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송윤혜

‘딸’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실제 상황. “엄마, 나 핸드폰 고장 나서 PC로 (연락) 하고 있어. 부탁할 거 있으니 문자 줘~.”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수법. 답장을 하면 돈을 보내라고 하거나, 현금처럼 사용 가능한 기프트 카드를 사서 일련번호를 보내 달라고 한다. 엄마 이모(62)씨는 고민 끝에 답장했다. “응~ 지랄이다.”

이씨는 그런 뒤 진짜 ‘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딸~, 이거 보이스피싱 맞지? 알려준 덕에 안 속았네 ㅋㅋ 효녀 딸 고마워~”

실제 직장인 조모(32)씨의 엄마 이씨가 겪은 일을 재구성한 것이다. 조씨는 “범죄 피해라도 당하면 당신 잘못이 아닌데도 ‘내 탓이다’ 자책할 것 아니냐”며 “마음이 아파서 ‘지인이 보낸 부고장 URL도 누르지 말라’ 등 피싱 수법을 부모님께 문자로라도 알려드리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전국 방방곡곡의 아들·딸이 노력해도 50~70대를 노리는 피싱 범죄가 여전히 판을 친다. 수십~수백만 원부터 ‘억’ 소리 나는 금액까지. 피해 사례가 어찌나 많은지, 최근에는 노심초사하는 효자를 위해 피싱 사기 피해를 보상하는 ‘불효자 보험’(?)까지 나왔다. “부모님께 충분히 알려드리지 못했으니, 내 탓이오”라는 것.

불효자 보험, 덕질 보험, 반려견 산책 보험, ’차박’ 보험…. “이런 것까지 보험을 드나” 싶은 기상천외한 보험이 등장하고 있다. “보험 상품은 사회 이슈나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특정 상황에 불안감을 느끼는 소비자 심리를 공략해야 하는 만큼, 흐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 최초의 화재 보험은 1666년 런던 대화재 이후 만들어졌고, 고등 교육 중요성이 강조되던 195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학비를 지원하는 교육 보험이 처음 등장했다.

최근에는 부모님이 보이스피싱에 당할까 노심초사하는 효자를 위해 피싱 사기 피해를 보장하는 ‘불효자 보험’(?)까지 나왔다. /인터넷캡쳐

◇효자가 드는 ‘불효자 보험’

“대학 가서 효도할게.” “취업해서 효도할게.” “결혼하면 떡두꺼비 같은 손주 낳아줄게.” 그러나 효도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죄송한 마음을 품고 사는 자녀들을 공략한 상품이 ‘불효자 보험’이다(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효자 아닐까).

부모님이 보이스피싱 등 금융 사기를 당했을 때 일정 금액을 지급한다는 내용. 보험료는 월 1만원대다. 손주를 돌보다 골절상을 입거나 관절 등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보험금을 준다. 등장 배경에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있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1만1503명으로 피해 금액은 약 1931억원(피해구제 신청 접수 기준). 이 중 60대 이상의 비율이 36.4%(704억원)로 가장 높다. 50대가 29%로 뒤를 이었다.

단, 보이스피싱·스미싱 피해 최대 보장 금액은 100만원으로 ‘억 단위’를 오가는 피해의 경우 피해액에 크게 못 미칠 가능성이 높다. ‘금융안심보험’ ‘보이스피싱보험’ 등 다양한 이름으로 팔리는 이런 상품은 대부분 피해 금액 일부만 보장한다는 점에서 예방이 최선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런 보험에 들지 않았다고 불효자는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시길. 밑줄 쫙, 별표 세 개.

불효자 보험·덕질 보험·반려견 산책 보험·‘차박’ 보험…. “이런 것까지 보험을 드나” 싶은 각종 기상천외한 보험이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캡쳐

◇덕질에 나이가 어디 있나

이번엔 딸이 60대 엄마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 “딸, 엄마 사기당했어.” 엄마가 사기를? 새로운 보이스피싱 수법인가, 싶어 의심스러운데 집에 온 엄마가 풀이 죽어 있다. “우리 (임)영웅이 보려고~ 중고 장터에서 콘서트 티켓 샀는데 판매자가 잠적했어.”

일명 ‘덕질 보험’. 연예인 콘서트 티켓이나 포토 카드 등을 비롯한 각종 굿즈를 거래할 때 사기를 당하면, 최대 50만원까지 보장해주는 상품이다. ‘1일 1000원’ 등 여행자 보험처럼 하루 단위로 들 수 있다. 내 아들·딸이 상처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엄마·아빠가 든단다.

그러나 덕질에 나이가 있을 리가 있나. 14세부터 무려 70세까지(!) 가입 가능하다. 미성년은 부모님이 들어주지만, 성인은 스스로 가입할 수 있다. 가수 임영웅·안성훈 등 트로트 왕의 등장으로 팬 층이 넓어진 것이 배경 아닐지. ‘아줌마 팬’, ‘할머니 팬’도 티켓 사기 당하면 슬프다.

14세부터 무려 70세까지(!) 가입 가능한 일명 '덕질 보험'. /인터넷캡쳐
일명 '덕질 보험'. 덕질에 나이가 어디 있겠어~. /인터넷캡쳐

◇첫째도 약관, 둘째도 약관

반려견이 산책을 하다가 타인의 반려견을 물었다면? 보장 가능. 연간 최종 보험료는 ‘견(犬)종’과 ‘산책 횟수’에 따라 달라진다. 1년간 산책 횟수를 소형견 1900회(1회당 38원), 대형견 4850회(1회당 97원) 기준으로 책정했다. 요즘 인기인 ‘차박(車泊·차에서 숙박)’을 하며 바비큐를 굽다 손을 데었다면? 차박 보험. 컨디션은 안 좋은데 부장이 “자, 주말에 다 같이 등산 한번 갑시다~” 제안하면? 원데이 등산 보험.

주로 젊은 층이 들 가능성이 높은 이런 보험 상품 출시는 잠재 고객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업계는 말한다. 2030세대는 상대적으로 건강 보험 등의 필요성을 적게 느끼지만 미래 주요 고객층이 될 수 있는 만큼 보험에 대한 친숙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라는 것.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소비자와 ‘콘택트 포인트’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불효자 보험이나 덕질 보험 같은 상품이 등장하는 것”이라며 “일부 상황만 콕 집어 보장하는 핀셋 보장 형태가 많은 만큼 보험 약관을 잘 살펴보고 가입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