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감독의 '벌새'(2019)에서 주인공 은희. 이 영화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을 은희의 눈으로 들여다본다.

딩동딩동딩동. 심부름을 다녀온 은희(박지후)가 벨을 계속 눌러도 아파트 현관문은 열리지 않는다. 부서져라 두드려도 매한가지. “엄마, 문 열어줘! 장난치지 마! 나 왔단 말이야!” 응답 없는 문 앞에서 은희는 불안하다.

영화 ‘벌새’는 다급한 구조 요청 같은 장면으로 시작된다. 1994년 서울. 기록적으로 더웠고 맥락 없는 사건이 잇따른 해였다. 김일성이 사망했고 주사파 파동이 있었고 ‘지존파’ 조직원들이 붙잡혔다. 그리고 10월 21일, 성수대교가 거짓말처럼 붕괴됐다. 안전하다고 믿던 세계가 무너진 것이다. ‘벌새’는 그 붕괴 사고를 서사의 축으로 삼는다.

열네 살 은희에게 세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날라리 색출 작업을 하는 담임, 가족이 합심해 오빠를 외고에 보내자는 아빠, 자신에게 폭력을 일삼는 오빠, 일터와 가정에서 늘 고단한 엄마.... 1초에 90번의 날갯짓을 하는 벌새처럼, 은희는 사랑받고 싶어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관계의 균열과 상처, 붕괴를 마주한다.

은희를 존중해주고 붙잡아주는 어른은 한문 학원 선생님 영지(김새벽)뿐이다. 영지 선생님은 은희가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말을 한다. 속마음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고, ‘나’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우라고.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갑자기 사라진다.

영화 '벌새'에서 은희(가운데)가 무너진 성수대교를 바라보는 장면

‘벌새’는 그 시대의 트라우마와 사람들을 다독이는 영화다. 슬픈 일들이 더 슬퍼지는 건 혼자 슬픔을 견디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예술은 그런 경험을 사회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우리 곁에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는 상처를 미화하는 문화가 있다. 상처받은 사람이 상처를 극복해 강해지는 서사를 환영한다. 그러나 받지 않아도 될 상처는 받지 않는 편이 좋다. 처리되지 않은 슬픔을 이 영화로 다시 한번 깊이 느끼며 애도할 수 있었다.

2003년 대구지하철, 2014년 세월호, 2022년 핼러윈 등 거대한 참사는 어느 날 갑자기 덮쳐 왔다. 우리는 매일 외출했다 돌아오며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한다. 재난은 그 일상을 단절시킨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치유하는 방법을 보여줬듯이, ‘벌새’는 엔딩에서 일상을 회복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은희를 희망적으로 담았다. “다녀왔습니다” “네, 모두 다 있어요”가 평범하면서도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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