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의 세계에서 사이즈는 중요한 문제다. 매력의 강도를 좌우한다.

“크고 아름다운 ‘뽕’으로 볼륨업 하세요.” 여성용 브래지어 광고 문구가 아니다. 물론 재질은 같다. 스펀지니까. 다만 착용 부위가 다르다. 팬티 앞쪽, 그러니까 남자의 중심을 강조하는 기능성 패드(pad)이기 때문. 민망하기에 대개 ‘앞뽕’으로 통칭한다. 해변이나 수영장, 또는 일상(?)에서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려는 이들에게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일체형 속옷도 여럿 출시됐고, 중고 거래도 이뤄진다. 인상적인 후기 몇 개. “얇은 바지를 입으면 너무 튀어나와 좀 부담스럽긴 해도 남성미 뽐내기에는 좋아요.” “시착만 해봤는데도 볼륨이 느껴지는군요.” “자신감도 두툼해지네요.”

◇점점 아래로… ‘생식기 뽕’까지

밋밋한 평면을 봉긋 세워주는 뽕, 남자에게 좋다는 꾸지뽕보다 효과 확실한 뽕. 2030세대에게 ‘앞뽕’은 이미 보디 프로필 촬영의 필수품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화려한 몸 상태를 기록하기 위해 약간의 눈속임을 가하는 것이다. 윤곽(?)을 돌출한 제품도 있다. 최대한 ‘진짜’처럼 보이려는 연출이다. 조금이라도 커 보이려는 욕망. 굳이 진화생물학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아도,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중심부만 나 홀로 앙증맞으면 조금 겸연쩍을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근육질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9)도 마찬가지였던 모양. 그와 염문설을 뿌렸던 한 이탈리아 모델은 2017년 TV 쇼에서 “호날두는 화보 촬영장에서 속옷에 충전재를 넣는다”고 폭로했다.

‘허벅지 뽕’도 나왔다. 힘과 건강미의 척도로 간주되면서도, 탄탄하게 유지하기 가장 어려운 부위. “운동 아무리 해도 근육 안 생기는 분, 야식 아무리 먹어도 깡마르신 분, 수술 후 허벅지나 엉덩이에 살이 없어 아프신 분들! 남자 혁명 아이템이 도움 드립니다.” 남심(男心)의 비밀 엄수를 위해 택배 발송 시 상품명이 노출되지 않도록 가려주는 업체도 있다. 그러나 온라인 구매 후기를 읽어보면 주요 고객이 중장년층임을 눈치챌 수 있다. “남편이 살이 다 빠져서 고민하던 중에 ‘허벅지·엉덩이 뽕’ 보정 속옷 구입해주니 너무 마음에 들어 해서 추가 주문합니다.” 남자의 ‘뽕’은 전 세대에 걸쳐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약해진 남성성, 속옷으로 보정?

아이언맨 수트처럼 '뽕' 착용? /일러스트=김영석

오랫동안 ‘어깨 뽕’에 머물렀다. 그러다 ‘가슴 뽕’ ‘삼두근(팔) 뽕’이 나왔다. 이젠 아랫도리로 내려가는 중이다. ‘아무튼, 주말’이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를 통해 성인 1006명에게 물었다. 남성용 뽕,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어깨(64%)·엉덩이(26.5%)·가슴(22.6%)·생식기(11%)·허벅지(9.7%) 순(복수응답)이었다. ‘앞뽕’의 경우 그 존재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20대 여성(18%)과 30대 남성(18.3%)에서도 비율이 20%를 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여성용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위장이 더 손쉬운 것이다. 회사원 조모(38)씨는 “어깨 뽕은 알았는데 이렇게 다양한 줄은 몰랐다”며 “먼저 고백하지 않는 이상 모를 것 같다”고 말했다.

외적인 매력을 높여주는 패션 아이템, ‘강한 남자’로 보이려는 열망의 이유를 최근 잇따른 사회적 논란에서도 일부 찾을 수 있다. 바로 ‘집게손’이다. ‘요만큼’을 나타낼 때처럼 엄지와 검지를 가까이 붙인 동작, 한국 남자의 성기가 작다는 뜻으로 극성 페미니즘 진영에서 사용하는 혐오 표현이다.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최근 현대차·르노코리아·넥슨 등 여러 유명 기업의 홍보물에 해당 이미지가 삽입되고 또 발각되는 사례가 만연해지며 남성들의 공분이 커졌다. 농담으로 치부되던 ‘사이즈’가 민감한 사안이 돼버린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신체적 자존심을 자꾸 긁는 사회 분위기 역시 과시욕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양화된 ‘뽕’… 남자가 거부감 더 커

여성용 뽕은 이미 대중화돼 있다. 브래지어는 물론이요 ‘골반 뽕 레깅스’ 같은 제품까지 불티나게 팔리는 게 현실. 그만큼 의심의 눈초리도 크다. 지난봄 배우 전종서(30)씨가 야구장 시구로 화제를 모았을 당시 즉각 제기된 것이 ‘골반 뽕’ 의혹이었다. 남성은 이 같은 부담에서 자유롭기는 하나 거부감은 적지 않았다. ‘아무튼, 주말’ 설문 결과, 남성의 뽕 착용에 대해 ‘좋게 보이지 않는다’(32.4%)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그 이유로는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같아서’(54.6%) ‘솔직하지 않은 것 같아서’(28.2%) ‘자신감이 없어 보여서’(16.6%) ‘기타’(0.6%) 순이었다. 털털함 등 ‘남자다움’에 대한 기존 관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성별로 나누면 남성(34.4%)이 여성(30.6%)보다 오히려 거부감이 컸다. 회사원 박모(38·남)씨는 “자신의 몸을 치장하는 데 관대해졌고 신체 보정도 익숙한 세상이 됐음에도 ‘투머치’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라며 “남자는 겉보다는 속이라는 오랜 선입견이 작용하는 탓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허모(37·남)씨 역시 “키높이 깔창도 지금은 거부감이 심하지 않지만 예전엔 놀림거리 아니었느냐”면서 “하나의 옵션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설문조사에는 이런 문항도 포함됐다. 뽕 착용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 것 같나요? 최다 응답은 ‘측은할 것 같다’(45.2%)였다. 이래저래 외로운 처지.

◇운동 안 하는 어른들, 근육 다 빠진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한국인을 위한 신체 활동 지침’ 개정판을 11년 만에 새로 내놨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신체 활동 연령대를 세분화하고 그간의 연구 결과를 반영한 것이다. WHO는 일주일에 150분 이상 중간 강도의 신체 활동 혹은 75분 이상 고강도 유산소 활동을 성인에게 권장한다. 근력 운동은 일주일에 2일 이상. 그러나 “일주일에 2일 이상 근력 운동 하는 한국 성인은 4명 중 1명”이라는 게 복지부 설명이다. 65세 이상은 더 심각하다. 노인 5명 중 4명은 근력 운동 지침을 준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기준 신체 활동 실천율은 72% 수준이지만, 한국은 2021년 기준 47.9%에 그쳤다. 2015년(58.3%)보다 10%포인트 넘게 떨어진 것이다. “운동은 시간 날 때 하려고 하면 안 하게 된다”며 “문 앞에 운동복이나 신발을 미리 꺼내 놓으라”는 조언. 효과는 느려도 가장 확실한 보정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