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이 두 장 있다. 값은 도합 얼마일까?
무척 쉬운 연산 문제지만 답은 간단하지 않다. 한국은행이 이달 ‘5만원권 연결형 은행권’을 내놨다. 신권 발행 시 일부러 잘라내지 않아 5만원권 두 장이 위아래로 붙어 있는, 실생활에서는 볼 수 없는 리미티드 에디션. “국민들의 화폐 수집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는 설명. 5만원권에 시도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총 8000세트가 발행됐다. 실제로 사용 가능한 돈이다. 모든 지폐 상단에는 일련번호가 적혀 있다. 발행량 관리 및 위조 방지 수단이지만 “번호가 빠를수록 매입 수요가 높다”고 한다. 한국은행 측은 이번 특별판 중 일련번호 ‘AA 9000001A’부터 ‘AA 9000100A’까지는 화폐박물관에 전시하고, 101~1000A는 따로 빼 지난 15일 경매에 부쳤다.
돈 냄새는 강렬했다. 이날 오전 10시, 수집용 화폐 전문 업체 풍산화동양행 측이 온라인 경매를 개시하자마자 응찰이 빗발쳤다. 첫 매물이 320만원에 낙찰됐다. 일련번호가 중간(501~502A)인지라 ‘최상품’이 아니었음에도. 업체 관계자는 “일련번호가 가장 빠른 101~102A 매물은 오후 경매 예정이었는데 이미 사전 응찰가가 900만원을 넘긴 상태였다”고 말했다. 사람이 몰리며 접속 불량 사태가 발생했고 결국 경매는 중단됐다. “높은 관심으로 시스템 과부하가 지속됨에 따라 경매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향후 경매 일시는 한국조폐공사와 협의해 추후 공지하겠다”는 안내문이 게시됐다. 경매 수익은 이웃 돕기 성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그렇다면 1만원 더하기 1000원은? 그때그때 다르다. 며칠 전에는 4만8400원이었다. 이른바 ‘쌍둥이 번호’ 지폐가 이 가격에 판매됐기 때문. 일련번호 숫자가 동일한 1만원권 한 장과 1000원권 한 장을 묶어 ‘흥미’를 부여함으로써 수집욕을 자극한 것이다. ‘쌍둥이’들은 현재 중고 거래 사이트에도 여럿 올라와 있다. 세 쌍둥이, 네 쌍둥이도 있다. 이를테면 일련번호가 같은 1000원·5000원·1만원·5만원권 네 쌍둥이 지폐 판매가는 40만원. 액면가 합산의 6배에 달한다. 한 판매자는 "집에 돈을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는 옛말이 있다”며 “집들이 선물로 최고”라고 소개했다.
돈이 돈 되는 세상. 혹시 20원짜리 동전의 존재를 아시는지. 대한제국 시절이던 1900년 발행된 ‘이십원 금도금 시주화(試鑄貨)’가 25일 국내 온라인 경매에 등장했다. 당시 러시아 공관에 설립된 한로은행이 찍어낸 동전. 앞면 중앙에 러시아풍 왕관을 쓴 독수리 도안, 하단에 한글로 ‘이십원’이라 적혀있다. 경매 시작가는 2억2000만원. 2014년에는 ‘20원 금화’가 1억500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국제적으로 보자면 스케일은 더 커진다. 덴마크 수집가 라스 에밀 브룬(1852~1923)의 동전 컬렉션 286개가 지난달 약 220억원에 낙찰됐다. 이 중에는 1496년 발행된 금화(약 18억원)도 있었다. 브룬은 “100년간은 팔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고, 조상님 말을 새겨들은 후손이 떼돈을 얻었다.
오래된 것만 비싼 건 아니다. 일례로 1998년 국내 생산된 500원짜리 동전은 하나에 250만원을 호가한다. 500원 동전은 1996년 1억2200만개, 1997년 6200만개가 발행됐지만, 1998년에는 외환 위기 영향으로 딱 8000개만 시중에 풀려 희소 가치가 커졌기 때문이다. 액면가가 전부는 아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한국은행 직원이 업자와 손잡고 동전을 빼돌리다 적발돼 지난해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한국조폐공사에 따르면 올해 동전 생산 계획은 4100만개. 작년(1억100만개)보다 3분의 1 가까이 줄었다. 동전 사용 수요가 감소한 현실이 반영된 것이지만, 수집가에게는 좋은 명분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