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서울역 대합실. 인생은 어쩌면 꿈과 현실이라는 선로를 평행선처럼 따라가는 기차 여행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손관승 제공

휴가 여행객으로 붐비는 서울역 플랫폼에 섰다. 출장이 잦다 보니 열차 여행 특유의 설렘과 낭만은 사라지고 속도와 기능만 떠올리게 되지만 새벽 기차역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은 여전히 좋아한다. KTX 우수 회원으로 선정된 덕분에 좌석 업그레이드라는 작은 호사도 누린다. 인생은 어쩌면 꿈과 현실이라는 선로를 평행선처럼 따라가는 기차 여행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두 선로 사이에서 씨름한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떠올려 본다. “내가 탄 기차는 브뤼셀에 월요일 오후 2시 7분 잠시 머문단다. 가능하다면 역으로 나와 주렴. 그렇다면 나에게 큰 기쁨이 될 거야.”

애틋한 형제애가 녹아 있는 편지다. 고흐가 37년 인생을 사는 동안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고 20여 곳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 후반 급속하게 확장된 철도망 덕분이었다. 여행은 그에게 신선한 영감의 원천이었고 기차는 고흐의 그림뿐 아니라 편지도 쉼 없이 날라다 주었다. 1882년 7월 동생에게 보낸 고흐의 다른 편지를 읽어보자. “새벽 4시면 잠에서 깨어나 창가에 앉는다. 목초지와 목수의 작업장, 일터로 나서는 사람들, 들판에서 커피를 끓이려고 불을 피우는 농부들을 스케치하지. 그런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니?”

새벽 커피와 성실한 일터는 광기의 예술가 이미지에 가린 고흐의 또 다른 모습이며, 서간체 문학에도 탁월한 능력자임을 알려준다. 장소가 바뀔 때마다 그림 색깔과 스타일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사람들이 모두 시궁창에 처박혀 있을 때도 그중 몇 명은 하늘의 별을 보고 있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처럼, 고흐는 아를에서 지내던 시절 ‘밤의 카페테라스’ 등 별이 빛나는 밤을 모티브로 잇따라 명작을 창조했다.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서 한 말에 동의한다. “어떤 예술가도 매일 스물네 시간을 끊임없이 예술가일 수는 없다. 예술가가 이루어 낸 모든 본질적인 것과 모든 지속적인 것은 드물게 찾아오는 영감의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다.”

빈센트 반 고흐가 아를에서 지내던 시절에 화구를 들고 걸어가는 자신을 그린 그림. /위키피디아

그 드물게 찾아오는 영감을 얻기 위해, 무디어진 감각을 되찾기 위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산책, 음악회,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기도 하며, 운전 도중 번쩍 떠오른 아이디어가 신기루처럼 사라지지 않도록 운전석 옆에 항상 소형 녹음기를 놓아 둔다는 소설가도 있다. ‘글로생활자’의 삶 역시 지속적 영감이 필요하다. 낭만적 어감을 가진 ‘글’과 현실을 의미하는 ‘생활자’, 두 단어로 이뤄진 조어(造語)로 생활이라는 후자에 방점을 찍었지만 듣는 이에 따라서는 낭만에 더 의미를 두는 듯 강연장에서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저도 글이나 쓰고 강연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10년 이상 지속한 비법을 가르쳐주세요.”

질문의 행간 속에 멋, 여유, 낭만 등의 느낌이 묻어나는데 실상은 막노동하는 육체 근로자 못지않게 고단한 삶이다. 때로는 장마와 무더위를 뚫고 왕복 7~8시간 운전을 감당해야 하고, 어머니가 입원 중인 병원 한 모퉁이에서도 신문 연재 글을 써야 한다. 그럼에도 이 길을 선택한 것은 딱 하나, 정신적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치지 않는 생산성이 관건이다. 100세 시대 지식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 일본인들은 프로 세계의 무기를 가리켜 “서랍이 많다”고 표현한다. 서랍의 원래 의미는 책상과 옷장에 달린 수납 공간이지만 여기서는 남 다른 기술, 승부수, 독특한 경험 등을 의미한다.

관건은 호기심이다. 나이 들면 자극에 무디어진다. 그 음식도 먹어 보았고 그곳도 가 보았으며, 그 음악도 들어 보았는데 별것 없다는 둥 매사 시큰둥하다. 하지만 호기심은 영원히 젊게 사는 묘약 같은 것, 혈압 약과 영양제를 챙길 때 호기심도 한 알씩 챙겨야 한다. 세상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호기심의 피뢰침을 높이 세워야 빈 서랍을 채워 넣을 수 있다. 호기심 자극하는 데 여행만큼 좋은 것도 없다. 낯선 풍경, 익숙지 않은 잠자리, 미로, 의심 가득한 불안한 눈동자조차 훌륭한 공부다. 낯선 곳에 도착할 때마다 일본 민속학을 개척한 미야모토 쓰네이치(1907~1981)의 부친이 아들에게 들려주었다는 ‘여행 10조’를 되새긴다.

경부선 종착역 부산 /손관승 제공

“역에 도착하면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을 주의해서 봐라. 어떤 복장을 하고 있는지 신경 써라. 그곳이 부유한지 가난한지, 열심히 일하는 곳인지 아닌지 잘 알 수 있으니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 당부였다. “다른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보도록 하라. 소중한 것은 언제나 그 안에 있는 법이다. 조바심 내지 말아라. 자신이 선택한 길을 열심히 걸어가면 된다.”

아들은 73년 인생 동안 일본 열도 16만 킬로미터를 구석구석 누비며 ‘잊혀진 일본인’ 60편의 방대한 시리즈를 남김으로써 일본 학문에 큰 공헌을 했다. 경제성장의 뒤편에서 묵묵히 생업을 꾸려나가던 보통 사람들과 지역의 스토리였다. 나폴레옹의 침략을 받고 독립운동 방법으로 민담을 채집한 뒤 ‘그림 동화’를 펴냄으로써 독일 인문학의 기틀을 다진 그림 형제에 비견된다.

무엇이 콘텐츠인가? 드라마, 영화, 음악만 콘텐츠일까?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대단한 과업을 이룬 적이 없다 해도 남들과 다르게 사는 모습만으로도 훌륭한 콘텐츠가 되는 시대다. 보물은 멀리 있지 않고 지금까지 걸어온 우리 발밑에 숨어 있다. 발밑을 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