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휴학을 한 적이 있다. 외무고시를 준비 중이었는데 시험에 전념하고 싶었다. 막상 휴학하자니 자못 긴장됐다. 누가 혹시 뭐라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어럽쇼, 학교 행정실에 가 보니 휴학이 너무 쉬웠다. 무슨 증빙 서류도 필요 없고, 면담 한번 없었다. 종이 한 장 내니 끝. 우리나라 대학의 휴학이라는 것이 이랬다.
그런데 지난 10월 6일 이주호 교육부총리의 발표를 보니 휴학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휴학이 정말 개인적 사유인지, 언제 복귀할지, 모두 학생이 증명하고 약속해야 한다. 면담도 해야 하고, 휴학 사유를 증명하는 서류도 내야 한다. 게다가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휴학은 금지란다.
다른 나라도 이렇게 휴학이 어려운가? 내가 박사 공부를 한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의 규정을 찾아봤다. 질병 치료, 병역, 인턴, 경제 사정 등 광범위하게 휴학 사유가 인정된다. 심지어 정치 활동에 참가하기 위한 휴학도 인정된다. 포닥(박사 후 과정)을 한 스탠퍼드는 아예 휴학 가능 사유에 대한 아무 언급이 없다. 그저 휴학 가능 기간과 휴학 중 학위 취득 과정이 중지된다는 언급만 있다. 다른 10여 미국 대학 홈페이지를 뒤져봐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대학도 ‘집단적’ 휴학을 불허하거나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휴학을 금지하는 학교가 없다.
일본은 어떨까? 1960년대 말 일본은 전국 대학이 대규모 집단 수업 거부로 몸살을 앓았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수십 대학이 대학생의 지위와 권리에 대한 학내 규정 재정비에 나섰다. 이러한 새 규정에 대한 평가에 기초하여 행정법의 권위자였던, 당시 오사카대학 법학부 다카다 빈(高田敏) 교수는 1970년 ‘학생의 권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다카다 교수에 따르면 대학생 역시 일본 국민이므로 일반 시민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의사 표명의 자유가 있다. 즉 대학생 역시 일반 시민과 마찬가지로 집회와 시위에 참여할 수 있으며, 정치적 의사 표명 수단으로서 수업에 불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학생은 학생으로서 교육받을 권리를 향유하며, 이 교육받을 권리란 단지 수업에 참가할 권리만이 아니라 ‘양질’ 교육을 받을 권리를 의미한다. 이 권리를 보호하고자 대학생은 학교에 교육의 질 향상을 요구하거나, 학교 측이 응하지 않을 경우 마치 임금 협상에 나선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의 단체행동은 바로 집단적 수업 거부를 의미한다.
물론 수업 거부에는 대가가 따른다. 학점을 받지 못하며, 미이수학점 누적은 유급을, 거듭된 유급은 제적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카다 교수는 이러한 불이익을 알면서도 대학생이 자신의 시민적 권리와 교육받을 권리 행사를 위해 수업 거부에 나설 경우, 교육 기회 상실 이외에 징계나 형사 처벌을 부과할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권리 행사 그 자체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카다 교수의 이론을 작금의 한국 의대생 휴학 사태에 적용해 본다면 결론은 명확하다. 정부의 갑작스러운 대규모 증원 조치로 교육의 질 저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의대생들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교육의 질 제고를 요구하는 의사 표명을 위해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다. 그것이 개인적 휴학인지, 동맹휴학인지, 집단 수업 거부인지는 부차적 문제다. 학생들은 이미 받을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그 때문에 졸업 시점이 늦춰짐으로써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 이상의 제재는 불가하다는 것이다.
물론 교육부에도 전가의 보도가 있다. 우리 고등교육법 5조에는 대학교에 대한 교육부의 지도 감독권이 규정되어 있다. ‘지도 감독’이라는 미명 하에 교육부는 각 대학에 개별 학생의 휴학을 승인하라 말라까지 간섭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잘못 휘두른 전가의 보도는 자칫하면 제 몸을 베는 칼이 될 수 있다. 전례가 있다.
2011년 캐나다 퀘벡주 정부는 대규모 대학 등록금 인상안을 발표했다. 이미 수십 년 동안 다른 주 대학들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에서 등록금이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더 이상 감당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당시 퀘벡주 정부 장 샤레(Jean Charet) 총리의 설명이었다. 퀘벡주 대학생들은 격렬한 시위로 응수했다. 급기야 이듬해에는 캐나다 역사상 최장기 집단 수업 거부 사태가 벌어졌다. 2012년 2월부터 9월까지 무려 7개월간 퀘벡주 대학 대부분이 사실상 문을 닫다시피 했다.
분노한 샤레 총리는 학생들의 수업 거부를 금지하고 수업 불참 학생에게 고액 벌금을 부과하는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법에 대해 야당이 위헌이라며 반발하고, 급기야 유엔까지 인권침해를 지적하며 비판에 가세했다. 샤레 총리는 결국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했다. 샤레는 승리를 장담했지만, 선거 결과 정권은 교체됐다. 집권한 야당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수업 참가를 강제한 특별법을 폐지하는 것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입만 열면 ‘자유의 확장’을 외쳐 왔다. 그런데 그의 정부는 대학의 자율성과 대학생들의 권리를 짓밟고 있다. 그의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고 있는 것은 우리 국민이 그의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감지했기 때문 아닐까? 윤 대통령이 제2의 장 샤레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그와 그의 정부, 그가 속한 정당은 장 샤레의 전철을 밟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