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여 년 전 광화문 대형 서점 화장실에서 겪은 일이다. 중년 사내가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청소 도구를 든 미화원이었다. 열린 문 사이로 좌변기 전체와 뚜껑까지 대변 자국이 낭자했다. 누가 저리 어지럽게 사용했는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년 미화원의 처절한 울음이 내 마음을 쳤다.

가슴 깊이 새겨진 이 장면은 중년 사내의 신산한 삶을 떠올리게 했다. 한때 그도 잘나가는 삶을 살았을 수 있지만 생계를 위해 화장실 미화원이 됐다. 그런데 끔찍한 좌변기가 그의 마지막 자존심을 무너트린 것이다. 이건 중년 남자의 비통한 울음에 대한 주관적 상상을 곁들인 해석이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왼쪽·야쿠쇼 고지 분)는 반복되는 일상의 경건함을 보여준다. /티캐스트

최근 한국 관객을 사로잡고 있는 예술 영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의 주인공도 화장실 미화원이다. 일본 도쿄 시부야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초로의 남성 히라야마(야쿠쇼 고지)의 일상을 세밀화(細密畵)처럼 그렸다. 별다른 사건이 없는 이 영화에서 히라야마는 청소부 일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화장실 구석구석을 반사경까지 써서 정성껏 닦아 낸다. 젊은 동료가 ‘이런 일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며 핀잔을 줄 정도다.

히라야마의 삶은 담백하다. 한쪽 벽이 책으로 가득한 허름한 집에서 혼자 살고 출퇴근 땐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는다. 점심 땐 낡은 필름 카메라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코모레비)’을 찍는다. 퇴근 후 대중탕에서 몸을 씻고 선술집에서 한잔 후 헌책방에서 산 문고본 책을 읽으며 잠자리에 든다. 이런 그에게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조카딸이 불쑥 찾아온다.

영화는 히라야마의 과거에 대해 침묵한다. 기사가 모는 대형 세단을 타고 딸을 데리러 온 품위 있는 여동생의 말에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미소를 잃지 않던 히라야마도 여동생을 포옹하며 눈시울을 적시지만 곧 담담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고 다음 날 출근길 그의 오묘한 얼굴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일본 극우 단체들을 지원하는 ‘일본 재단(The Nippon Foundation)’의 후원 여부를 떠나 ‘퍼펙트 데이즈’는 수작이다. 히라야마 역 야쿠쇼 고지의 열연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에 값한다. 이 영화엔 ‘목숨 걸고 일한다’는 ‘일생현명(一生懸命·잇쇼켄메이)’ 문화에 매료된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의 오리엔탈리즘적 일본 찬미도 엿보인다. ‘퍼펙트 데이즈’는 원래 시부야 공중화장실 개조 프로젝트 홍보물을 극영화로 발전시킨 것이다.

영화 미학적으로 ‘퍼펙트 데이즈’는 보통 사람의 일상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기리는 찬가다. ‘지금과 여기’의 의미를 일깨우는 영화 시(詩)이기도 하다. 세상이 홀대하는 화장실 청소 일도 히라야마에겐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처럼 빛난다. 과거와 미래를 내려놓고 현재의 작은 것에 자족하는 삶이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은 아름답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부르주아였던 히라야마를 화장실 미화원으로 ‘수직 추락’시킨 영화적 설정은 작위적이다. ‘퍼펙트 데이즈’에서 히라야마는 현실과 역사에서 분리된 자폐적 공간에서 산다. 사회나 역사와 유리된 채 닫힌 내면으로 은둔하는 일본 사소설(私小說)처럼 히라야마는 거의 말이 없고 친구도 없다.

화장실 미화원 일을 극사실주의로 묘사하는 ‘퍼펙트 데이즈’의 공중화장실은 사실 청소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하다. 그게 이 영화의 결정적 한계다. 노동의 일상을 감동적으로 그린 ‘퍼펙트 데이즈’는 정작 처절한 생계 노동의 세계에 대해선 침묵한다. ‘영화는 허구이고 광화문 화장실은 현실’이라는 말만으론 이런 근본적 공백이 채워지지 않는다. ‘광화문 화장실 미화원’의 통곡과 히라야마의 은은한 미소 사이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흐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