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미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신춘수(56) 오디컴퍼니 대표는 “내가 이런 어마어마한 짓을 저질렀다고?”라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뮤지컬 제작자로서 꿈의 무대인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했으나 처참하게 깨진 직후였다. 브로드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동시에 가장 냉정한 도시. 관객이 찾지 않는 공연은 가차 없이 막을 내린다. 그에게는 벌써 세 번째 실패였다. 브로드웨이는 ‘이룰 수 없는 꿈’처럼 아득해 보였다.

하지만 신춘수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 원작인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로 올해 브로드웨이의 문을 네 번째 두드렸다. 지난 4월 개막한 ‘위대한 개츠비’는 18주(8월 18일 기준) 연속 주당 매출 100만달러 이상을 기록하는 ‘원 밀리언 클럽’을 기록하며 3개월 만에 전체 매출 300억원을 돌파했다. 77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의상상을 받았고, 뮤지컬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은 최근 빌보드 차트 캐스트 앨범 부문 1위에 올랐다.

3전4기. 세 번 실패해도, 죽을 고비를 세 번 넘기면서도 브로드웨이를 향해 뛰어든 부나방. 남들이 저건 ‘풍차’라고 해도 ‘거인’이라 우기며 돌격하는 그는 한국 뮤지컬계에서 ‘돈키호테’라 불린다. 그의 오늘을 있게 만든 풍차는 무엇일까.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세 번 실패하고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로 성공했다. 창을 손에 쥔 그의 별명은 '돈키호테'. 왼쪽은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이발소 의자.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죽어야 사는 남자

신춘수 대표의 첫 경력은 영화 조감독. 충북 청주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에게 유흥이라곤 책과 ‘주말의 명화’뿐이었다. 집에 없는 책은 동네를 수소문해 남의 책장에서 꺼내 읽었다. 주말의 명화를 볼 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소년지에서 주최한 글짓기 대회 결선에 나간 초등학생이었지만 고등학생 때 선배들의 괴롭힘을 피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소위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성적은 바닥을 쳤다. 대학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다 예술대로 옮겨 영화를 배웠다. 곽재용 감독의 영화 ‘비오는 날의 수채화’ 연출부에 들어갔다가 당시 조감독이던 ‘미래의 칸느 박‘ 박찬욱 감독이 그만두면서 얼떨결에 조감독으로 데뷔했다.

-좀 버티면 영화감독이 될 수 있었겠네요.

“저는 당장 영화감독을 하고 싶은데 제대로 가르쳐주질 않았어요. 주먹구구로 일만 시키는 충무로에 적응을 못 했죠. 영화는 꼴도 보기 싫으니 공연을 보면서 방황했는데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기획팀 자리를 제안받아 이 업계에서 걸음마를 뗐지요(웃음).”

-갑자기 뮤지컬이 좋아지던가요?

“삼성그룹이 문화사업을 위해 만든 삼성영상사업단의 첫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제작팀에 들어가 선진 제작 시스템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영화판의 관행에 환멸을 느끼다 브로드웨이 시스템을 보면서 매력을 느낀 거예요.”

지난 2016년, 공연 21주년을 맞은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남경주, 남경읍, 최정원에 의해 1995년 초연된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는 한국 창작 뮤지컬의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스포츠조선

-창업할 만큼 돈이 있었나봐요.

“1998년에 갑자기 쓰러졌는데 패혈증이래요. 3주 만에 깨어났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뮤지컬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이듬해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나마 장남이라고 집에서 지원해 준 전세금을 빼서 반지하를 하나 얻었어요. 거실은 사무실로, 방은 거주 공간으로.”

그는 1999년 창업해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공연권을 얻었다. 남경읍, 서범석, 박건형 등 대학로 스타 배우를 데려와 새롭게 제작한 ‘사랑은 비를 타고’가 흥행하면서 2001년 오디컴퍼니가 공식 출범했다. 땅 밑에 있던 사무실은 번듯한 연습실까지 딸린 채 지상으로 올라갔다.

◇세 번 해서 안 되면 네 번 도전

-첫 작품부터 성공했네요.

