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가 내년 4월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장에 세울 전시관 ‘블루오션돔’의 조감도. 종이와 대나무로 만든다. /반 시게루

이 건축가는 사람들이 생태계와 환경 문제를 걱정하기 훨씬 전부터 딱딱한 종이를 재료로 사용했다. 반 시게루(坂茂·67). “제 디자인의 목표는 건물이 완성됐을 때가 아니라 건물이 철거될 때”라고 말하는 그는 재활용하기 쉬운 건물을 꾸준히 지어 왔다. 10년 전엔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프랑스 메츠의 퐁피두 센터, 일본 후지산 세계유산센터, 스위스 스와치 본사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반 시게루는 ‘종이 건축가’ ‘목조 건축의 대가’로 불린다. 건물을 지을 때 종이와 나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2011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종이를 여러 겹 말아 강도를 높인 종이관(紙管)으로 임시 대성당도 세웠다. ‘종이 대성당’은 지금까지도 행사장이나 콘서트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반 시게루는 1994년 르완다부터 최근 우크라이나까지 세계의 재난 현장에서 임시 대피소를 짓는 일도 30년 동안 해 왔다.

그에게 이상 기후 시대에 화두로 떠오른 ‘지속 가능한(sustainable) 건축’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는 화상으로 진행했다. “요즘 ‘지속 가능한 건축’ ‘친환경 건축’이란 단어를 너무 유행처럼 쓰고 있어요. 진짜 의미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상업적인 키워드로, 보여주기식으로 사용하는 것 같아요.”(이 질문을 하자마자 그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럼 진짜 지속 가능한 건축이란 무엇인가요?

“낭비하지 않는 건축입니다. 제가 종이나 나무를 많이 쓰는 까닭은 그 재료가 친환경적이라서가 아니에요. 쉽게 구할 수 있고 재활용하기 쉬워서예요. 친환경 재료라는 나무로 목조 건물을 지어도 금방 해체하고 버려야 한다면 그건 친환경 건축이 아닙니다. 저는 부수는 행위 자체도 낭비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플라스틱도 그 자체는 나쁜 재료가 아닙니다. 어떻게 쓰느냐, 방법이 중요하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주신다면.

“내년 4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 전시관 중 하나를 설계하고 있어요. 이름은 블루오션돔(Blue Ocean Dome). 이걸 지속 가능한 콘셉트로 지으려고 합니다. 엑스포 전시관은 6개월만 쓰고 허물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종이, 대나무, 탄소섬유 등 가벼운 재료로 벽과 지붕을 만들 겁니다. 이른바 ‘가벼운 건축’이죠. 엑스포가 끝나면 그대로 뜯어 몰디브의 리조트 시설에서 재활용할 예정이에요. 설계할 때부터 해체와 재활용까지 고려한 겁니다. 이런 게 지속 가능한 건축이라고 생각해요.”

-특별한 박람회가 아닌 일상에서도 가능할까요.

“상가부터 가설(假設) 건물로 지어보는 건 어떨까요. 상가는 대부분 30년 정도 쓴 뒤 새로 짓습니다. 유행을 타기 때문에 잠깐 쓰고 철거하는 경우도 많죠. 그 과정에서 산업 쓰레기가 많이 나와요. 탄소 배출량도 많고요.”

그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지속 불가능한 건축’ 사례로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의 랜드마크인 ‘그랜드 링’을 지목했다. 일본은 엑스포장에 높이 20m, 지름 675m의 거대한 링 모양 목조 건물을 짓고 있다. “재료 자체는 친환경적이지만 엑스포가 끝난 뒤 어떻게 활용할지 아무런 계획이 없어요.”

일본의 건축가 반 시게루. 도쿄에 있는 자신의 건축사 사무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반 시게루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일본은 9명이나 된다. 반면에 한국은 0명이다. 2014년 수상자인 그에게 물었다.

-한국에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없는 이유는 뭘까요?

“축적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일본은 건축의 흐름이 세대를 거쳐 이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김중업, 김수근, 이타미 준(유동룡) 이후 흐름이 끊긴 것 같아요. 셋 다 아까운 건축가인데 너무 일찍 별세했죠.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이 앞으로 새 흐름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한국 현대 미술을 보세요. 젊은 작가들 실력이 놀랍습니다. 건축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지금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한국 건축가는 없어요. 해외 공모전에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합니다. 시선을 해외로 돌릴 때예요. 제 작품인 프랑스 메츠의 퐁피두 센터도 국제 공모전 당선작이에요. 당시에 그런 건물을 지어본 적은 없었지만 저는 과감하게 지원했고 당선됐어요. 프랑스는 과거 실적은 상관하지 않고 제안한 작품만 딱 보더라고요. 세계적으로 그렇게 열려 있는 공모전이 많습니다.”

