곳”이라는 설명. 성게비빔밥에 전복물회가 깔끔하게 나왔다. 간장새우장과 명태회무침을 추가 금액 없이 무한 맛볼 수 있었다. AI 비서는 물어봐야 얘기해주는 친구였다.
‘미시령폭포’는 얼마 전 온라인상에서 ‘나만 알고 싶은 계곡’ 리스트로 인기를 끌었던 그 계곡이었다. AI비서는 “내비게이션에 ‘폭포민박’을 입력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더했다. 행정구역상 고성군 토성면에 속한다. 길이 나 있어 접근성도 좋고, 주차도 편했다. 다만 사유지여서 입장료가 아닌 시설을 미리 예약한 사람들만 주차장 이용이 가능했다. 당일 이용의 경우 평일 기준 피크닉 테이블 대여료 3만원부터 시작해 주말 기준 평상 대여료는 7만원까지다. 캠핑장이나 방갈로 형태의 민박도 있다. 계곡에선 음료 외 취식 금지. 주인이 깨끗하게 관리해서인지 자릿세나 받는 계곡 맛집은 아닌 듯 보였다. 준비해온 음식들은 대여한 자리에서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음식은 판매하지 않고, 바비큐용 그릴 등을 대여(2만5000원)해준다. 배우 조승우와 놀랄 만큼 닮은 주인 송호석씨는 “예약은 캠핑 예약사이트인 ‘캠핏’에서 한 달 전부터 받는데 여름 성수기, 특히 주말엔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AI 비서가 폭포민박에 대해 “샤워 시설이 없다”고 설명하자 엿들은 주인은 “당일 이용객을 위한 샤워 시설이 없을 뿐, 캠핑장 이용객들을 위한 샤워 시설은 있다. (챗GPT의) 정보들이 꽤 정확하다”며 놀라는 눈치였다.
◇촌캉스는 ‘상도문돌담마을’에서
AI 비서에 촌캉스 숙소를 브리핑해달라고 했다. 생뚱맞게 양양에 있는 일반 펜션, 부근에 있던 리조트도 리스트에 올렸다. 맨 위에 추천한 ‘설악 한옥마을’에 대해 비서는 “설악산과 가까워 자연 경관이 아름답고 한옥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고 했다. 설악산 가까이 한옥 민박들이 모여 있다. 그중 도문동 ‘상도문돌담마을’은 500년 전통의 유서 깊은 마을이다. 몇 년 전부터 촌캉스 유행으로 젊은 층과 어린 자녀를 둔 가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상도문돌담마을을 기반으로 한 로컬 여행사 ‘지구인투어’ 대표이자 마을 내 ‘문화 공간 돌담’을 지키고 있던 박화권씨는 “실제로 챗GPT를 활용해 이곳을 찾는 60대 여행객들이 있다”며 “1960~80년대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다녀갔던 세대에겐 추억이 있는 민박촌”이라고 설명했다.
민박에서의 하룻밤은 호텔이나 리조트에 비해 조금 불편하지만, 이른 아침 동네를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속초 8경 중 하나인 학무정을 시작으로, 낡은 간판을 그대로 둔 흑백사진관, 한옥 카페인 ‘카페 도문’ 그리고 문화 공간 돌담이 코스처럼 이어진다. 민박은 방 크기에 따라 비수기 6만원부터 성수기 10만원대로 다양하다. 박씨는 “젊은 층들은 재미 삼아 챗GPT 추천 코스를 따라해 보기도 하더라”고 전했다. 가성비 코스를 물었기에 AI 비서는 모두 무료 입장이거나 개방된 곳들 위주로 추천했다. ‘이른 아침에 청초호에서 조깅하기’ ‘해 질 녘 영랑호에서 자전거 타기’ ‘갯배 타고 속초 아바이마을 둘러보기’ 등도 속초를 색다르게 즐길 만한 방법이었다. 단, 아직은 국내 사정에 밝지 않아 맹신하진 말자는 결론!
[ 속초에서 홍어회를? 우문현답은 없다! ]
챗GPT 들고 여행해보니...
AI 비서와의 여행은 외롭지 않았다. 모르는 건 없는 친구인데, 그렇다고 자세히 아는 것도 없는 친구와 동행하는 기분이랄까. 어떤 질문에 대해선 스마트폰 화면으로 자세한 정보도 연결해주었다. 하지만 페이지는 연결 불가 화면이 뜨는 일도 빈번했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폰과 대화하며 여행하니 호기심에 쳐다보는 이들도 있었다. 대화가 되니 운전할 때 두 손은 자유로운 편이었다. 여행 앱인 마인드트립(Mindtrip)에 비해 신선한 코스도 있었다.
총평은 이렇다. 우문현답은 바라지 말 것. 질문이 뻔하면 답도 뻔하다. 반대로 질문이 정확하면 대체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물론 검증은 필수였다. ‘미시령폭포민박’처럼 변수가 있는 민간 운영 시설은 특히 별도 문의가 필요하다. 해외파다 보니 가끔 엉뚱한 답변이나 궤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를테면 “속초 홍어회를 추천한다”고도 했다. 속초에서 즐겨 먹는 ‘가자미식해’ ‘명태식해’를 오역한 듯한 답변이었다. 집요하게 물으면 피곤하다는 듯 ‘한도 초과’를 알린다. 무료체험판에는 한계가 있었다.
일주일간 쓰고 AI 비서를 해고(구독 취소)하면 더 이상의 요금은 부과되지 않는다. 분명 여름휴가 일주일간만 쓰고 구독 취소하겠다고 했건만 업그레이드됐다는 기능에 홀려 유료 구독 버튼을 눌러버렸다. 이번엔 더 똑똑한 AI 비서가 등장했다. 신입 비서는 “제 데이터베이스는 2023년 9월까지 정보로 업데이트되어 있습니다”라면서 무료체험판의 비서보다 더 구체적인 코스와 정보를 쏟아냈다. ‘속초에서의 여름 휴가에 대한 기사를 작성해달라’고 했더니 돌아온 제목은 이랬다. ‘자연과 문화의 완벽한 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