“그게 문제였죠(웃음). 벌어들인 돈으로 당시 인기 여배우들을 대거 섭외해 창작 뮤지컬을 만들었는데 참패한 거예요. 이런 거 만들면 좋아들 하겠지, 라며 기고만장했던 겁니다.”

다행히 2003년 소극장에서 출발한 뮤지컬 ‘그리스’가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수익이 났다. 그때 그는 두 번째 죽을 고비를 맞았다.

-또 몸이 안 좋아진 거죠?

“2004년 ‘지킬 앤 하이드’ 초연을 3주 앞두고 숨을 쉬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나 심장 판막 수술을 받았습니다. 지금이야 ‘지킬 앤 하이드’가 유명하지만 당시만 해도 공연을 10여 개월 남기고 투자자가 발을 빼고, 뮤지컬 전용관도 빌리지 못했어요. 제작자라는 놈이 공연 3주 앞두고 수술을 하고, 겨우 첫 공연을 봤지요.”

오디컴퍼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지킬앤하이드'. 당시만해도 뮤지컬을 '화려한 쇼'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비극적인 스토리를 소개한다는 것은 모험에 가까웠다. 한 배역에 두명의 배우를 섭외하는 '더블캐스트'로 신춘수 대표가 처음 시도한 것. /오디컴퍼니

코엑스 대회의장에서 막을 올린 ‘지킬 앤 하이드’는 하루 티켓 판매량 최고 기록을 갈아 치웠다. 국내 뮤지컬 최초로 두 배우가 한 배역을 번갈아 맡는 ‘더블 캐스트’도 도입했다. 삽입곡 ‘지금 이 순간’은 공연예술학과 지원하는 대학 입시생들이 너나없이 불렀고 결혼식 축가로도 자주 쓰이면서 일반인에게도 익숙하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공연을 제작했군요.

“이듬해는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준비하다 다시 혈전이 막혀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근년에 갑상선 수술을 하면서 준비한 ‘데스노트’와 ‘위대한 개츠비’까지 잘된 걸 보면 저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운명인가 봐요, 하하.”

-웃을 게 아니고, 왜 그렇게까지 하나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해서, 영화감독이 되지 못해서 방황하던 시절에 생긴 결핍이 제 안에 누적돼 있어요. 젊은 시절에 늘 남들은 위에 있는데, 나만 아래에 있는 것 같았거든요. ‘넌 안 될 거야’ 하면 용수철처럼 그 결핍이 튀어나와서 ‘그래? 보여주겠어!’라는 오기가 발동해요.”

◇실패할수록 뚜렷해지는 목표

그는 2009년 한미 합작 뮤지컬 ‘드림걸즈’로 처음 미국 시장을 두드렸으나 브로드웨이에 입성조차 못 했다. 2014년 ‘할러 이프 야 히어 미’, 2015년 ‘닥터 지바고’로 다시 도전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야심 차게 준비한 ‘닥터 지바고’는 6주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남은 건 300억원이 넘는 부채.

-뉴욕 도전의 기회비용이 꽤 비싸네요.

“강남 빌딩 두 채 값을 갚아야 하더군요(웃음). 뉴욕에 진출한 작품들은 제작비 회수도 못 했어요. 제가 자리를 비우니 한국에선 수익이 좋지 않았고요.”

-회사 대표라는 지위도 위태로웠겠습니다.

“한국에 와 보니 ‘이 숫자가 맞아?’ 싶더라고요. 브로드웨이 제작자들이 ‘이 사람아, 뮤지컬은 꿈이 아니라 돈이야’ 말하면 저는 ‘무슨 소리야, 돈이 아니라 꿈이지’라며 부인했었거든요. 세 번 실패하고 나서 깨달았어요. 회사 경영을 전략적으로 해야겠구나.”

2019년 스위니토드 연습실에서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 /오디컴퍼니

-그 전까진 안 해본 생각입니까.

“회사 대표가 아니라 예술인, 공연인으로만 산 거죠. 흥행작을 올려서 번 돈으로 다시 돈이 안 되는 작품을 만들었어요. 수익이 있어야 작품도 만들 수 있는데…. 경영대학원에 등록하고, 회사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데 5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2020년 순손실을 기록한 오디컴퍼니는 2021년 1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겨우 손실을 면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작년엔 순이익 규모가 21억원까지 치솟았다.

