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해외 출장을 자주 가는 직장에 다녔다. 출장은 늘 다양한 사람과 동행했는데 일행 중엔 해외에서도 한식을 고집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었다. 당시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낯선 도시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는 익숙한 음식만 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조금 더 긴 여행을 시작했다. 지난 6월에 충남 보령에 집을 구하고 7월에 보령으로 이사했다. 긴 여행의 목적지로 보령을 택했다. 서울과 보령을 오가며 ‘3도 4촌’(일주일에 3일은 도시에서 4일은 촌에서)을 실천 중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난생처음 살아보는 도시 보령과 친해지는 중이다.

낯선 지역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서둘러 갖춰야 할 몇 가지가 있다. 그중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일은 가깝게 지내며 편하게 만나서 이야기하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실 수 있는 동네 친구 사귀기다. 친구를 빨리 사귈 수 없다면 단골로 드나들며 동네 분위기를 살필 수 있는 음식점과 술집 리스트를 채워야 한다. 이것은 낯선 나라에서 몸과 마음의 안정을 위해 한식 음식점을 찾는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음식점과 술집 사장님들은 대체로 동네 소식통일 확률이 높다. 사이가 가까워지면 좋은 병원이나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상점 등 생활에 필요한 소소한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다.

박대구이 한 가지만 주문했을 뿐인데 상이 가득 찬 보령의 ‘누나네’ 술상. /윤혜자 작가 제공

보령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우리가 이 고장에서 살아도 좋겠다고 결정한 이유 중 하나가 ‘음식점에서 내놓는 김치’였다. 한 달 살기 숙소 옆 작은 분식점에서 김밥을 주문했는데 맛있게 담근 김치가 반찬으로 나왔다. 7000원짜리 백반 집에서도 정성 들여 담근 김치가 올라오다니. 김치로 음식점의 기준을 삼는 나에겐 감동 그 자체였다. 서울에서 기차로 닿는 교통 조건인 데다 심지어 동네 분식점에서도 담근 김치를 내놓는다. 맛도 인심도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살아볼 만한 도시인 것이다.

우리 부부는 고기를 먹고 안 먹는 데서 식성이 갈리지만 좋아하는 음식은 비슷하다. 달라도 별수 없는 것이 같이 먹는 모든 음식 선택에서는 내게 우선권이 있다. 게다가 남편은 읽고 쓰는 일 외엔 도대체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니 음식은 내가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내가 선택하고 남편도 좋아하는, 보령에서 우리 부부가 완전히 반한 술집과 밥집을 자랑하고 싶다.

우린 저녁엔 밥 대신 술을 더 선호한다. 그래서 안주 맛이 좋은 단골 술집은 매우 중요하다. 보령의 번화가 동대동에 있는 ‘누나네’는 우리 부부가 뽑은 최고의 가정식 안주 맛집이다. 심야에도 영업을 해서 잠 못 드는 밤에 가는 집이기도 하다. 음식을 주문하면 일곱 가지 반찬이 먼저 테이블을 채운다. 이 반찬만으로도 소주 각 1병을 가뿐히 비울 수 있다.

정갈한 반찬은 물론 생 아욱을 한솥 내어주는 밥집 ‘그리고’. /윤혜자 작가 제공

나는 주량이 소주 한 병이라 반찬 나올 때 특히 조심해야 한다. 빈속에 벌컥벌컥 술을 마시다 본격적인 음식이 나오기 전에 취해 버릴 수도 있다. 손맛이 좋은 사장님이 구워주시는 박대는 최고의 안주다. 박대는 다른 생선에 비해 냄새도 적고 담백해서 소주 안주로 그만이다. 기름을 넉넉히 둘러 튀기듯 구운 박대를 한번 맛보면 반드시 다시 찾게 된다.

밤에 ‘누나네’를 찾는다면 낮엔 ‘그리고’가 최고다. 이 집의 아욱국은 테이블에서 직접 끓여 먹는다. 큰 솥에 넉넉하게 넣어준 아욱을 건져 먹는 것만으로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여기에 맛도 좋고 정갈한 반찬으로 아무리 자주 가도 질리지 않는다. 아욱국과 함께 멸치로 진하게 국물을 낸 메밀국수도 여름 메뉴로 인기가 높다. 곧 제철을 맞는 세모국도 맛볼 예정이다.

두 집 모두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사심이 있거나 이득 때문에 상호를 소개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이다. 모두 ‘내돈내산’이다. 문제는 이 음식점들 모두 주인 혼자 음식을 하며 서빙도 한다. 그래서 자랑을 하면서도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내 자리가 없어질까 두렵다. 정보는 지도 찾기 서비스를 제안한다. 그곳에 달린 리뷰와 사진을 보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도 재미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