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도시 해녀‘ 조유미 기자가 귀덕 2리 어촌계 앞바다에서 해녀복을 입고 ‘물건’을 탐색하고 있다. 이날 약 2시간 물질 끝에 뿔소라 30여 마리를 잡았다. 한몫 잡았구나 했는데, 5500원어치란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바보~. 주변을 맴도는 복어가 날 비웃는 것 같았다. 뿔소라가 보이는데 왜 잡지를 못하니. 다시 힘차게 잠수 시도. “퍼덕, 퍼덕.” 횟집 수조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광어(?)의 몸짓. 몸이 바닥에 닿기 전 둥실 떠오른다. 세 번째 실패다. 광어는 가라앉기라도 하는데…. 움찔거리며 내 손을 피하던 뿔소라는 곧 ‘위협이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도망갈 생각도 없어 보였다.

“엉덩이 뺑 ‘ㄱ’ 자로 몸 굽혀 내려가라, 오리추룩!” ‘해녀 선생님’이 말했다. 오리처럼 엉덩이 빼고 내려가라는 소리. 태어나서 한순간도 오리로 살아본 적이 없었기에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27.4도. 지난달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평균 해수면 온도다. 최근 10년 새 최고치. 바다가 따뜻해지면, 해녀들 걱정은 늘어간다. 톳도, 우뭇가사리도 녹아 자취를 감추기 때문이다. 이들의 고충을 듣기 위해 제주도로 해녀 체험을 다녀왔다. ‘아기 해녀’의 첫 물질.

[아무튼 주말] 조유미 기자 제주도 해녀체험_영상미디어 김용재 (아무튼 주말 개제 전 사용금지)
지난 12일 오전 귀덕 2리에서 만난 제주 토박이 해녀 현안열(56)씨가 막 뜯은 쑥을 수경에 문지르고 있다. 쑥즙이 콧김으로 인한 김 서림을 방지해 준다고.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아기 해녀'로 첫 발을 딛기 위해 준비 중인 모습.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혼자옵서예, 똥군 해녀

지난 12일 오전 9시, 귀덕 2리에서 제주 토박이 해녀 현안열(56)씨를 만났다. 일일 선생님. 연습한 제주 사투리로 또박또박 “안녕허우꽈? 날씨 산도록하난 잘도 좋다게(선선하니 좋다)”라고 인사를 했다. 선생님은 “네, 일단 옷 입으세요”라고 서울말로 답했다. “알았주게” 같은 말도 준비했지만 그냥 체념하고 “예” 했다.

그는 “처음 입으면 다 찢어 먹는다. 아기 다루듯 입어야 한다”며 3mm 두께의 상·하의 ‘고무 옷’을 내밀었다. 일명 해녀복. 뻑뻑해서 입는 데만 30여 분이 걸렸다. 물질하기도 전에 땀이 쏟아졌다. 눈과 코를 모두 가리는 ‘통눈’ 수경을 쓸 땐 선생님이 “수경에 문지르라”며 막 뜯은 쑥을 건넸다. 쑥즙이 콧김으로 인한 김 서림을 방지해 준다고.

본지 조유미 기자가 작업 장소인 ‘할망 바다’로 헤엄쳐 나가고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욕심 부리지 마랑, 천천히 헤영오라.” 입수 직전 선생님이 말했다. 헛, 사투리다. “욕심 부리지 말고 천천히 작업하고 오라”는 뜻으로, ‘상군 해녀’들이 ‘아기 해녀’에게 물질 전 당부하는 말이라고. 해녀는 잠수 가능한 깊이에 따라 상군·중군·하군 등으로 나뉜다. 상군 기준 4시간 물질하면 평균 100kg, 60만원어치의 소라와 전복을 딴다고. 물질 갓 배운 아기 해녀는? ‘똥군’(!)으로 분류. 나는 똥군인 셈이다.

◇젊지만 할망 바다行

작업 장소는 ‘할망 바다’. “전 아직 30대인데 어째서”라고 말하려는데 나이가 아니라 수심 때문이란다. 해안선과 가까워 나이가 많아 은퇴를 앞뒀거나 서툰 아기 해녀가 작업하는 곳이라고. 수심 2~3m 정도다. 테왁(물에 뜨는 공 모양 기구)에 의지해 헤엄쳐 나왔다. 애써 숨을 참으며 바닷속을 들여다보지만, 황~량.