-브로드웨이에 가지 않았으면 ‘성공의 아이콘’으로 살 수 있었을 텐데요.

“거꾸로 실패의 아이콘이 된 거죠(웃음).”

-한국인이 제작한 뮤지컬이 꼭 해외로 진출해야 하나요?

“나름 한국에서 흥행작을 만들고 유명 뮤지컬 라이선스(공연권)를 따러 해외에 갔더니 ‘너는 아직 멀었다’는 거예요. 이 먼 곳까지 와서 이런 멸시를 받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렇다면 라이선스를 주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습니다. 이 또한 결핍이네요, 하하.”

-꼭 브로드웨이일 이유가 있을까요.

“한국에선 아무리 성공해도 세계로 확장을 못하니까요. 오디(OD)컴퍼니라는 사명도 ‘오픈 더 도어(Open the door)’의 약자예요. 제가 성공하면 자본이 따라올 거고 그럼 또 다른 사람도 걸어갈 길이 트이겠죠.”

뉴욕에서 공연 중인 '위대한 개츠비'. 매일 파티를 여는 백만장자 개츠비의 화려한 의상과 노래로 박수를 받았다. /오디컴퍼니

◇개츠비처럼, 돈키호테처럼

개츠비는 첫사랑을 되찾기 위해 막대한 부를 쌓아 매일같이 파티를 연다. 이미 유부녀가 된 그의 첫사랑은 명문가 출신 남편과 부를 쌓아 돌아온 전 연인 개츠비 사이에서 애정을 저울질한다. 개츠비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그녀의 마음을 알면서도 연락을 기다리다 죽음을 맞는다.

-화려한 파티를 여는 개츠비처럼 화려한 브로드웨이로 가고 싶으셨나 봅니다.

“저는 제 공연을 위해 돈을 벌고, 브로드웨이에서 화려한 막을 올립니다. 개츠비는 첫사랑이 자신을 찾아올 거라 기대했기 때문에 죽을 때도 행복했을 거예요. 제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공연 생각만 한 것처럼.”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쩌나 겁났을 것 같은데.

“뉴욕에 머무는 동안 가장 많이 든 감정은 외로움이었어요. 연습장과 공연장을 나와 호텔로 가는 어두운 골목길에 들어서면 저편에 번쩍번쩍 타임스스퀘어가 보였죠. 새삼 깨달았어요. 이 삶과 저 삶은 길 하나 차이구나. 무대에서 화려하게만 보이는 개츠비도 사실 고독했을 거예요. 성공과 실패도 길 하나 차이고요.”

-개츠비와 닮은 점이 있네요.

“선과 악 양면이 공존하는 지킬에서도, 화려한 삶을 추구하지만 순정파인 개츠비에서도, 풍차를 향해 무모하게 돌진하는 돈키호테에서도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위대한 개츠비' 공연을 준비하며 뉴욕에 머물 때, 신춘수 대표는 매일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서 퇴근했다. 그 골목길 끝에 번쩍이는 브로드웨이가 보였다고.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스타가 흥행 보증수표는 아냐

-외국 작품을 원작으로 해도 ‘K뮤지컬’이 되나요?

“네. ‘위대한 개츠비’는 제가 전반적인 콘셉트를 잡았고, 공연권도 가지고 있습니다. 나머지 주요 파트에도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이 참여했어요. 배우가 외국인이라 해도 한국인이 작품을 만들었으니 K뮤지컬입니다.”

-미국 관객은 한국 관객과 다르던가요.

“좋은 작품에 호응하는 건 비슷해요. 한국은 티켓 값이 비싸고, 표를 구하기 어렵다 보니 관객들이 엄격한 편입니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작은 실수도 용납하질 않지요. 뉴욕에선 기간을 정하지 않고 공연하는 데다 티켓 가격도 다양해요.

