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는 이유는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英 산악인 조지 맬러리)

“똥을 푸는 이유는 똥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韓 기자 조모씨)

똥을 퍼야만 하는 이유는 많았다. 푸지 않으면 넘치기 때문이다, 서울이 똥바다가 되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똥판 오 분 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지 조유미 기자가 서울 중구 동호로의 한 가정집 앞에서 정화조에 쌓인 똥을 으깨고 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아찔한 냄새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집중!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 하였으니 눈앞의 곤죽 같은 건 똥이 아니라 초코 셰이크일 수 있다. 기자 조모씨, 똥 푼 지 5분여 만에 깨달음을 얻다.

‘똥둑간’에서 목이 긴 똥바가지로 분뇨 푸는 아저씨 모습, 기억 나시는지? 골목마다 우렁차게 울려 퍼지던 “똥~퍼!” 외침은 점차 “변소차요~!”로 바뀌더니 어느 순간부턴 들려오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고 사라진 게 아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똥을 싸고, 똥은 ‘정화조’라 부르는 공간에 차곡차곡 쌓인다. 서울시에서 생산된 ‘똥의 총량’(분뇨 처리 대상량)만 지난해 기준 약 1만1800t이다. 그 똥을 누군가는 치워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 그들이 있다. 그래서 다녀왔다, ‘똥 치우러’. 혹시 변기 위에 앉아 큰일을 처리하고 있다면, 이 기사를 정독해도 좋겠다.

간혹 맨홀 형태가 아니라 관으로만 이어진 정화조를 비울 땐 빠질 걱정이 없었지만, 똥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구수한 냄새와의 싸움

새벽 3시 20분, 서울 중구 동호로 남산 성곽길. 노란 형광색 조끼 차림의 정화조 기사 2명이 4t짜리 분뇨수거차를 몰고 등장했다. 일명 ‘똥차’. 차량 주변에서 어떤 냄새가 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괜찮았다. 고개를 갸웃. “잘 부탁드린다”며 꾸벅 인사를 하고 함께 올랐다.

이날 작업할 주택가의 가구는 총 14곳. 정화조가 있는 모든 시설은 1년에 한 번 청소를 받아야만 한다. 나와 대면할 똥이 1년 묵었다는 의미다. 허허, 1년 묵은 내 똥도 본 적이 없는데 그런 남의 똥을 보는구나.

첫 집 도착. 한 기사가 호스를 꺼내기 위해 차량 적재함을 열었다. 과거 바가지로 똥을 ‘퍼냈다면’, 이젠 호스로 똥을 ‘빨아낸다’. “아….” 난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냄새는, 안 나는 게 아니라 갇혀 있었을 뿐이었다. 뭐랄까, 방귀를 모아서 몇 년 정도 묵힌 구수하고도 은은한 냄새. 커피 볶는 냄새와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이윽고 정화조 맨홀을 연다. “아…!” 더 긴 탄성이 터져나왔다. 커피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이건 질펀한 똥 냄새다. 똥 냄새가 본격적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냄새와의 싸움, 시작.

◇묵은 똥죽과의 첫 대면

7년 경력의 주임 김모(56)씨가 "똥을 보며 작업해야 밑바닥까지 잘 빨렸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사진은 본지 조유미 기자가 정화조에 호스를 집어 넣고 똥을 빨아들이고 있는 모습.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똥통에 빠져 죽은 기자가 될 수는 없지. 정화조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호스를 잡으며 생각했다. 그러자 7년 경력의 주임 김모(56)씨가 “그럼 안 된다”고 했다. 똥을 보면서 작업해야 밑바닥까지 잘 빨렸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 무념무상(無念無想), 다른 말로 체념. 마침내 똥을 직면한다. 말 없는 똥죽과 눈이 마주치자 약간 울 것 같았다.

분명 똥죽에 호스를 가져다 대고 있는데 물(사실 오줌)만 빨리는 느낌이었다. 김씨가 “껄껄” 웃으며 “호스를 넣었다, 뺐다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배운 대로 하자 비로소 호스가 묵직해진다. 필요할 때 호스를 움직이는 것이 기술. 경력 2년은 돼야 정화조를 깔끔히 비울 수 있다고. 똥을 순간적으로 훅, 빨아들일 때의 흡입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호스를 잘못 밀어 넣었다간 정말 정화조에 빠질 수 있다. 호스가 바닥으로 말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간혹 맨홀 형태가 아니라 관으로만 이어진 정화조를 비울 땐 그런 걱정이 없었지만, 똥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다.

가장 고역은 똥을 휘젓는 작업이었다. 묵은 똥의 겉면에는 고체형 침전물인 ‘슬러지(sludge)’가 생긴다. 굳은 똥이다. 곳곳에 뭉친 똥덩어리도 보였다. 모두 부수고 휘저어 죽처럼 만들어야 빨아들일 수 있다. ‘똥 깨기’ 작업이다. ‘호떡 누르개’처럼 밑부분이 납작한 긴 봉을 쥐고 똥을 저었다. 물티슈와 같은 이물질이 보이면 이 봉으로 건져낸다. 뜨끈한 똥 냄새가 융단폭격처럼 얼굴을 덮쳤다. 이 작업을 할 땐, 견디기 어려워 숨을 참았다.

정화조 청소도 기술이 필요했다. 사진은 첫 작업을 해 본 뒤 앉아 있는 모습.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가장 고역은 똥을 휘젓는 작업이었다. 냄새가 융단폭격처럼 코를 때렸기 때문.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잘 먹고 잘 싸는 게 복입니다

‘만똥(滿똥)’이다. 차량 탱크의 계량기가 금세 차올랐다. 집집마다 똥을 한가득 쌌다는 의미다. 다른 대형 차량과 탱크 호스를 연결해 똥을 넘기려는데, 가까이에 있는 23.5t짜리 차도 “똥이 풍년이라 받기 어렵다”고 했다. 해당 차량이 중랑구에 있는 분뇨 처리 기관인 물재생센터에 똥을 버리고 오면 만나기로. 잘 먹고 잘 싸는 것이 복이요, 좋은 일이다.

