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cover)라고 하던가? 왜 그렇게 부르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가수의 노래를 자기 스타일대로 다시 부르는 걸 보며 의아하게 생각해 왔다. 왜 그런 일에 그토록 공력을 기울이는지 말이다. 그랬는데 말입니다, 제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거라는 것. 그러면 어쩔 수 없다는 것. 겪어보니 알 수 있었다.
‘흑백요리사’의 최종 결승전을 보는 중이었다. 에드워드 리가 떡을 갈아 만든 세미프레도(semifreddo)에 곁들일 막걸리 칵테일을 만드는 걸 보고 저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기에게는 이균이라는 한국 이름도 있다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균은 옛날 사람이에요. 에드워드는 위스키 마시지만 이균은 막걸리 마셔요.” 어느 날 갑자기 켄터키로 이주해 식당을 열고, 또 켄터키의 술 버번으로 ‘버번 랜드(Bourbon Land)’라는 책을 낸 그가 아니던가. 그의 인생 내력을 알기에 켄터키 음식에 버번이라면, 한식에는 막걸리라는 단순한 연설에 울림을 느꼈다. 그런 깊이는 억지로 만들 수도 없지만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힘들다.
내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막걸리 칵테일이었다. 그러니까 떡 세미프레도는 말고 막걸리 칵테일만. 떡을 익힌 후 갈고 생크림과 이탈리안 머랭을 뒤섞어 모양을 잡아 얼리기까지 해야 하는 세미프레도는 관여를 많이 해야 하는 종목이라 의욕이 일지 않았다. 막걸리 칵테일은 간단하면서 맛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꼭 먹어보고 싶은데 팔지는 않는 것 같아서 만들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먹어보지 않아도 먹은 것 같은데 정말 먹은 건 아니어서 정말 먹고 내가 상상했던 맛과 같은지 확인해보고 싶은 복합적이면서도 단순한 욕망 말이다.
맛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느낌적 느낌이 아니었다. 그간 보고 들은 것을 기반으로 한 엄밀한 판단이었달까. 일단 눈이 떠졌다. 저건 어울리지 않기 어려운 맛 조합이겠다며. 또 그가 쓴 막걸리는 해창 아닌가. 해창 막걸리는 달고, 묵직하고, 점도가 있고, 진하고 내 입맛에는 다소 쓰다. 해창의 특성을 알기에 이 술을 희석해서 옅게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도 좋았고, 여기에 참외의 은은한 단맛이 어우러지면 조화롭겠다는 확신이 들었달까. 그리고 미나리라니! 칵테일에 쓰는 허브인 셀러리, 로즈메리, 애플민트, 세이지를 떠올리며 나는 왜 그동안 막걸리로 칵테일을 만들 생각을 못 했으며, 또 미나리를 올릴 생각을 왜 못 했지, 라는 반성도 했다.
셰이커도 꺼냈다. 에드워드가 셰이커에 해창 막걸리와 소주를 넣고 야성적으로 흔들었기에 나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칵테일을 한창 마실 때 사두었지만 한 번도 쓴 적이 없던 셰이커다. 나는 간편한 걸 선호하는 사람인지라 한 잔 마시자고 셰이커까지 흔들게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균 칵테일을 ‘커버’하겠다는 의지가 나의 귀찮음 병을 제압했던 것이다.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1차 시도의 결과물은 좋지 않았다. 셰이커를 흔들다가 술을 흘려 바닥은 진득거리고, 기분이 상쾌하지 못했으며, 해창과 소주를 3대1로 섞었더니 해창의 쓴맛이 더 두드러졌고, 참외를 소극적으로 넣은 것도 별로였다. 나름 섬세하게 한다고 참외 속을 체에 걸렀는데 참외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2차 시도에서는 소주를 빼고 셰이커를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까 야성은 빼고 담담하게 가기로. 돌 얼음을 넣은 잔에 해창을 넣고 탄산수를 부었다. 3대1의 비율로 잔의 8부까지. 이번에는 속을 긁어내고 과육을 간 참외를 8부까지 차 있는 잔에 올렸다. 맥주 거품 같기도 하고 소르베 같기도 한 참외 위에 미나리를 올리고 마셨다. 2차 시도의 결과는 대성공!
며칠을 이균 칵테일을 만들어 마셨다. ‘커버의 나날’이었달까. 재료와 완성된 이미지는 공개되었지만, 비율이나 레시피는 공개되지 않아서 이런 걸 할 수가 있었다. 이균 칵테일을 ‘커버’해보신 분들의 커버담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