지난해 국내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전년보다 8% 증가한 4591억원. 역대 최대치였다. 한국은 이제 미국·영국·일본에 이은 세계 4대 뮤지컬 시장이다. 결코 작지 않다는 뜻이다. 뮤지컬을 찾는 관객이 많아졌지만 외국에서 들여와 한국어로 바꿔 공연하는 라이선스 작품이 70%가 넘고, 20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티켓 가격이 오르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스타 배우가 나오는 대형 뮤지컬만 흥행하는 것 같은데.

“한국은 공연 기간이 한두 달에 불과해요. 짧은 시간에 돈을 벌어야 하니 작품에 대한 입소문보다 흥행 보증 수표가 중요합니다. 팬덤이 확실한 아이돌 배우를 섭외하고, 스타 배우 확보에 열을 올리는 이유지요.”

지금까지 그가 무대에 올린 작품들. '지킬 앤 하이드'나 '드라큘라'처럼 관객의 사랑을 받은 작품도 있지만 그의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을 대변하는 작품으로만 남은 공연도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뮤지컬 업계에서 인정받는 신춘수의 또 다른 능력은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보는 눈. ‘지킬 앤 하이드’ 초연에 충무로 신인 배우 조승우와 성악을 전공한 류정한을 캐스팅했다. ‘더블 캐스트’도 처음 한 시도였다. ‘맨 오브 라만차’에서는 개그맨이라는 인식이 강하던 정성화를 산초가 아닌 돈키호테로 뽑았다. 연극을 주로 하던 전미도, 가수 출신 김준수를 뮤지컬 배우로 키운 제작자이기도 하다.

-좋은 배우는 어떻게 알아보나요.

“저는 배우의 ‘빈 공간’을 알아보는 사람인 것 같아요. 부족한 부분이 채워졌을 때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지 상상하는 재주가 있어요.”

-실제로 빈 공간이 채워지던가요?

“조승우 배우는 당시 20대로 ‘지킬 앤 하이드’ 원작에 비하면 너무 어리다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젊은 에너지로 선과 악을 폭발적으로 표현했어요. 정성화 배우는 조연인 ‘산초’ 캐릭터로 생각하고 만났는데 ‘돈키호테는 안 될까요?’ 반문하는 눈빛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유명한 아이돌 배우만 세우면 흥행이 보장될 텐데요.

“티켓을 팔 수는 있겠지만 배우로서 제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어요. 작품의 완성도를 해치면 안 됩니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 그는 "배우들이 가진 빈 공간을 채우면 좋은 배우가 되겠다는 것이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발탁한 배우들은 뮤지컬계의 대배우로 성장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그의 별명은 뮤지컬계의 돈키호테. 잇단 실패에도 불구하고 원래 생각한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모습 때문이다. 사무실에도 돈키호테 모형이 곳곳에 있었다.

-별명은 마음에 드시나요?

“무모하다는 측면도 있겠지만 한결같은 지향성, 자기 믿음에 대한 긍정성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서 좋아라 합니다(웃음).”

-이번 뉴욕 진출이 실패했어도 또 목숨 걸고 도전할까요?

“세계적인 제작자가 되겠다는 꿈은 확고하지만… 2022년 판막 수술을 다시 받으면서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열한 살인 딸 덕분인지 딸과 함께 누리는 행복을 추구하자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그는 "나를 넘어 우리를 위한 예술을 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 말했다. 자신이 뉴욕 브로드웨이에 길을 열면, 다음 사람도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을거란 기대도 하고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죽을 때 묘비에 뭐라 적고 싶은가요.

“예전이라면 ‘최고의 프로듀서’를 원했을 텐데 지금은 ‘좋은 사람이었다’로 기억되고 싶어요. 신춘수의 아메리칸 드림은 ‘나를 넘어 우리를 위한 예술‘을 하는 거예요.”

-당신을 주인공으로 뮤지컬을 만들면 메인 노래의 제목은 뭐가 될까요?

잠시 궁리하던 그는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이라고 답했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주제곡. 남들이 불가능한 꿈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꿋꿋이 전진하는 돈키호테의 강인한 집념이 담겨 있다. 가사는 이렇게 흘러간다.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아무튼, 주말] 신춘수 프로듀서 인터뷰_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