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세에 홀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40년 넘은 의사 생활을 마무리하는 정년 퇴임식에서 그렇게 선언했다. 2020년 페루에서 스페인어 어학연수를 시작했다. 코로나로 세계가 국경을 걸어 잠글 때였다. 낯선 해외에서 감금에 가까운 생활을 했지만 다음 해엔 프랑스로, 그다음 해엔 일본으로 또 어학연수를 떠났다. 대만에서의 중국어 연수까지 끝내는데 총 4년이 . 김원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는 이 경험을 모아 최근 ‘언제나 나로 살아갈 수 있다면’이라는 책을 냈다.

김원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가 어학원을 다닐 때 들고 다니던 가방을 들고 힘차게 걸었다. 코로나로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페루 어학연수 시절 기른 수염은 이제 그의 상징이 됐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김원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가 어학연수 시절 들고 다니던 가방과 4년 간의 어학연수 경험을 살려 쓴 책 '언제나 나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정년 퇴임 후 혼자 어학연수를요?

“3년 전 아내가 ‘퇴임하면 어학연수 다녀오지 그래요?’ 하더라고요. ‘내 나이가 몇 살인데’ 싶었지만 점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평소 외국어 공부에 몰두하는 걸 본 아내가 퇴임 선물이라고 생각하라고 했거든요.”

그는 50대에 접어든 2003년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배우기 쉬워 보여서’였다. 이후 중국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까지 손을 댔다. 2011년 중국어와 일본어 시험에서 가장 높은 등급을 획득하고,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도 일정 등급의 자격을 얻었다.

-이미 한국에서 성과를 냈는데… 마음을 먹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바둑에 ‘먼저 둔 돌의 체면을 살리지 못한 수’라는 말이 있어요. 50대에 시작한 외국어 공부가 16년이 됐는데, 앞선 공부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몰두할 수 있는 환경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코로나가 창궐해도, 나는 간다

첫 어학연수지는 페루. 2020년 한국에 코로나19가 급속 확산할 때였다. 한국발 항공기를 돌려보내는 나라도 있었다.

-사태가 심각할 때였습니다.

“코로나에 걸려 출국을 못 할까 봐 미용실도 가지 않았어요. 남미는 코로나 청정 지역이라고 했고, 한국이 어수선할 때였습니다. 무사히 출국했는데 일주일 만에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면서 페루 정부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어요. 장인어른은 ‘괜히 김 서방한테 어학연수를 가라고 해서, 잘못되면 어쩔 거냐’고 아내에게 호통을 치셨대요.”

-어학연수를 할 상황이 아니었겠네요.

“학원도 갈 수가 없어서 하루 4시간씩 온라인 수업을 받았어요. 계란프라이 부치는 법도 몰라 아내에게 배워 갔는데 식당마저 문을 닫더라고요. 선생님들이 알려준 대로 간단한 요리를 해 먹고, 한국에서 가져간 고무 밴드로 집에서 운동을 했지요.”

-2021년 프랑스, 2022년 일본, 2023년엔 대만에서 어학연수를 했다고요?

“페루 국경이 폐쇄되면서 3개월로 예정한 연수 기간이 8개월로 늘어났습니다. 반년 정도의 어학연수 과정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지요. 프랑스어와 일본어, 중국어도 6개월씩 연수를 해보자! 특정 국가에 어학연수를 가도 다른 나라 언어를 잊지 않으려고 공부했습니다.”

-젊은 학생들 틈에서죠?

“10대 후반부터 30대까지, 어딜 가든 제 나이가 가장 많더라고요. 뒤지지 않겠다고 생각해 결석은커녕 지각 한번 안 했어요. 중간에 여행도 가지 않았습니다. 어학연수를 간 모든 어학원에서 가장 높은 반에 들어갈 수 있었지요, 하하.”

프랑스 어학연수를 함께한 그리스, 콜롬비아, 미국 학생(왼쪽부터)과 찍은 사진. /김원곤 제공

책에는 이렇게 적었다. ‘어학원 공부가 뼈대를 만드는 과정이라면 현지 생활 체험은 살과 피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등하교 시간을 비롯한 모든 일상이 또 다른 학습장이 되어주었다.’

-머리가 좋은 편이시죠?

“제가 부인해도 학력이나 직업이 좋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의학 관련 전문 용어만 구사하지 요즘 젊은 세대에 비하면 외국어에 대한 이해나 바탕이 좁을 수밖에 없겠지요.”

중국어나 베트남어 학원에 가면 선생님들이 이런 농담을 한다. 성조가 있고, 비음이 섞인 언어를 배우는 걸 가장 힘들어하는 사람의 3대 조건은 ‘50대 이상’의 ‘경상도’ ‘남성’이라고. 이미 강한 사투리 성조를 사용하는 데다 외국어 특유의 높낮이를 낯간지러워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 역시 53세에 처음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한 경상도 출신 남성. 그는 “발음에 관해선 구멍 난 그릇이나 다를 바 없었다.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지만 구멍 난 그릇의 물은 어떻게든 틈을 막아가며 마실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시간과 돈이 아닌 ‘노력’이 만든 팔자

원래 김 교수의 별명은 ‘몸짱 의사’. 58세이던 2012년 상의를 탈의한 채 찍은 화보집을 냈다. 요즘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보디 프로필’. 운동에 매진하고, 근육을 키워 몸매를 자랑하는 것이 또래는 물론, 젊은 세대에게도 흔치 않을 때였다.