“엉덩이 뺑 ‘ㄱ’자로 몸 굽혀 내려가라, 오리추룩!” ‘해녀 선생님’이 말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호맹이’(갈고리)로 바위 틈을 찍고 몸이 뜨지 않도록 버티니 좀 나았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뿔소라의 ‘뿔’자도 보이지 않는다. 복어 한 마리만 내 주변을 맴돌 뿐. 돌을 치우거나 이동하는 과정에서 부서진 성게 등을 먹기 위해 알짱대는 거라고. 녀석, 성게 맛있는 건 알아가지고.

난 실망해서 “물때가 안 맞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선생님은 “딱 썰물 때인데 무슨 소리냐”며 “혹시 시력이 많이 안 좋으냐” 했다. 뿔소라는 없지 않았다. 내 눈에 띄지 않을 뿐. 보다 못한 선생님이 “여기 있으니 잡아 보라”며 지점을 특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돌만 보였다. “어디요?” 묻기 창피해서 일단 보이는 척 잠수. ‘호맹이’(갈고리)로 바위 틈을 찍고 몸이 뜨지 않도록 버티니 좀 나았다.

◇2시간 만에 승격했수다

한동안 동태처럼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있었다. “큰 돌 일르민 물건 하영 이신다.”(선생님) “네…?”(나) 청력은 멀쩡한데 무슨 말인지 몰라. 뭐지, 혼난 건가? 의미는 이렇다. ‘큰 돌을 뒤집으면 물건(채취할 것)이 많다.’

똥군 조모씨는 이 조언에 힘입어 하군으로 승격(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뿔소라는 바위 밑에 대여섯 마리씩 다닥다닥 몰려 있었다. 한번 눈에 띄기 시작하자 뿔소라가 지천이었다. 욕심이 났다. 바위 위에 딱 붙은 전복 한 마리를 발견했을 땐, 오기가 생겨 떼어질 때까지 물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뿔소라는 바위 밑에 대여섯 마리씩 다닥다닥 몰려 있었다. 한 번 눈에 띄기 시작하자 지천이 뿔소라였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약 2시간 물질 끝에 뿔소라 30여 마리를 잡았다. ‘씨알’이 작아 3kg 정도 된다고 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약 2시간 물질 끝에 뿔소라 30여 마리를 잡았다. ‘씨알’이 작아 3kg 정도 된다고. 한몫 잡았구나 기대했는데 5500원어치란다. 뭍에 올라오자 선생님이 “오, 잘한다”면서도 “전복 따는 모습 봤다. 그럼 안 된다, 죽는다” 했다. 바닷속에 들어가면 욕심이 생겨 숨이 다할 때까지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매우 위험하다고. 참고로 어촌계 자산인 뿔소라·전복은 모두 방생했다. 무럭무럭 잘 커서 맛있는(?) 소라가 되렴~.

◇팔뚝만 한 문어가~

“물질 못하켜(못 한다).” 13일 오전, 귀덕1리 어촌계 부회장 장영미(69)씨가 말했다. 이날은 뿔소라 금어기(6~8월)가 끝나고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가기로 한 첫날. 나도 같이 가기로 했었다. 제주 어촌계 중 귀덕1리가 가장 이르게 입수를 결정했는데, 수온이 높아 한 달 미뤄진 작업을 또다시 미뤄야 한다는 것이다.

장씨는 “소라는 팔기 전까지 어망에 담아 바닷물에 보관한다”며 “소라가 찬물을 찾아 이동을 못하기 때문에 바다가 따뜻하면 그 상태로 다 죽는다”고 했다. 작년 역시 수온이 높아 수출한 소라가 죽은 상태로 도착하자 값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까지 일어났다. 죽어가던 소라를 바닷물 채운 수조에 운반하다 생긴 일.

