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에서 사격은 메달 6개(금메달 3개)를 가져온 효자 종목이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여자 공기권총 10m 은메달리스트 김예지 선수는 멋진 사격 자세로 글로벌 스타가 됐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소셜미디어에서 언급할 정도였다. 총성과 진동만으로도 위험하게 느껴지는 사격, 기자가 도전해 봤다. 일단 모자를 거꾸로 쓰고 검은 바람막이를 입어 사진 속 김 선수의 복장까지 따라 했다.
지난 14일 서울 목동종합사격장. 평일 오후 시간대인데도 ‘총잡이들’로 붐볐다. 총과 과녁이 10m 간격을 두고 마주 보는 사로(射路)에 ‘웨이팅’이 있을 정도였다. 공기 소총과 공기 권총을 쏠 수 있는 사로 20칸에 사수들이 금방 가득 찼다. 사격장 바깥 공간에도 열댓 명의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1978년 처음 사격을 시작했다는 사격장 관계자는 “주말엔 바깥으로 줄이 더 길게 늘어서는데 이런 특수는 처음”이라며 “사격장이 별안간 ‘맛집’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사격장에 들어서자마자 신기했던 것은 것은 소리. 예상과 달리 너무 조용했다. 총성이 풍선 터지는 소리보다 작게 들렸다. 귀마개가 필요 없었고 총을 쏘는 사수들 뒤쪽으로 의자에 앉아 편히 쉬는 사람도 많았다. 화약을 터뜨려 총알을 쏘는 실탄 사격이 아니기 떄문이다. 압축된 공기로 총알을 밀어내는 공기총이다. 올림픽에서도 선수들은 공기총을 썼다. 공기총은 소음이 적으면서 비교적 안전하다는 특징이 있다. 공기총에 쓰는 총알은 마치 ‘모래 시계’ 모양이며 구경 5mm로 아주 작다. 은단처럼 보인다. 총을 쏘면 뭉툭한 모래시계 윗면이 앞으로 날아간다. 공격용이 아니기 때문에 앞이 뾰족하지 않은 것이다.
대망의 권총 사격 체험. 사대에 직접 서보니 10m 떨어진 과녁이 까마득하게 멀게 느껴졌다. 몸이 왼쪽을 향하게 서서 두 발을 어깨 너비로 벌렸다. 머리는 오른쪽으로 기울여 마치 오른쪽 어깨에 기대듯이. 권총은 2kg 무게로 꽤 묵직했다. 권총 잡는 법은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뻗어 권총 모양을 흉내 내는 것과 흡사하다. 집게손가락을 굽혔다 펴면, 펑! 격발이다. 하지만 순서가 있다. 쏘기 전에 먼저 조준부터 해야 한다. 팔을 앞으로 길게 뻗어 몸과 직각이 되도록 유지해야 했다. 사나이가 왜 이러나, 야속할 정도로 권총을 든 팔이 부르르 흔들렸다.
권총 위쪽에 조준선이 3개 있다. 세 조준선이 수평선을 이루도록 팔을 미세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다음 권총의 조준선과 멀리 있는 과녁의 점이 일치할 때, ‘딸깍’ 검지로 방아쇠를 당긴다. 단, 팔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방아쇠를 당길 때 힘을 줘선 안 된다는 게 꿀팁이었다.
요령까지 알았지만 몸이 금방 따라줄 리 없었다. 문제는 총을 들 때마다 머리 위치도 팔 방향도 달라진다는 것. 머리와 시선은 매번 같은 위치에 고정하듯 가만히 있고 총을 움직여야 하는데, 자꾸 머리가 움직이는 바람에 조준선을 다시 맞춰야 했다. 그러니 편한 길을 찾는다. 바로 내 시선만 옮겨 잘 조준했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 냉정하게 말하면 ‘정신 승리’요 ‘사격 실패’다. 머리를 흔들어 잡생각을 털어냈다. 그러자 또 조준선이 흔들렸다. 권총을 고쳐 잡았다.
선수들의 자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제야 깨달았다. 매번 총을 쏠 때마다 같은 너비로 발을 벌려 서고 같은 각도로 머리를 기울이고 같은 높이로 팔을 들어올리니까. 기자를 가르치던 교관은 “돌부처처럼 항상 같은 자세로 쏠 수 있도록 수없이 반복해 연습한다”고 했다. 김예지 선수의 멋진 사격 자세도 부단한 수련에서 나왔을 터. 세계신기록을 달성한 과녁을 무심히 바라보던 시크한 모습도 평소 자세 그대로였던 것이다.
명중의 요령은 뭘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과녁에 집중하지 않는 것’이었다. 교관은 “표적이 흐릿하게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눈의 초점을 멀리 있는 과녁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총에 맞추라는 뜻이다. 목표하는 바가 무엇이든, 허황된 미래(원경)가 아니라 눈앞에 벌어지는 일(근경)에 신경을 써야 장기적 목표도 이룰 수 있다는 아이러니.
그게 사격의 매력이었다. 내 자세에 집중하고 나만 잘하면 된다는 것. 대학을 졸업하고 자격시험을 준비 중인 권나영(25)씨는 6일째 이 사격장을 찾았다. 그는 “올림픽을 보고 선수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다”며 “사격을 배우며 집중하다 보니 잡념이 사라져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날 기자가 사격한 점수는 묻어두겠다. 힌트만 남긴다. 초심자의 행운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