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에 소주, 치킨에 맥주, 파전에 막걸리. 한국인이라면 거절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흔히 술과 안주의 궁합을 말할 때 ‘마리아주’라는 표현을 쓴다. 개성이 다른 두 장르가 만나 최상의 맛을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스키에는 뭐가 어울릴까?
위스키 애호가에게 묻는다면 대부분 무미건조하게 ‘물’이라고 답할 것이다. 다소 퉁명스럽게 들릴 수 있겠지만 정답에 가깝다. 제대로 만든 위스키라면 그 자체로 완성형에 가깝기 때문. 위스키의 본질은 풍미에서 나온다. 숙성 연수가 올라갈수록 맛은 섬세해지고 복합미가 더해진다. 위스키 한 잔으로 얼마든지 다채로운 맛의 향연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잘못된 안주 선택은 위스키의 풍미를 망칠 수 있다.
삼겹살 연기 자욱한 노포에서 위스키를 마신다고 치자. 육즙 가득한 돼지 두어 번 뒤집는 사이 섬세한 위스키 향은 온데간데없다. 위스키를 따른 잔에 연신 코를 박아봐야 매캐한 냄새만 담겨 있을 것이다. 김치찌개는 어떨까. 매운맛은 통각에서 온다. 입안이 얼얼한 상태에서 위스키가 혀에 닿는 순간 진짜 ‘매운맛’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위스키고 뭐고 물이 먼저다.
그렇다고 공복에 40도 넘는 술을 흘려보낼 일도 아니다. 최근 이 문제에 대한 모범적 방안을 제시한 곳이 있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의 ‘발베니’가 국내 미쉐린 셰프들과 음식 페어링을 시도한 것이다. 발베니는 코로나로 ‘홈술’이 유행할 때 국내에서 위스키 광풍을 불러일으킨 브랜드. 특히 ‘발베니 12년 더블우드’는 입고와 동시에 사라진 ‘오픈런’ 품목이었다. 소유에 대한 욕망이 유명세로 이어진 대표 사례. 물론 맛이 받쳐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발베니는 1892년 증류소 설립 이래 보리 재배부터 병입까지 모든 게 한 지붕 아래서 이루어진다. 장인이 오크통까지 만들어 위스키를 숙성하는 몇 안 되는 스코틀랜드의 증류소다. 타협하지 않은 장인 정신이 지금의 발베니를 있게 한 셈이다. 발베니는 이런 생각을 가진 국내 미쉐린 식당들과 컬래버를 진행했다.
지난 19일 서울 성수동에 마련된 ‘발베니 메이커스 테이블’ 팝업스토어. 이날 ‘기가스’의 정하완 셰프가 ‘팜 투 테이블’이라는 주제로 눈길을 끌었다. 밭에서 갓 뽑은 재료들로 요리를 준비한 것. 위스키 풍미를 해치지 않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드러났다.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린 요리는 위스키에 숨겨진 풍미를 하나하나 펜으로 밑줄 그어가며 알려주는 듯했다. 각종 채소부터 관자, 숙성 채끝과 오리 가슴살 등 6가지 요리를 슴슴하지만 감칠맛 나게 녹여냈다. 페어링 된 술은 발베니 12년, 14년, 16년, 21년. 높은 도수가 익숙하지 않은 입문자도 페어링을 통해 위스키에 켜켜이 숨겨진 맛들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김미정 발베니 앰배서더는 “보통 위스키 페어링이라고 하면 초콜릿, 과일 등을 생각하는데 메이커스 테이블로 그 무궁무진한 세계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팝업의 취지를 설명했다. 팝업 시작과 동시에 모든 다이닝 예약은 완판됐다. 하이볼처럼 위스키도 이제는 식중주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유난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 특별한 날, 한 번쯤은 전문가의 손길을 경험해 보자. 물론 정말 귀한 위스키라면 ‘니트’를 외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