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겨울 강화도 어느 목공방에서 보았다. 톱, 끌, 대패, 망치.... 작업대 뒤에 연장 수백개가 걸려 있었다. 많아도 질서정연했다. 건조되어 쓰임을 기다리는 목재들도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작업대에 올랐다가 잘려 나갔지 싶은 나무 조각들의 무더기도 보였다. 바닥에는 대팻밥이 수북했다. 봉긋해서 꼭 무덤처럼 보였다.

느티나무는 200살쯤 되어야 목질이 좋다고 한다. 그런 것은 대부분 보호수라서 구하기가 어렵다. 강화도에서 만난 양석중 소목장(小木匠·나무로 가구나 문을 짜는 사람)은 웃으며 말했다. “고목(古木)이 태풍에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가요.”

검고 아름다운 ‘먹’이 든 감나무를 먹감나무라고 부른다. 오래되거나 상처가 나서 까맣게 된 것이다. 그런데 ‘먹’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는 잘라보아야 알 수 있다. 스무 그루 베면 하나쯤 나온다고 한다. 소목장에게는 나무를 열지 않고 속속들이 볼 줄 아는 안목이 핵심 경쟁력이라는 뜻이다.

미루어 짐작하듯이 나무를 잘라보면 동서남북에 따라 육질, 아니 목질이 다르다. 북쪽은 추위를 견뎌 나이테가 촘촘하고 강도가 높다. 남쪽은 무르다. 같은 느티나무라도 물가에서는 빨리 성장한 대신 푸석푸석하다. 자갈밭에서 자란 놈은 나이테를 따라 균열이 있다.

살아 보니 사람도 매한가지다. 단단하거나 유연하거나 나약한 부분이 있다. 어떤 시절은 뜨거웠고 어떤 시절은 추웠고 어떤 시절은 후회막급이다.

이번호 커버스토리는 가수 장사익(75). 기자에게는 질문이 톱이다. 어느 방향으로 어떤 힘과 속도로 묻느냐에 따라 나오는 답이 달라진다. 아주 가끔 우아한 단면이 나타난다. 그 사람이 지닌 삶의 무늬다. 열댓 가지 직업의 쓴맛을 두루 경험한 장사익을 만나 이렇게 저렇게 톱질을 했다. 사람의 나이테를 보았다.

노래란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젊은 가수들은 경험이라고는 사랑과 이별밖에 없다. 어려서부터 화려한 조명을 받고 살았으니 조금만 힘들어도 적응이 안 돼 쓰러지고 깨진다. 온갖 직업을 거친 장사익은 쓰러져도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알게 모르게 비축하고 나서 마흔다섯 살에야 가수가 됐다.

장사익은 노인과 청춘이 한 몸에 공존하는 사람 같았다. “남들은 노래 인생 60년이라는데 나는 고작 30년 밖에 안 됐다”며 그는 웃었다. 7학년 5반이라 원로 가수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아니라고. 가수 이력만 따지면 아직 팔팔한 축이라고.

※ QR코드에 휴대폰을 갖다 대거나, 인터넷 주소창에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5743을 넣으면 구독 창이 열립니다. ‘이메일 주소’와 ‘존함’을 적고 ‘구독하기’를 누르면 이메일로 뉴스레터가 날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