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거장 와인메이커 ‘안젤로 가야’는 코스 요리를 빗대어 “여러 상대방과 짧게 데이트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은 한 명과 진득하게 데이트를 하고 싶다며 이탈리아 방식대로 푸짐한 식사를 한 번에 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사람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의 짓궂은 농담에 나는 어느 정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하지만 때로 산만함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중간중간 멍하니 앉아 음식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반갑지 않았다.
소내장 요리 전문점 ‘호루몬’에 가게 된 것은 반쯤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소내장 요리를 코스로 내놓는 곳은 한국, 일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인생이란 확률 게임에서 ‘코스 요리는 지겹다’라는 내 생각이 틀릴 가능성도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베팅을 하기로 했다.
도산공원을 바라보는 샛길에 들어선 건물 2층에 ‘호루몬’이 있었다. 안쪽에 자리한 주방은 그 가게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곳이었다. 자리에 앉으면 건너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칸막이가 섰다. 환한 주방에는 단 두 명만 보였다. 주인장은 내내 주방을 지켰고 나머지 하나는 홀과 주방을 오가며 음식을 나르고 테이블을 치웠다. 가게 안에 손님들은 반란을 꾸미듯 조용히 앉아 음식을 먹었고 주방에서는 팬터마임(무언극)을 하듯 묵묵히 하지만 바쁘게 움직이며 칼을 휘둘렀다. 사방이 어두운 가운데 잔잔한 조명이 테이블 위를 비췄고 음식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시작은 천엽과 ‘스모츠(すもつ)’라 부르는 소내장 요리였다. 천엽은 깨끗이 씻어서 새하얗게 보일 정도였다. 소의 직장을 얇게 잘라 만든 스모츠와 천엽 모두 간장과 식초 소스에 무쳐 새콤하게 절이고 쪽파를 송송 썰어 올렸다. 쫄깃한 식감과 산미가 주는 개운한 맛이 느껴지며 몸에 청량한 기운이 돌았다. 질기거나 냄새가 날 수 있는 부위를 마치 수술하듯 말끔하게 정리한 기술이 소란스럽지 않게 드러났다. 낯선 곳을 새롭게 찾았을 때 생기는 긴장감이 말끔히 사라졌다. 작은 그릇의 바닥이 보이자 곧 무쇠 프라이팬과 함께 버섯 염통구이가 나왔다. 소금과 굵은 후추로 맛을 낸 버섯 염통구이는 높은 온도에서 빠르게 익혀냈다.
버섯은 고기를 먹는 것처럼 육질이 느껴졌고 염통은 특유의 탱글탱글한 식감이 살아 있었다. 재료는 일정하고 반듯하게 잘려 모두 고르게 익어 있었다. 그다음은 대창구이였다. 곱창집처럼 대창이 통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하얀 지방 부위가 위로 오도록 편평하게 펴서 역시 무쇠팬 위에 익혔다. 팬에 닿은 부분은 바삭하게 익어 과자 같았고 위쪽 지방은 부드러워서 씹을 때마다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조금 죄책감이 드는 맛이었지만 한 젓가락 분량으로 손질해 놓은 덕에 마음이 덜 무거웠다.
대창구이를 먹는데 테이블 한편에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갖다 놓고 얇고 넓은 냄비를 올렸다. 그 위에 채소와 두부 따위를 쌓은 뒤 육수를 붓고 가스불을 켰다. 음식이 끊기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는 것이었다. 대창을 다 먹을 즈음에는 얇게 저민 소고기를 올려 스키야키를 준비했다. 그리고 또 스키야키가 완성된 가스레인지 위에는 일본식 대창전골인 모츠나베가 이어달리기를 하듯 놓이는 식이었다.
밀도 있는 단맛을 간장의 짠맛과 함께 쌓아 올린 스키야키와 내장 지방에서 비롯된 감칠맛이 한가득 담긴 모츠나베를 먹어 치웠을 때 테이블은 볶음밥과 소꼬리찜으로 다시 찼다. 눅눅한 느낌이 전혀 없는 볶음밥과 달달한 양념이 속까지 밴 소꼬리찜을 겨우 마저 먹었을 때 서울은 가을밤의 고요함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자르고 저미고 끓이고 구운 소내장 요리는 치밀하게 계획된 음모가 그러하듯 어설프게 어긋나는 경우가 없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세 가지였다. 자리에 앉아 오고 가는 음식을 바라볼 것. 젓가락을 들었다 놓을 것. 그리고 처음 데이트를 하는 것처럼 매번 새롭게 올라오는 음식을 먹으며 웃고 떠들 것. 나머지는 모두 마피아처럼 입이 무거운 주인장에게 맡겨 놓을 뿐이었다.
#호루몬: 저녁 코스 단일코스 4만5000원. 010-2893-78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