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 '남산와이너리'의 버섯리조토. 포르치니 버섯을 기본으로 육수를 뽑고 황금팽이버섯, 양송이버섯 등을 넣었다. 리조토는 증기로 익혀 부드러운 맛으로 먹는 밥과 다르다. 애초에 쌀을 씻지도 않는다. 쌀에 묻은 전분이 나중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이태원에서 빠져나와 녹사평대로에 들어서면 곧 삼거리가 나타난다. 하나는 해방촌으로 향하는 높고 좁은 길이고 다른 하나는 경리단길로 향하는 비탈길이다. 두 길은 서울에서 가장 이국적인 동네로 향한다는 면에서 비슷하지만 해방촌 쪽이 그 경사만큼이나 좀 더 후미지고 은밀하다면 경리단길은 그 너비만큼 더 밝고 경쾌한 느낌이다.

인터넷 지도에는 공터로 표시되는 널찍한 경리단 앞에는 어린 병사가 각 잡힌 모습으로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 더 걸어 올라갔다. 도로는 급하게 좁아졌고 그만큼 다닥다닥 붙은 가게와 포도나무 덩굴처럼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골목길은 동네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 길 한편에 3층짜리 벽돌 양옥 건물이 보였다. 그 건물 난간에는 영어로 ‘남산 와이너리’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이태원 경리단길 오르막에 있는 남산와이너리 /영상미디어 임화승기자

‘남산 와이너리’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주인장이 와인 수입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포르투갈 와인을 전문으로 수입하는데 겸사겸사 포르투갈 음식을 하는 식당까지 차려버렸다고. 굳이 포르투갈인 까닭은 간단했다. 그 나라가 좋고 와인과 음식이 또 좋아서라고 했다. 이런 설명을 들으니 어쩔 수 없이 조금 걱정이 됐다. 축구선수 ‘호날두’는 알아도 포르투갈 음식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된단 말인가?

그런 걱정을 품고 널따란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렸다. 포르투갈은 대서양을 접한 나라다. 지중해라고 보긴 어렵지만 지브롤터 해협 바로 옆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해산물 요리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아랍의 영향권에 꽤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말인즉 향신료를 다양하게 쓰고 쌀 요리 또한 발달했다는 뜻이다.

먼저 부라타 치즈와 토마토 샐러드가 나왔다. 특별할 것 없는 이 음식에 마지막 붓칠을 한 것은 포르투갈산 올리브 오일이었다. 거친 해풍에 단련된 나무는 깊이 뿌리를 내린다. 동백잎을 닮은 푸릇한 빛깔의 올리브 오일은 레몬처럼 시큼한 향으로 시작해 짭조름한 뒷맛으로 끝이 났다.

남산와이너리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그다음으로는 바칼라우 크로켓이 나왔다. 이른바 ‘대항해시대’에 선원들이 주로 먹었다던 바칼라우는 쉽게 말해 염장한 대구다. 그대로는 먹을 수 없을 만큼 소금에 절이고 말린 대구를 우유에 불리고 염분을 빼낸 뒤 조리하는 게 순서다. 양파, 달걀, 감자와 함께 바칼라우를 섞고 모양을 잡아 튀긴 크로켓은 짭조름하고 밀도 높은 생선의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감자의 폭신한 단맛이 그 여백을 채워 맛의 양감이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문어 스테이크가 나왔다. 문어를 푹 삶아 야들야들하게 만든 후 센불에 익혔다. 문어는 잘 조리하지 않으면 질기거나 혹은 너무 흐물흐물할 때가 있다. 이곳의 문어는 재즈의 스윙(Swing)처럼 알싸한 마늘향이 첫맛을 살짝 잡아당기고 부드러운 문어의 속살이 다시 속도를 늦추며 슬그머니 손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나면 다시 배경처럼 깔린 올리브 오일의 상큼하고 짭짤한 맛이 천연덕스럽게 혀를 간지럽혔다.

서울 이태원 '남산와이너리'의 버섯리조토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이윽고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가듯 멈춘 것은 버섯 리조토였다. 포르치니 버섯을 기본으로 육수를 뽑고 황금팽이버섯, 양송이버섯 등을 여럿 넣었다. 리조토는 증기로 익혀 부드러운 맛으로 먹는 밥과 다르다. 애초에 쌀을 씻지도 않는다. 쌀에 묻은 전분이 나중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름에 볶고 와인과 육수를 넣어 심이 살짝 씹히는 정도, 즉 알덴테(Al dente)로 익히는데 이게 한국 사람에게는 좀 어렵다. 더불어 접시에서 천천히 흘러내릴 정도의 농도를 지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쌀이 가진 전분을 쌀알이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최대한 뽑아내야 한다. 이 또한 쉽지 않은 설명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리조토 만드는 법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듯 쌀을 계속 저어주라’고.

쌀알 스스로의 무게로 천천히 흘러내리는 리조토를 한 숟가락 퍼서 입안에 넣었다. 혀 위로 포옹처럼 다정한 무게감이 내려앉았다. 그 쌀알의 무게에는 커다란 솥에서 오래 우려낸 육수와 팬을 흔드는 사내의 땀이 함께 녹아 있어 혀가 아니라 몸으로 어떤 체온 혹은 감촉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밖으로는 어둑한 비탈을 올라가는 사람들의 웃음과,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아늑한 침묵이 우리를 포위하듯 감쌌다.

#남산와이너리: 바칼라우 크로켓 1만2000원, 문어 스테이크 3만8000원, 버섯리조토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