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끼삐끼’는 이제 야구 용어다. 한국 야구팀 기아 타이거즈의 응원곡, 아니 응원춤으로 유명해졌다. 마찰음 ‘삐끼삐끼’를 연상시키는 15초짜리 짧은 전자음악에 맞춰, 몸통에 붙인 팔꿈치를 잔망스레 위아래로 흔들어대는 춤. 팀이 아웃 카운트를 하나 잡을 때마다 분위기를 띄우려 치어리더들이 일사불란하게 일어나 이 동작을 하는데, 최근 ‘쇼츠’ 영상이 세계로 퍼져나가며 올해 여름을 상징하는 밈(meme)이 됐다.
대만 타이베이 야구장에도 ‘삐끼삐끼’가 울려퍼졌다. 지난달 27일 대만 야구팀 푸방 타이거즈 측이 기아 타이거즈 치어리더 6인을 초청해 ‘원조’의 춤사위를 부탁한 것이다. 인기를 증명하듯 경기 전 미디어 행사에 몰린 팬들의 함성과 취재 열기는 가히 연예인급이었다. 특히 ‘삼진 여신’ ‘AI 미녀’ 등의 보도까지 잇따른 신인 치어리더 이주은(20)은 “의외의 인기와 많은 응원에 감사하다”고 했다.
◇치어리딩 韓流, 종횡무진 맹활약
‘K치어리더’가 중화권 한류의 새 동력이 돼가고 있다. 진원지는 대만. 최근 1년 새 10명의 한국 치어리더가 대만으로 이적했다. 기점은 이다혜(25)였다. 지난해 3월 대만 야구팀 라쿠텐 몽키스로 이적해 ‘해외 진출 국내 1호’ 치어리더가 됐다. 인기 비결은 한국에서는 종종 입방아에 올랐던 ‘끼’였다. 코카콜라 등 광고 12개를 찍었다. 대만 유튜브 인기 크리에이터 1위에 이어, 올해 가수로도 데뷔했다. 웨이취안 드래건스의 러브콜로 구단 최초의 외국인 치어리더 팀장에 부임했다. 지난달 주타이베이한국대표부는 이다혜를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고무적 성공이 기름을 부었다. 치어리더 안지현(27)이 지난해 8월 뒤를 이었다. 대만 신생 야구팀 TSG 호크스가 치어리더 육성에 뛰어들면서 치어리더 선발과 트레이닝 책임자로 그를 낙점한 것이다. 이아영(32)도 지난 4월 대만 야구팀 푸방 가디언스 치어리더 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지현과 이아영은 최근 대만 TV 예능 출연에 이어 CF까지 동반 촬영하며 ‘치어테이너’(치어리더+엔터테이너)로의 성공적 안착을 증명했다. 주 활동 영역은 야구장이지만 지난 5월 치어리더 조연주(25)가 대만 농구팀 타오위안 파우이안 파일럿츠와 사인하며 영역의 한계도 사라지고 있다.
◇대우가 다르다… K팝 인기도 영향
대만 야구장 분위기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치어리더에 대한 처우는 그렇지 않다. 대만행 치어리더가 다수 소속된 투에스 스포테인먼트 황승현 대표는 “우리나라 치어리더는 실력에 비해 경기 외적으로 주목받을 기회가 적고 구단이 아닌 대행사에 몸담고 있어 비전이 불안한 반면 대만은 치어리더가 자국의 부족한 엔터테인먼트 문화를 일부 책임지다 보니 구단이 광고까지 주선해줄 정도로 적극적이어서 부가 수입의 규모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일개 응원단을 넘어 단독 콘서트까지 여는 ‘스타’로 등극할 기회. 반면 한국 치어리더의 경우 현역 조다정(27)이 지난해 한 예능에서 밝힌 바, 월수입이 150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K팝의 흥행도 K치어리더의 해외 진출에 영향을 주고 있다. 경기장 응원곡으로 사용되는 K팝이 늘면서, 제대로 소화할 인재에 대한 수요도 늘었기 때문이다. 선수별 혹은 경기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한국 특유의 응원 연출에 대한 노하우도 매력 요인.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대만이 핫한 시장으로 부상하면서 치어리더 경력이 없는 ‘인플루언서’를 진출시키려는 일각의 움직임도 있다”며 “기본기 없이 치어리딩을 쉽게 생각하다가는 위상을 깎아먹게 될 것”이라고 했다.
◇대만에서 한국으로, 교류 물꼬
가는 정, 오는 정. 지난 1월 안지현 치어리더가 이끈 대만 TSG 호크스 치어리더 팀이 서울을 찾았다.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남자 프로배구 경기 축하 공연을 하러 온 것이다. 한국 프로 배구 최초의 해외 치어리더 공연이었다. 지난 6일에는 이아영·남민정·이호정 등이 소속된 푸방 타이거즈 치어리더 팀이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를 밟았다. 앞선 기아 치어리더 팀의 대만 방문에 이은 답방. 기아 측은 “매년 지속적인 교류 행사를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대만 치어리더의 한국 진출도 시작됐다. 지난 4월 대만 치어리더 선리신(沈立心·33)이 K리그 수원FC 치어리더로 데뷔전을 치른 것이다. ‘대만 1호’ 치어리더, 중국어 별명 ‘좡좡(壯壯)’과 발음이 비슷한 ‘짱짱’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선리신은 “더 많은 문화 교류가 더 많은 치어리더에게 여러 국제 무대 진출 기회를 선사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