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씨에 휴가라니, 어딘가 떠나고 싶지만 집 밖에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쿨케이션’이 대세라는데 여름 여행은 포기하고 좀 선선해지면 갈까. 그러기엔 겨우 얻은 휴가가 아깝다. 이국적이면서도 멀지 않고, 관광과 휴양을 겸할 수 있는 곳은 없을까.

10년 전의 마카오가 떠올랐다. 서울 은평구(29.7㎢)만 한 도시라 관광지 사이 이동 거리가 짧다. 무엇보다 마카오 호텔은 백화점, 미쉐린 식당, 전시관, 공연장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품은 일종의 테마파크다. 엄두를 내지 않아도 시원한 호텔 안을 걷기만 하면, 하고 싶은 건 거의 다 할 수 있는 곳. 과거 포르투갈 식민지라서 유럽의 정취도 묻어난다. 일상과 더위에 지친 직장인은 다시 한번 떠나기로 했다. ‘작은 유럽’ 마카오로.

◇호텔 천국의 변신은 무죄

파리지앵 마카오 호텔 앞 에펠탑. 파리 에펠탑의 절반 크기다. /마카오 관광청

“10년 전에 와보셨다고요? 그럼 마카오에 처음 오신 거네요.” 비행기에서 만난 현지인이 말했다. 마카오 국제공항에서 차로 10분쯤 달리자마자 그것을 실감했다. 런던 엘리자베스 타워(빅벤), 베네치아 운하, 파리 에펠탑…. 눈앞에 유럽이 펼쳐져 있었다. 이탈리아를 본뜬 ‘베네시안 마카오’와 프랑스에서 따온 ‘파리지앵 마카오’. 그 맞은편엔 지난해 5월 영국 런던을 콘셉트로 한 ‘런더너 마카오’까지 새로 문을 열었다. ‘마카오 에펠탑’은 파리 에펠탑(324m)의 2분의 1 크기지만 모양은 똑같다. 런더너 호텔은 빅벤을 실제와 같은 높이(96m)로 재현했다. 인천공항을 이륙해 3시간 40분 만에 닿은 ‘작은 유럽’이었다.

호텔에 들어서면 마카오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로비는 정해진 시각마다 거대한 무대로 변한다. 호텔에 따라 다채로운 쇼가 펼쳐지는데, 방문객은 무료로 즐길 수 있다. 런더너 호텔의 로비인 트래펄가 광장에선 영국풍 음악과 함께 3개 층에 걸친 LED 디스플레이로 ‘근위병 교대식’이 열린다. 붉은색 근위대 예복과 커다랗게 둥근 곰가죽 털모자 차림을 한 근위병들과 기념사진 촬영은 필수. ‘윈 팰리스 코타이’에는 선율에 맞춰 커다란 알에서 깨어나는 불사조(?)가 손님들을 맞이한다.

마카오 MGM 코타이 호텔 로비 천장에서 춤추는 은빛 돌고래. /한은지 기자

‘MGM 코타이’ 호텔 로비에선 은빛 돌고래가 하늘을 유영한다. 아이도 어른도 손을 뻗어보지만, 돌고래는 닿을 듯하면 금세 하늘로 솟아오른다. 드론으로 움직이는 ‘플라잉 돌고래 쇼’다.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매시 정각마다 MGM 코타이 로비에는 큰 LED 화면으로 바다가 들어선다. 아트 리조트를 지향하는 MGM 코타이에는 쇼핑을 위한 명품 브랜드들 사이로 예술 작품이 즐비하다. 중국 청나라 시대의 자수 카페트, 설탕으로 만든 공예품 등 300여 점을 즐길 수 있다. 호텔이 거대한 전시장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파도 풀장도 있다. 갤럭시 리조트의 ‘그랜드 리조트 덱’은 1.5m 높이의 인공 파도와 가장 긴 575m 유수 풀, 9m 높이의 슬라이드 타워를 자랑한다. 그 파도에 몸을 실으면 더위가 싹 가신다. 150m 백사장을 걷다 보면 마치 해변가에 있는 듯한 기분에 빠진다. ‘키즈 아쿠아틱 플레이 존’이나 ‘스카이톱 가든’처럼 아이들을 위한 풀장도 마련돼 있다.

◇카지No! 이젠 마니아의 도시

마카오 그랑프리 박물관 VR 레이싱 체험. 실제 경주용 오토바이를 탈 수 있다. /한은지 기자

‘카지노의 도시’라는 진부한 표현은 잊어도 좋다. 해마다 11월, 마카오는 ‘그랑프리의 도시’가 된다. 1954년 시작해 매년 11월 셋째 주 주말마다 열리는 마카오 그랑프리는 포뮬러3(F3)뿐만 아니라 오토바이 레이스까지 포용한 아시아 최대의 모터 스포츠 현장. 경기 당일엔 마카오의 일반 도로가 서킷으로 탈바꿈하기에 더 특별하다. 레이싱의 박진감을 가깝게 즐길 수 있다.

