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6년 9월 3일. 나는 새벽 3시에 카를스바트(카를로비바리)를 몰래 빠져나왔다.” 37세 괴테는 바이마르 공국의 휴가를 받아 오소리 가죽 가방만 하나 들고 이탈리아로 향했다. 베스트셀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작가로 성공했지만, 행정가라는 직업의 압박이 컸던 때였다. 1년 10개월간의 여행을 일기와 편지, 보고서 형식으로 남겼다. 여행 30년 후 나온 책이 ‘이탈리아 기행’이다. 이탈리아 사람, 땅과 문화를 꿰뚫는 괴테의 지적 시선이 담겼기에 출간 200년이 넘었지만 여행자의 필독서로 남았다. 근속 휴가길, 기자는 그 책을 다시 챙겼지만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그는 마차를 타고 다녔지만, 지금은 고속 기차와 렌터카 시대가 아닌가.
황제가 건설한 ‘이상적 도시’
인구 5만명 소도시 티볼리(Tivoli)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두 곳이 있다. 평범한 문으로 들어가 정원과 폭포의 천국을 만나는 곳이 ‘빌라 데스테(Villa d’Este)’다. 이폴리토 2세 데스테(1509∼1572) 추기경의 집무실이었는데 정원 미학의 궁극이라 불러 족하다.
‘빌라 아드리아나(Villa Adriana)’는 로마 황제가 꿈꾼 ‘이상적 도시’의 원형이다. 마키아벨리가 꼽은 ‘로마 오현제(五賢帝)’ 중 하나인 하드리아누스(Hadrianus·재위 117~138)는 콘크리트 기술을 전파하고, 판테온과 베네리스 신전을 건설했다. 헬레니즘을 동경한 그는 로마에서 ‘가출’, 30㎞ 떨어진 티볼리에 별궁을 지었다. 118년에 공사를 시작해 1㎢(120헥타르)에 5000명을 수용하는 공중목욕탕, 무대를 원형 수로가 감싼 바다 극장, 길이 121m 인공 호수 카노푸스(Canopus), 지하 회랑, 도서관 등 이상적 요소를 다 넣었다.
하지만 빠진 게 있었다. 연인인 그리스 출신 청년 안티노우스. 그는 이집트 나일강에 빠진 황제를 구하고 열아홉 살에 익사했다. 그 사건이 서기 130년, 그때부터 4년 후 별궁이 완성되자 황제는 별궁에 칩거했다. 모든 것을 이루고 중요한 것을 잃은 절대 권력의 마음을 짐작하며, 카노푸스를 걸어봤다. 헤아릴 수 없었고, 다만 작열하는 햇살에 목덜미가 뜨거웠다.
티볼리는 절경에 위치한 레스토랑이 여럿이다. 1720년 개업한 ‘레스토랑 시빌라(Ristorante Sibilla)’는 기원전 1세기에 만든 ‘베스타 신전’에서 2m 거리에 레스토랑 테이블을 뒀다. 이런 건 로마나 피렌체에도 없다.
‘영주 체험’ 같은 이탈리아 농가 주택
14세기 피렌체가 대형 돔을 만들 확신도 없이 ‘두오모 대성당’ 건축을 서두른 것은 경쟁 도시 ‘시에나(Siena)’의 대성당(1229년 착공) 때문이었다. 확실히 중세에는 시에나가 피렌체보다 잘나갔다. 시에나는 13~14세기 무역 최강자였다. 거상들은 땅을 사들이고, 성당을 짓고 광장을 만들었다. 목초지 사이에는 ‘문장(紋章)’을 찍듯 독특한 형태로 사이프러스 군락지를 조성했다. 방풍림 겸 랜드마크였다. 발도르차(Val d’Orcia) 국립공원에서 정점을 찍는 토스카나 전원 풍경의 ‘포인트’ 역시 사이프러스 나무다. 이탈리아에서 3000년 이상 키워왔지만, 특히 르네상스 화가들은 목가적 풍경의 ‘방점’을 사이프러스에 뒀다. 시에나 부자들은 화가보다 먼저 ‘대지예술’을 시도했다.