차량을 타고 다음 집으로 이동하는 5~15분이 유일한 휴식 시간. 남의 똥을 보는 건 차라리 나은 편이었다. 냄새에 비하면 말이다. 경력 3년 차 전모(48)씨가 “이렇게 실외에서 하는 작업은 좀 나은 편”이라며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하면 냄새가 옷이며 몸에 배 며칠간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대형 빌딩이나 쇼핑몰 등에는 지하 7~8층에 정화조가 있는 경우도 많다고. 분뇨의 양이 많기 때문에 3명 이상의 기사가 길게는 닷새를 내리 붙어 작업한다. 그야말로 ‘죽을 맛’. 그는 반려견 훈련사를 하다가 코로나 이후 손님 발길이 끊겨 이 일을 시작했다.

정화조 차량은 과거 녹색 도색을 뽐냈으나 요즘은 회색과 연두색, 흰색 등을 함께 사용한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아침은 드셨냐’ 묻자 전씨는 “대충 미숫가루 같은 것을 먹었다”고 했다. 김씨는 “그냥 밥솥에 있던 밥에 김치를 올려서” 먹었다. 새벽 3시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까치발로 현관문을 나선다고 했다. 김씨는 20여 년간 ‘봉제 인형’ 납품을 하다 사업이 어려워져 이 일을 시작했다. 대학 성적 장학금을 빼놓지 않고 타던 장성한 아들 둘은 최근 대기업에 입사했다. 자식 자랑에 잠시 차량 안이 하하 호호 웃음꽃.

이들은 2인 1조로 움직이며 1년간 서울 중구 3600가구의 분뇨를 처리한다. 냄새 때문에 더운 여름이 더 고생일 것 같은데, 의외로 겨울이 더 힘들단다. 신당동과 약수동의 정화조는 비좁은 길의 언덕배기나 가파른 내리막길에 설치된 경우가 많다. 눈이라도 내리면 차량 진입이 어렵다. 대로변에 차를 세우고, 호스를 이고 지고 길게는 100m까지 들어가야 한다. 정화조 차량 호스는 둥근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내부에 철심이 감겨 있다. 결코 가볍지 않다.

◇거, 이해 좀 해 주세요~

“시끄럽게 차를 여기다 세우면 어떡해요!” 동이 텄다. 계단이 꼬불꼬불 이어진 고지대 주택의 똥을 처리하는데, 한 시민이 나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일방통행 길에 차를 세우면 어떡합니까?” “왜 냄새나게 우리 집 앞에 차를 세워요?”…. 이날만 대여섯 명의 시민이 인상을 써가며 따졌다.

신당동과 약수동의 정화조는 비좁은 길의 언덕배기나 가파른 내리막길에 설치된 경우가 많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본지 조유미 기자가 호스를 잡고 있는 모습.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그럼 어쩌란 말이냐, 누군가는 이 똥을 치워야 할 것 아니냐. 싸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나) 따로 있는 건 알겠는데, 공공의 쾌적한 생활을 위해 치울 때는 뭐라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냐. 계단 아래로 이어진 호스를 두 손으로 꾹 눌러 고정시키며 생각했다. 다들 똥은 싸고 살 것 아닙니까!

호스 고정은 내게 주어진 새로운 임무였다. 통상 발로 밟고 있지만 난 힘에 부쳐 손으로 잡는 쪽을 택했다. 강렬한 똥의 흐름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딱딱한 상층부 똥을 처리할 땐 투두둑, 소리가 나며 호스가 울린다. 그다음은 상대적으로 ‘스무스~’. 하지만 어느 때라도 호스는 갓 잡은 뱀처럼 퍼덕거리며 사방팔방 요동친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흡입력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집 근처에 차량을 정차한 뒤 호스를 짧게 대는 게 안전하다. 단순히 호스를 옮기기 힘들어서가 아니다. 호스가 단단하기 때문에 화분이나 오토바이 등이 근처에 있으면 쳐서 쓰러뜨릴 수 있고, 호스와 호스를 연결하는 쇠로 된 이음매 부분에 맞았다간 다칠 수도 있다.

입이 댓 발 나와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한 할머니가 내게 뭔가를 쥐여줬다. 바나나 우유 3개와 박카스 2병. “고마워~.” 한 청년은 “늘 고생 많으시다”며 에너지 음료 2캔을 내오기도 했다. 컵라면에 물을 부어 내오거나, 단팥빵 등을 챙겨주는 어르신도 많다. 전씨가 “가끔 마음이 찡하다”며 “모두가 꺼리는 직업이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작업 7시간째. 마지막 집인 재래식 화장실 작업을 마치고 “제가 별로 한 게 없어 죄송하다”고 했다. 이날 푼 똥 13t 중 내가 푼 똥은 1t도 안 될 것이다. 김씨는 “호스 잡아 봤으면 다 한 것”이라며 다독였다. 32년간 싸고 다니기만 하던 인간에서 치우는 인간으로 질적 전환(?)을 이룬 날이었다. 카페에 들어가 기사를 쓰는데, 커피 볶는 냄새가 호스 주변에서 나던 냄새와 비슷해 당황했다. 가만있자, 오늘 저녁은 특식을 먹을까?

본지 조유미 기자가 정화조의 똥죽을 보고 넋이 나가 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