2019년 8월 정년 퇴임을 기념으로 두번째 보디 프로필 사진을 촬영한 김원곤 당시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의 모습. /이진한 기자

-의사로서의 생활도 바빴을 텐데요.

“나이 50이 되니 속절없이 세월이 가게 둘 수 없겠더라고요. 60이 되기 전에 식스팩을 만들어 사진을 찍겠다는 것과 4개 국어를 완전 정복하겠다는 버킷 리스트가 생겼습니다.”

-돈과 시간이 많아 가능했던 일 아닐까요?

“저 보고 팔자 좋대요. 시간이 없고, 돈이 없어 못 한다는 사람이 많지요. 그런데 백수는 다 몸짱이고, 20개 국어를 하나요? 돈 많은 재벌은 다 몸짱에 외국어 능력자인가요?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기 싫어 필사적으로 방어막을 칩니다. 핑계는 달콤하지요.”

-그냥 얻은 게 아니라는 뜻이군요.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기 전, 매일 퇴근 후 어학원을 다니고, 커다란 사전을 들고 다니며 배운 걸 복습했어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도, 집에 가는 길에서도 기억이 안 나면 그 자리에서 사전을 펼쳤습니다. 운동도 똑같아요. 하루 2시간씩 운동을 하고, 달리면서 단어를 계속 외웁니다. 뛰면서 기억나지 않던 단어를 확인한 다음에 샤워를 하죠.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소파에 누워 TV 보고 맥주 마시면서 나에게 ‘팔자 좋은 놈’이라고 합니다(웃음).”

-요즘 사람들에게 ‘노력하라’고 하면 싫어할 텐데요.

“아뇨. 노력하라는 말은 아름다운 말입니다.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까 싫어하는 거겠지요. 아버지가 교통 신호를 잘 지키면 애가 자연스럽게 따라 한다고 하잖아요. 그 말을 하는 노년층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됩니다.”

◇파워 시니어로 살기 위해

김 교수는 국내 심혈관 수술 분야의 권위자이자 환자 대상 평가에서 ‘최고의 의사’로 꼽혔을 정도로 의사로서 성취를 이룬 상황이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라는 직함이 있는 데다, 아들들도 의사로 제 밥벌이를 하는 상황. 새로운 돈벌이나 신분 상승의 도구가 되지 않는데 왜 외국어 공부와 운동에 천착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파워 시니어라 부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노익장의 삶은 지적 활동과 육체적 활동이 적절히 병행되는 생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원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희열'을 위한 지적 탐구가 필요하다"며 "체력과 지력이 어우러져야 파워 시니어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나이 먹고 배워 어디다 쓰냐는 말이 나올 것 같아요.

“남이 아니라 ‘내 희열’을 위한 것입니다. 체력을 강화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면, 처음엔 숨도 차고 힘들지만 30분 이상 달리면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희열,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느끼게 돼요. 지적인 것도 똑같습니다. 은퇴하고 지루한 삶을 살게 됐다는 사람이 많은데,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트레이닝을 하면 거기서 희열을 느낄 수 있지요.”

-구태여 특별한 걸 배워야 하나요?

“나이 먹고 철인 3종을 뛰거나 90대에 말춤을 추는 등 체력적 노익장을 과시하는 사람은 늘어난 반면, 지적인 노익장은 아직 드뭅니다. 어학 공부도 좋지만 사진을 배운다거나 예술을 배우는 것도 좋겠지요. 치매 예방한다고 고스톱 치는 수준을 넘어선 지력(智力)을 기르면 ‘나이를 먹었지만 젊은 사람 못지않다’는 자신감도 생깁니다.”

어학연수를 끝내고 귀국한 것이 작년 9월. 그는 요즘도 아침에 2시간가량 4개 국어를 공부하고, 1시간 30분가량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한다. “어학 공부의 가장 잔인한 부분은 계속 하지 않으면 잊힌다는 점이거든요.” 그의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푸르른 젊음이라는 자연이 준 선물은 이미 내 손을 떠난 지 오래지만, 노력과 성과 그리고 보람이라는 과정을 통해 아름다운 노년이라는 인생의 조각품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수사학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교수에게 4개 국어로 한마디 해달라고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혹은 ‘사랑해’ 같은 단어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가 “쿠카라차(cucaracha), 카파(cafard), 짱랑(蟑螂), 고키부리(ごきぶり)”라고 외쳤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순이었다. “대만 연수 시절, 저를 괴롭힌 ‘바퀴벌레’라는 뜻”이라며 그가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