토스카나에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와인 도시’ 몬테풀차노에는 세련된 레스토랑이 더 생겼고, 차분한 키안티에도 그 바람이 몰려왔다. 요즘은 농가 주택 체험 열풍이 분다. 농업과 관광, 두 단어를 합친 ‘아그리투리스모(Agriturismo)’는 이탈리아 농촌의 새 활력. 풍경에 수백 년간 투자한 토스카나 농가 주택 인기가 높은 편이다. 기자가 고른 키안티(Chianti) 근처 농가 주택은 방 하나짜리 독채와 너른 마당이 좋았지만, 레스토랑과 수영장은 더 근사했다. ‘농민 체험’보다는 ‘영주 체험’에 가깝다고 하겠다.
이탈리아의 파리, 파르마
이탈리아가 ‘원산지 표시 보호(PDO, DOP)’ 제도로 보존하는 식품 138종 중 44종이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에서 나온다. ‘순창 고추장’ ‘광양 매실’로 유명한 전라도와 비슷하다. 이 지역 대표 도시가 파르마와 모데나다.
먼저 파르마(Parma)의 평범한 카페에 앉아 ‘파르마 햄’ 한 접시(18유로)와 요즘 MZ들에게 인기인 이탈리아 식전주 ‘아페롤 스프리츠’를 시켰다. 치즈 두 조각을 얹은 프로슈토가 중국집 양장피 중(中)짜 크기로 나왔다. 별로 짜지 않아 올리브 오일을 뿌려 삼겹살 먹듯 했는데도, 결국 남았다.
먹성 좋은 사람은 ‘파르마’를 프로슈토(파르마햄)와 파르메산 치즈의 고장으로 기억한다. 멋쟁이들에겐 향수 ‘비올레타 디 파르마’ ‘아쿠아 디 파르마’의 고향, 오페라 팬에게는 베르디와 파가니니의 안식처, 파르마는 얼굴이 여럿이다. 이 모든 것을 아울러 마리 루이즈는 이렇게 말했다. “음악과 미식, 토론에 관한 확실한 태도만 있다면 파르마에서 살기 어렵지 않다.” 문화도, 미식도, 학문도 발달한 곳이라는 뜻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딸이며, 나폴레옹을 경멸하다 그의 둘째 부인이 되어 아들을 낳은 마리 루이즈(1791~1847) 여공작은 빈에서 출생해 파르마에서 죽었다. 부인은 말년에 파르마를 ‘유럽 취향의 수도’로 만들고 싶어 했다. 파르마를 ‘이탈리아의 아테네’ ‘작은 파리’라 부르는 이유다. 더 이상 화려하기도 어려운 레조 극장이 그녀 덕에 탄생했다. ‘성모 승천’ 천장화는 유럽 성당에 흔하지만, 귀한 ‘핑크 대리석’의 파르마 대성당은 더 특별하다. ‘천장화 거장’ 안토니오 코레조(Correggio)의 성모 승천이 온전히 남아 있다.
파르마를 찾는 육식주의자들은 파르마 외곽 ‘안티카 코르테 팔라비치나’를 빠뜨리지 않는다. 주인 마시모는 “돼지는 베르디의 음악과 같다. 버릴 것이 없다”는 말로 유명하다. 1800년대부터 최고급 쿨라텔로(프로슈토 일종)를 생산해 왔다. 지금은 리조트와 박물관, 레스토랑, 햄 공방을 운영한다. 리조트에 머물며 프로슈토와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지만, 파르마 시내에서 3대째인 ‘파리치(Parizzi)’ 레스토랑도 괜찮다. 수준급 메인 요리에 지역에서 생산한 프로슈토와 치즈를 전식과 후식으로 듬뿍 내준다. 소박한 숙소도 운영하는데 숙박+식사 패키지 가격이 매우 합당하다.
‘증발’의 예술, 모데나 발사믹
파르마와 볼로냐 사이, 모데나(Modena)가 있다. 마시모 보투라의 레스토랑, 페라리 공장, 그리고 발사믹 식초 농장으로 유명하다. 고대 로마의 발명인 포도 식초, 발사믹 제조 공법을 모데나 사람이 법원에 등록한 것이 1747년이었다. 나무통에서 60일 이상 숙성해야 PGI(지리적 표시 보호) 인증을 받고, 12년이 넘으면 ‘DOP’ 표지를 받는다.
