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의 건강과 안전한 러닝을 기원합니다. 사단법인 카본화 단속협회에서 주·야간 2교대로 전국 트랙 및 천변 카본화 상시 단속을 시작하고자 하오니 협조 바랍니다.” 최근 의문의 전단 한 장이 러닝족(族)을 들끓게 했다. ‘카본화 상시 단속 안내문’이었다. 잠시 설명이 필요한데, 카본화는 신발 중창에 ‘카본 플레이트(Carbon Plate·탄소섬유판)’가 삽입된 특수 러닝화를 일컫는다. 발바닥에 용수철 달린 듯 반발력을 극대화한 신발. 단속 대상은 초보 러너다. “러닝 입문 6개월 미만, 마라톤 풀코스 기록 3시간 이상, 최대 심박수 215 이상….”
한마디로 초보가 카본화를 신고 뛰다 걸리면 그 자리에서 신발을 압수하겠다는 것이다. 단속 취지는 “‘러린이(러닝 어린이)들의 무분별한 카본화 착용으로 인한 부상 방지”라고 한다. 좋게 말해 ‘부상 방지 위원회’ 정도로 순화할 수 있겠다. 한강 공원 어딘가에 부착된 듯한 해당 전단 사진이 소셜미디어상에서 큰 화제를 모았지만 실재하는 건 아니다. 한 러닝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유저가 재미 삼아 만든 가상의 이미지. 다만 마냥 웃고 지나갈 수 없는 이유, 카본화는 현재 러닝 업계의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이다.
카본화는 ‘수퍼 슈즈’로 불린다. 철보다 10배 단단하고, 7배 유연하고, 무게는 4분의 1 수준인 탄소 섬유가 훨씬 빠른 달리기를 돕는다. 마라톤 수퍼스타 엘리우드 킵초게(40·케냐)가 2019년 인류 최초로 2시간대 기록의 벽을 허문 것도 이 덕분이었다. 레전드 마라토너 이봉주(54) 역시 최근 한 방송에서 “전성기 시절 카본화를 신고 뛰었다면 2시간 5분대까지는 나오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이봉주의 최고 기록은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빠른 2시간 7분 20초. “엉덩이에 부스터를 단 것 같다”는 착용 후기가 이어지면서 카본화의 인기는 치솟았다. 너도나도 카본화. 국내 러닝화 시장 1조원 시대, 켤레당 20만원을 훌쩍 넘는 카본화의 인기가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손쉬운 발놀림에 대한 열망, 경고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가급적이면 신지 마라.” 최근 유튜브 활동을 시작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마라토너 황영조(54)의 일갈이다. “카본화가 뭡니까, 우리가 착지하고 킥을 할 때 탄성으로 내 몸을 튕겨주는 거예요. 튕기는 거예요. 그래서 부상이 많다는 얘기예요. 이건 (일반인이 아닌) 킵초게 같은 톱클래스 선수들 기록을 위해 만든 신발이에요.” 특유의 고탄성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을 정도의 몸 상태가 아니라면 고성능 신발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 “초보 운전자한테 배기량 6000㏄ 스포츠카 몰게 하면 사고 나요, 안 나요?”
환자가 늘고 있다. 신발 수집에도 일가견이 있는 족부 전문의 박은수 윈윈정형외과 원장은 “반발력이 좋은 대신 몸에 과부하가 걸리기 쉬운 제품이다 보니 발목 힘줄염이나 아킬레스건염·중족골통 등을 호소하는 분이 많아졌다”며 “프로 선수가 아니라면 카본화는 머리에서 지우라”고 말했다. “요새 너무 핫하다보니 무턱대고 따라 신는 경우가 많죠. 유행에 휩쓸리지 말고 먼저 근력을 키우세요. 일반 러닝화로도 충분합니다. 신발은 주법과 심폐 기능이 어느 정도 완성된 뒤에 고민해도 늦지 않습니다.”
기존 단점을 보완한 신제품이 계속 출시되고 있으며, 내가 신고 싶어 신는데 뭐가 문제냐는 반론도 여전하지만 ‘카본화 단속반’은 이 같은 설왕설래 속에서 점차 ‘밈’이 돼가고 있다. 수년 전 헬스 열풍 당시에는 ‘언더아머 단속반’이 뜬 적이 있다. 이른바 3대 운동(스쾃·벤치프레스·데드리프트) 중량이 도합 500㎏ 미만이라면, 몸매가 부각되는 고수의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 옷차림을 감히 꿈꾸지 말라는 경고. 이 역시 장난과 과장이 섞여 있지만, 겉멋 욕심 내지 말고 운동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안 그러면 다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