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동에서 서대문에 있는 동물병원까지 간 이유는 그 병원 원장님이 고양이를 특히 잘 보는 수의사라는 아내의 말 때문이었다. 차가 없던 우리 부부는 고양이 순자를 케이지에 넣은 뒤 택시를 잡았다. 택시 기사 중에는 동물이 타는 걸 질색하는 분들이 꽤 많다는 걸 아는 나는 차에 타면서 “고양이가 같이 간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웬걸, 이 아저씨는 괜찮다고 말하는 걸 넘어 동물에게 매우 호의적인 분이었다. 자기도 개를 기르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저씨가 묻지도 않았는데 우리 집 고양이는 잇몸이 약해서 고생하다가 결국 이빨을 거의 다 뽑을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데 결국 그 과정에서 200만원이 넘는 치료비가 들었다고, 우리 집 의료비 1위는 다름 아닌 고양이라고 푸념을 해댔다. 그러자 택시 기사 아저씨가 껄껄껄 웃으며 자기가 키우던 개가 암에 걸려 입원했는데 죽을 때까지 계속 입원 치료를 시키는 바람에 3000만원을 쓰고 갔다고 응수했다.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아내가 원해서 또 개를 들여 애지중지 키운다고 했다. 나는 졌다고 말하며 크게 웃은 뒤 택시비에 팁을 조금 더 얹어 드렸다.
우리 집 의료비 1위에 등극한 그 고양이의 이름은 ‘순자’다. 7년 전 소설가 한 분이 우리에게 고양이가 어울릴 것 같다며 여러 번 입양을 권했지만 아내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바보 같은 남녀가 뒤늦게 만나 애 없이 살며 서로를 챙기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인데 또 다른 생명체를 책임진다는 게 영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결국 데려오기로 마음먹은 건 함께 태어난 형제 중 유독 그 고양이만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한 후였다. 이 고양이는 ‘스코티시 폴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귀가 접히지 않는 스트레이트였다. 귀가 접혀서 귀여워 보이는 ‘스코티시 폴드’ 형제들과 달리 얘만 혼자 귀가 쫑긋해서 별로 인기가 없다는 게 임시 보호자의 설명이었지만 우리는 혼자 유별나게 생겨서 손해(?)를 보고 있는 그 고양이가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이름을 고민하던 아내가 “순자, 어때?”라고 내게 물었다. 왜 하필 순자냐고 하니 “순하게 살았으면 해서”라는 답을 내놓았다. 자기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순한 게 좋더라고 하면서 “당신도 순해서 택한 거야”라고 덧붙였다. 나는 역시나 순순히 아내의 의견에 따랐고 그렇게 순자는 우리 식구가 되었다.
자랑할 게 하나 있는데, 그건 순자가 소설가 정지아 작가 집에서 온 족보 있는(!) 아이라는 사실이다. 구례에서 어머니와 살며 고양이와 개를 여러 마리 키우고 있는 정지아 선생은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서울로 올라와 팬과 독자들을 만났다. 대학로에서 오은 시인의 사회로 북토크가 열렸을 때 아내와 나도 참석했는데 선생은 ‘자본주의자의 적’ 이야기를 하면서 “고양이 두 마리의 이름을 그냥이, 저냥이라 지었는데, 하도 그동안 너무 돈 개념 없이 살아서 ‘이제라도 좀 자본주의적으로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에 그다음 고양이들은 구글이와 애플이다”라고 해서 좌중을 웃겼다. 아내와 나는 그냥이와 저냥이의 새끼인 순자를 키우는 부부라고 인사를 드린 뒤 집으로 한번 놀러 가고 싶다고 졸랐는데 의외로 정지아 선생이 흔쾌히 허락하는 바람에 정말 구례로 내려가 함께 술을 마시고 하룻밤 자고 왔다. 순자 덕분에 얻어먹은 술이었다.
고양이는 개보다 조용하고 독립적인 동물이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일단 순자는 말이 되게 많았다. 물론 진짜로 말을 하는 것은 아니고 뭔가 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앵앵거리며 시끄럽게 울었고 야단을 치면 말대답하듯이 소리를 질렀다.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되면 내 손가락을 물기도 했다. 이빨도 몇 개 안 남은 주제에. 아내는 물지 않는데 왜 나만 물까 궁금해했더니 ‘짐승도 먹이를 주는 사람은 물지 않는다’라며 아내가 웃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는 순자와 이상한 경쟁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끔 그녀를 글쓰기에 이용한다. 순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생활 단막 에세이 ‘토킹캣 순자’를 가끔 쓰는 것이다. 순자가 마법에 걸려 정말로 말을 할 수 있는 고양이가 되었는데 그 능력은 새벽에 잠깐뿐이라 나하고만 대화를 나눈다는 설정이다. 나름 꾸준히 쓴 덕분에 그 시리즈를 좋아하는 팬들도 생겼는데 며칠 전엔 외출했다 돌아오니 순자가 없어져서 아주 혼비백산했다. 실수로 현관문을 열어놓고 외출하는 바람에 순자가 밖으로 나간 것이다. 아내와 나는 한밤중에 성북동 언덕길에서 순자를 외쳐 부르다 포기하고 들어와 잤는데 새벽 네 시 반에 순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났다. 순자 화장실을 밖에 내놓고 자보라는 어느 애묘인의 충고를 따른 덕분이었다.
다시 돌아온 순자가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고양이 한 마리의 존재감이 이렇게 큰 줄은 몰랐다. 혜자야 순자야 강변 살자~ 아, 이건 아니구나. 그냥 우리 셋이 오래오래 잘살아 보자꾸나, 순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