-프리츠커상을 꿈꾸는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작은 주택부터 직접 지어보세요.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은 대부분 건축회사에 들어가 큰 건물, 큰 사무실을 설계하는 프로젝트를 해요. 그런 식으로는 절대 좋은 건축가가 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작은 주택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완성하는 경험을 쌓아야 해요. 저를 포함해 일본 건축가들은 다 그렇게 훈련합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스위스)나 미스 반 데어 로에(독일), 알바 알토(핀란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미국)도 그랬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훈련 과정을 생략하더라고요. 작은 주택을 제대로 짓는 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가 2011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세운 종이 대성당. 종이관을 붙여 지붕을 만들었다. /반 시게루

그는 한국을 잘 아는 일본 건축가다. 재일 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과 호형호제한 사이다. 경기 여주 해슬리나인브릿지CC 클럽하우스가 반 시게루의 작품이다.

-한국에 자주 오나요?

“1년에 2~3번은 가는 것 같습니다. 기회를 만들어 자주 가려고 해요.”

-한국 건축에 대한 인상은?

“해외 건축가가 설계한 작품이 너무 많아요. 개인적으로 잘 아는 건축가들이라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일본보다도 더 많은 것 같아요. 한국의 디벨로퍼(시행사)들이 해외 건축가들의 이름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이겠죠. 일본도 1980~1990년대 버블(거품) 경제 시절에는 해외 건축가들이 건물을 많이 지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한국 건축가들에게 더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서울에도 해외 건축가 작품이 많다.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아모레퍼시픽 사옥, 도미니크 페로의 이화여대 캠퍼스....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나 고급 빌라에도 해외 건축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은 무엇입니까.

“경주 불국사요. 나무와 돌의 조화가 너무 아름다워요. 일본은 돌을 건축물의 기초로만 쓰는데 한국은 오래전부터 나무와 돌을 잘 섞어 쓰는 친환경 건축의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죠. 현대 건축물 중에는 김수근의 건축설계사무소 ‘공간’ 사옥(서울 종로구)을 좋아합니다. 김수근이 빨간 벽돌을 쓰는 방식이 너무 좋아요.”

지난 4월 도쿄에서 그를 만나 한국에서 목조 건축을 활성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은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한국에서 콘크리트 건물의 역사는 100년도 안 됩니다. 하지만 목조 건축의 역사는 아주 오래됐어요. 멋진 한옥과 사찰이 정말 많잖아요. 그런 토대가 있기 때문에 시작만 하면 금방 활성화할 수 있을 겁니다.”

마침 지난 5월 서울 종로구가 5층 목조 복지센터를 짓기로 했고 정부는 지난달 목조 건축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목조 건축과 관련한 규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일본 도쿄에 있는 ‘투명 화장실’. 들어가 문을 잠그면 불투명하게 바뀐다. /반 시게루

반 시게루는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안도 다다오, 이토 도요, 마키 후미히코 등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본 건축가들과 도쿄의 공중 화장실을 바꾸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국내에 개봉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도 나왔다. 그가 디자인한 화장실은 유리로 된 ‘투명 화장실’. 밖에서 화장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런데 들어가 문을 잠그면 투명한 화장실이 불투명하게 바뀐다. 강화유리 사이에 점액 상태의 특수 필름을 넣어 만든 ‘순간 조광 유리’를 썼다. 이 필름은 전기를 흘려보내면 투명해진다.

이런 기발한 디자인 덕분에 화장실이 인기 관광 코스가 됐다. 하루노가와 커뮤니티 파크와 요요기 후카마치 소공원에 있다.

-어떻게 그런 화장실을 만들 생각을 했나요.

“건축은 데커레이션(장식)이 아니에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죠. 제가 디자인한 투명한 도쿄 화장실도 공중 화장실의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고민에서 시작했습니다. 공중 화장실은 보통 청결하지 않아요. 안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어 불안하기도 하죠. 그래서 화장실을 투명하게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내부가 깨끗한지, 누가 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건축가에게는 그런 문제 의식이 필요해요. 순간 조광 유리는 흔히 쓰는 재료입니다.”

국내에 개봉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한 장면.

-건축이 또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일본은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합니다. 그래서 건축이 발전할 수 있었어요. 건축가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죠. 한국은 자연재해는 덜하지만 집값 상승, 반지하 침수 같은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한국 건축가들이 각각의 해법을 고민하면 좋겠어요.”

-힌트를 주신다면.

“저라면 어떻게 하면 싼 가격에 좋은 주택을 공급할 수 있을지 연구할 것 같아요.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가설 주택이나 모듈러 주택처럼 혁신이 필요합니다.”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오른쪽)가 지진 피해를 입은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 종이와 목재 등으로 지은 임시 대피소. 지난 1월 노토반토에 진도 7.6의 강진이 발생해 300여명이 사망했다. 반 시게루는 세계 재난 현장을 다니며 종이와 목재 등으로 임시 대피소를 짓고 있다. /반 시게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