그 인기에 힘입어 2021년 마카오 그랑프리 박물관은 6배 이상 확장한 규모로 재개장했다. 그랑프리 우승자를 기념하는 테마존과 포뮬러3 시뮬레이터 등 다양한 전시물이 자동차 마니아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동차를 잘 모르는 관광객을 위한 가상 레이싱 체험도 있다. VR 안경을 쓰고 오토바이에 올라타 속이 뻥 뚫리도록 질주한다.

마카오 런더너 호텔의 해리포터 전시장. 해리가 살던 계단 밑 벽장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마카오 관광청

“윙가르디움 레비오사!” 주문을 외우면 마법 세계로의 초대장이 날아든다. 런더너 호텔에 있는 ‘해리포터’ 체험 전시관. 호그와트 기숙사를 배정받고, 지팡이를 잡으면 해리의 벽장, 해그리드의 오두막집, 퀴디치 경기 등 영화 속 장면들이 펼쳐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해리포터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세계관에 흠뻑 젖는다. 엔딩은 역시 볼드모트와 해리의 전투. 일행과 함께 지팡이를 들고 신나게 싸워볼 수 있다. 나가는 길엔 그 유명한 ‘버터 맥주’를 마시자.

◇빌딩 너머 어촌… 동양 속 서양

마카오 유네스코 세계유산 역사 지구의 성바울 성당. /한은지 기자

럭셔리한 호텔 숲과 북적대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쉬고 싶다면 ‘콜로안 마을’로 갈 일이다. 1999년 중국에 반환되기 전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다. 콜로안 마을은 대항해시대 해상무역의 거점으로서 옛 모습을 간직한 어촌. 샛노란 성 프란시스코사비에르 성당과 알록달록한 파스텔 톤의 거리는 포르투갈 시골 마을을 옮겨온 듯하다. 특히 에그타르트집 ‘로드 스토우 베이커리 본점’은 마카오의 명물. 포르투갈 스타일의 부드러운 에그타르트를 맛볼 수 있다.

마카오 남쪽에 위치한 어촌 마을 콜로안 풍경. /한은지 기자

25개의 유적지를 모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역사 지구는 동서양 문화를 모두 품고 있다. 성바울 성당 유적지가 대표적이다. 두 차례 화재로 건물은 소실되고 성당의 전면부와 일부 벽면 등이 남은 성바울 성당은 이른바 ‘입체 성경’으로 창세기와 신약성서 등이 조각상에 새겨져 있다. 조각상 옆엔 “악마가 사람을 유혹해 죄를 짓게 한다”는 글귀가 한자로 적혀 있어 오묘한 느낌을 준다. 성당 바로 옆엔 도교 사원인 ‘나차 사원(Na Tcha Temple)’이 있다. 전염병을 막기 위해 1888년에 지어졌다고. 서양 성당 옆 동양 사원은 마카오에서만 볼 수 있는 동서양의 조화다.

◇잠들지 않는 ‘작은 유럽’

마카오 반도를 둘러보며 야경을 즐기는 ‘오픈 톱 버스 나이트 투어’. /한은지 기자

해가 지면 마카오는 야경으로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윈 팰리스 호텔에서는 분수쇼 ‘퍼포먼스 레이크’가 펼쳐진다. 호텔 앞 호수를 가로지르는 케이블카 ‘스카이 캡’은 투숙객이 아니어도 무료 탑승. 운좋게 분수쇼가 시작되면 형형색색의 쇼를 내려다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밤엔 마카오 야경까지 한눈에 담긴다. 케이블카 대기 줄이 길다면 윈 팰리스 호텔에 있는 폰타나 레스토랑을 추천한다. 통창으로 분수쇼를 바라보며 바닷가재 등을 즐길 수 있다.

마카오의 야경에 흠뻑 취하고 싶다면 ‘오픈톱 버스 나이트 투어’를 이용하자. 지붕이 없는 2층 버스에서 한 시간 남짓 마카오 반도와 코타이를 잇는 사이방 대교를 둘러볼 수 있다. ‘작은 유럽’의 에펠탑, 빅벤을 비롯해 그랜드 리스보아, 마카오타워 등 찬란하게 물든 밤의 마카오를 감상한다. 오픈 톱에서 바람을 맞으며 달릴 땐 해방감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일이 있어야 휴식이 달게 느껴지는 법.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10년 뒤에 다시 와도 처음 만난 것처럼 반겨주기를. 그 새로움으로 심신의 피로를 날려주기를. 비행기에서 멀어지는 ‘작은 유럽’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