참고로 어촌계 자산인 뿔소라·전복은 모두 방생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뭍에 올라오자 선생님이 “오, 잘 한다”고 칭찬해줬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무럭무럭 잘 커서 맛있는(?) 소라가 되렴~.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쳐라, 쳐라! 쿵쿵 저어라~.”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같은 날 오후, 귀덕2리 해녀 10명이 ‘소중이 물 옷’(조선시대 해녀가 입었던 옷) 등을 입고 외국인 관광객 50여 명 앞에서 공연하고 있었다. 현직 해녀들로 이뤄진 한수풀해녀노래보존회다. 나의 해녀 선생님이었던 현씨도 소속돼 있다. 크루즈 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해녀노래’ 등을 선보이고 있지만, 공연장이 없어 장소를 찾아 헤매는 처지라고. 현씨는 “공연 도구 등을 둘 곳도 마땅찮다는 게 문제”라며 “바람이 강한 날은 길에서 떨며 기다려야 하지만 해녀 문화를 알린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그중 5명이 물질 시범을 보이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해녀 이운숙(65)씨가 “모두 경력 40년 이상 된 상군이니 잘 보라”고 귀띔했다. 한 해녀가 입수 3분 만에 팔뚝만 한 문어를 치켜들자, 외국인들 눈은 휘둥그레.

한수풀해녀노래보존회 소속인 귀덕2리 해녀 10명이 ‘소중이 물 옷’(조선시대 해녀가 입었던 옷) 등을 입고 외국인 관광객 50여 명 앞에서 공연하고 있다. /조유미 기자
한수풀해녀노래보존회는 크루즈 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해녀노래’ 등을 선보이고 있지만, 공연장이 없어 장소를 찾아 헤매는 처지라고. /조유미 기자

“아아~ 아아아!” 해녀들은 연신 소리를 냈다. 해녀만의 신호? 바다에서 나온 귀덕2리 해녀회장 정영애(68·본인 요구로 두 살 낮춤)씨에게 다가가 심각한 목소리로 “생사 확인 신호냐” 물었다. 그는 “그냥 힘들어서 한 건데”라고 했다. “숨비소리 (하려고) 허는디 잘 안 돼부난, 이젠. 그래서 경 해.” 숨비소리가 잘 안 나서 그냥 이렇게 소리 낸다는 의미다. 숨비소리란 해녀들이 물 밖으로 올라와 터뜨리는 숨소리. 통상 ‘휘이익, 휘이익’으로 알려졌지만, 연령대 고령화로 요즘은 “어어~” “아이고” 등 다양해지고 있단다.

◇수입 적어 ‘투잡’ 필수

“완전 백(白)바다.” 정씨가 말했다. 그는 “이맘때 톳이나 우뭇가사리 싹이 보여야 내년 봄에 따는데 아무것도 어서”라며 “경하니 소라가 이서도 어떻게 그게 클 수가 이서, 먹고 자랄 풀이 없는데”라고 했다. 물건이 없으니 수입도 적다. 지난해 제주도 전업 해녀의 연간 소득은 683만5000원에 불과하다.

본지 조유미 기자가 뭍에 나와 잡은 소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해녀가 되는 청년이 적지만 꾸준히 있다는 건, 그래도 희망적이다. 주로 제주 출신이거나 육지에서 넘어와 수년간 제주에 거주한 이들이다. 해녀 교육 기관인 제주 한수풀해녀학교 입학생은 전국 각지에서 오지만, 어촌계마다 ‘제주 거주 년 이상’ 등의 조건이 있어 해녀가 되는 건 쉽지 않단다.

구엄어촌계 소속 김연진(39)씨는 서른여섯 나이에 해녀가 됐다. 2018년 서울에서 넘어와 ‘보드 선생님’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오며 가며 인사하던 ‘해녀 삼춘’이 멋있어 물질을 배웠다. 김씨는 “바다에 들어가면 마음이 뻥 뚫린다”고 했다. 올해 한수풀해녀학교에 입학한 28명 중 유일하게 고산어촌계에서 ‘인턴 해녀’로 활동하는 송주영(42)씨는 “식당을 운영하는데 직접 잡은 해물로 요리도 하고 마을에 스며들고 싶어 해녀가 됐다”고 했다. 수입이 적은 만큼 ‘투잡’이 필수. 어촌계 해녀(평균 나이 77세) 중 막내라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언젠가 해녀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바다가 건강하길 바랄 뿐. 횟집 수조 속 광어를 볼 때마다, 이날의 물질이 떠오를 것 같다. “퍼덕, 퍼덕.”

본지 조유미 기자가 바다에서 나와 수경을 벗은 뒤 오른쪽 콧구멍에서 콧물을 흘리고 있다. 수경은 콧물 범벅.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