전날 예약한 ‘빌라 산 돈니노(San Donnino)’ 농장을 찾았다. 발사믹은 빛이 잘 들고 통풍이 잘되는 다락방에서 시작한다. 한마디로 ‘증발’의 예술. 포도 원액을 밤나무, 오크, 체리 등 나무통을 바꿔가며 1년에 약 10%씩 증발시킨다. “발사믹을 담근 자는 맛을 못 봐도, 그 자식과 그 자식의 자식은 맛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완성되면 협회가 농도와 산도를 재 인증한 후 원액을 통째로 들고 가 병입한다. 품질 관리 차원이다. 모데나에서는 파르메산 치즈 조각에 이 ‘블랙 골드’를 한두 방울 떨어뜨려 먹는 게 최고라고 말한다.
가르다 호수에 눕다-시르미오네와 데센자노
“친애하는 조이스. 내 손님으로 와서 일주일을 여기서 보내면 좋겠어요. 당신이 뭐라건, 이곳은 여행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카툴루스(고대 로마 시인)와 내가 보장해요.” 1920년 에즈라 파운드는 세 살 많은 제임스 조이스를 시르미오네(Sirmione)로 초청한다. 여행을 싫어하던 조이스였지만, 결국 아들과 와서 일주일을 지냈다.
밀라노 근처 ‘코모 호수’가 유명하지만,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호수는 ‘가르다(Garda)’이다. 알프스 빙하수의 거대한 호수(면적 370㎢)는 길이가 50㎞, 연면적이 서울의 절반 정도다. 기원전 1세기부터 베로나 귀족의 휴양지였다.
시르미오네 끝 자마이카 비치에 가면 ‘파노라마 바다’가 펼쳐진다. 거대한 석회암(라임스톤) 단층이 모래사장을 대신하는 호숫가에선 리트리버가 물 위를 겅중겅중 뛰고,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바위에 누워 있었다. 베네치아의 도전적 바닷물과 달리 보드랍고, 안온하다. 괴테는 이렇게 썼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함께 즐길 친구들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13세기 스칼리제라 요새도 대단한 구조물이라는데, 기자는 ‘마비노 성 베드로 성당’에서 오래 잊었던 정서가 살아났다. 765년에 지은 작은 성당에 빛바랜 12세기 프레스코화, 소박한 나무 들보 천장, 인생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움’이라 부를 것이다.
시르미오네에서 여객선을 타면 20분 만에 호수 건너편, 데센차노(Desenzano)에 도착한다. 베네치아 공국의 지배를 받던 15세기, 상업항으로 번성했다. 유적지도 여럿이지만, 포르토 베키오(Via Porto Vecchio) 거리 풍경 사진을 가장 많이 찍었다. 파스텔톤의 근대 건축물과 흰색 파라솔, 정박한 선박이 그저 ‘엽서’다. 영국, 독일 등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밤늦도록 광장에서 술을 마셨다. 낯선 소음이 거슬리지 않는 것을 보니, 확실히 여행길이었다.
구글보다 사람... 이탈리아 여행 팁
요즘 이탈리아에서는 담배 가게(Tabacchi)에서 ‘종이 버스표’를 살 필요가 없다. 신용카드, 애플페이 다 된다. 평일 아침 9시 파르마 시내의 한 타바키. 가게는 작고 야외 테이블이 5개쯤 됐다. 이상하게 북적거려 남들 따라 카푸치노를 시켰다. ‘인생 카푸치노’를 만났다. 오래된 도시에 사람 많은 타바키가 있다면 무조건 들어가자. 동네 장사 그냥 하는 것 아니다. 구글 리뷰에 이런 얘기는 없다.
베로나 오페라 축제 기간 중 원형극장 가는 버스가 노선을 갑자기 바꿔 버렸다. 베로나에서 시르미오네로 가는 버스도 예정된 정류장에 서지 않았다. ‘구글 지도’ 보고 척척 찾아가는 건 미국, 일본, 한국 같은 곳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구글 대신 사람에게 확인하자. 로마, 밀라노 같은 대도시에선 냉정하거나 내 주머니를 노리지만, 베로나·볼로냐 정도의 중소 도시로 오면 사람이 싹 달라진다. 영화 ‘트루먼 쇼’ 출연자처럼 친절한 사람이 많다. 다른 사람 만나러 가는 게 여행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