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뚝 떨어진 날씨에 얼굴에 바를 화장품을 사러 온라인 화장품 편집숍에 접속한 직장인 A씨. 화장품 구경을 하다 신체를 구성하는 부위를 새삼 살펴보게 됐다. 보디로션·세안크림 같은 단순한 구분은 시대에 뒤처진 것이었다. 속눈썹과 겉눈썹, 발뒤꿈치와 헤어라인 전용 등 화장품이 세분화되고 있는 것이다. A씨는 “남들은 속눈썹, 겨드랑이, 발과 등을 나눠 따로 관리한다고 해서 눈썹 영양제와 등에 붙이는 마스크팩을 샀다”고 했다.
화장품 시장이 새로운 광맥을 발견했다. 신체의 작은 부분까지 꼭 집어 특별 관리하는 ‘핀셋 화장품’의 시대. 핀셋 화장품은 예컨대 목이라면 주름이냐 탄력이냐, 입술이라면 각질이냐 주름이냐, 자외선 차단이냐 등으로 기능을 나눈다. 얼굴에 쓰던 마스크팩은 한복 버선 모양으로 탈바꿈해 ‘촉촉한 발’의 필수품이 됐다. 얼굴에 난 작은 솜털과 등에 난 뾰루지까지 공략하는 제품도 등장했다. “신체 부위별로 전용 화장품을 써야 한다”는 주장에 지갑을 열다 보면 맙소사, 화장대는 어느새 만석이다.
◇얼굴도 부위별 공략
핀셋 화장품들은 눈썹, 솜털, 입술, 광대 등으로 부위를 세분화해 공략한다. 솜털 왁싱, 페이스 왁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면 얼굴에 난 솜털을 제거하는 제품들이다. 솜털을 제거하면 껍질 벗긴 삶은 달걀처럼 얼굴이 매끄러워진다는 주장. ‘안색도 관리 대상’이라는 뜻이다. 피부과 시술이나 피부관리실에서 비싼 돈을 들여 하던 시술을 셀프로, 저렴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이들의 마케팅 포인트.
어떤 털은 제거 대상이 되고, 어떤 털은 가꾸는 대상이 된다. 단순히 마스카라로 색만 입히던 속눈썹에는 전용 영양제가 등장했다. 속눈썹이 있다면 겉눈썹도 있는 법. 속눈썹 영양제는 좀 더 길게, 겉눈썹용은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고 홍보한다. 턱수염 깎느라 뻣뻣해진 턱을 촉촉하게 만들어준다는 제품들은 ‘옴므’라는 이름을 달고 남성을 겨냥한다.
색을 입히거나 보습에 치중하던 입술 제품도 달라지고 있다. LG생활건강의 브랜드 CNP가 내놓은 ‘립세린’은 각질·주름·탄력 등 다섯 가지로 기능이 나뉘고, 아모레퍼시픽그룹의 라네즈는 입술에만 바르는 마스크팩 ‘립 슬리핑 마스크’를 내놓았다. 얼굴에 붙이는 마스크에서 입술과 눈 부위만 떼어져 있는 것과 달리 이를 따로 관리하는 마스크 팩이 등장한 것이다. 입술 전용 자외선 차단 제품도 나왔다. 일시적으로 입술을 통통하게 만들어준다는 ‘립 플럼퍼’는 최근 10~20대에서 인기다.
◇등·가슴·발꿈치도 따로 관리
옷 속에 숨겨져 있는 ‘보디’도 세분화되고 있다. 노출이 많은 여름철에는 등드름(등+여드름)과 가드름(가슴+여드름)은 물론, 겨드랑이까지 관리 대상이 된다. “여름철 살짝 드러나는 등과 가슴 부위의 뾰루지가 신경 쓰였다” “여드름이 터질까 봐 흰 티를 입기 두렵다”는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등드름 전용 화장품’이 등장했다. 가끔은 몸의 앞뒤를 뒤집어 가슴 부위에 나는 여드름에도 쓸 수 있다고. 겨드랑이는 피부 톤을 하얗게 만드는 전용 크림으로 관리한다. 팔꿈치나 발꿈치에도 발라 ‘안 씻은 것 같다’는 오해를 없앤다.
매일 무거운 가방을 지고,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 때문에 한껏 치솟은 승모근에 붙이는 패치는 과거엔 상상도 못한 핀셋 화장품 중 하나. 얼굴에 붙이던 마스크팩이 목 주름과 광대, 뱃살을 넘어 승모근으로까지 이동한 셈이다. 업체는 “마그네슘이 함유돼 있고, 시원함이 느껴지는 패치가 아름다운 어깨 라인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광고하지만 손바닥만 한 패치가 종일 업무로 치솟은 승모근과 싸워 이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핀셋 화장품은 세대도, 종족도 넓힌다. 어르신의 전유물이던 흑채는 얼굴에 바르는 쿠션 팩트처럼 모양을 바꿔 헤어 라인을 정리하고 싶어하는 젊은이의 필수품으로 거듭났고, 발 냄새 전용 샴푸는 입소문을 타면서 강아지 전용 ‘강아지 발씻자’ 등으로 영역을 뻗어나갔다.
◇화장품이 마법을 부리진 못해요
핀셋 화장품은 기초·색조 화장품 시장을 꽉 잡고 있는 대기업보단 중소 업체들이 주로 만든다. 신체의 작은 부위를 표적으로 하는 만큼 고객층이 두껍진 않기 때문에 일종의 ‘니치 마켓(틈새 시장)’. 화장품 연구·개발·생산(ODM) 기업 코스맥스 측은 “국소 부위용 화장품은 중소·중견 브랜드와 제조사들이 주로 만든다”고 설명했고, 화장품 편집 플랫폼 올리브영 측은 “특이한 핀셋 화장품으로 브랜드 이름을 알리면 일반 화장품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는 전략”이라고 했다.
그러나 화장품은 의약품이 아니다. 화장품을 바른다고 피부나 체형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받은 ‘화장품 분야의 허위·과대 광고 행정처분 현황’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부당한 표시·광고 행위 금지 위반으로 1222건이 행정처분을 받았다. 의약품으로 잘못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나 광고를 한 사례가 가장 많았다. 지갑을 열었다가 실망하는 건 과장 광고 탓인가, 잘못된 기대 탓인가. 꽉 찬 화장대 앞에서 차가운 머리로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