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라를 출발해 사마르칸트를 지나 종점 타슈켄트에 도착한 아프로시요브 열차. 중앙아시아 최초의 고속철도로 2011년 개통했다./정지섭 기자

사마르칸트는 폐허 위에 세워진 도시다. 기원전 7세기에는 고대 왕국 아프로시요브가 인도·중국·아라비아·캅카스 등을 이어주던 길목에 있었고, 실크로드 무역 중심지로 번성했다. 그러나 1220년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제국 기병대에 짓밟히면서 쑥대밭이 됐고, 한 세기 뒤 들어선 티무르의 사마르칸트에 영광의 이름을 넘겨줬다.

잊혔던 그 이름 ‘아프로시요브’가 약 800년 만에 철마(鐵馬)로 ‘부활’했다. 2011년 개통한 중앙아시아 최초의 고속철도 아프로시요브는 한국 KTX와 SRT, 일본 신칸센 등을 빼닮은 늘씬한 유선형 열차. 중앙아시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우즈베키스탄(3600만명)은 옛 소련 시절부터 교통과 물류 요충지로, 철도·도로망이 진작에 깔려 있어 공사가 어렵지 않게 진행됐다.

수도 타슈켄트에서 각각 300㎞, 590㎞ 떨어진 사마르칸트와 부하라까지 최대 시속 250㎞로 달린다. 타슈켄트를 출발해 두 시간이면 사마르칸트, 네 시간이면 부하라에 닿는다. 빠르고 편안한 데다 쾌적하기까지 하니 열차 착발 시간이 되면 각 도시 기차역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이코노미·비즈니스·VIP 세 등급이 있는데 가장 싼 이코노미석조차 KTX 특실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널찍하고 아늑하다.

다만 수요에 비해 열차 편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라서 가급적 빨리 열차표를 마련해 두는 게 좋다. 자리에 앉은 손님에게는 달콤한 초콜릿 빵과 커피가 제공되고, 뭘 더 먹으려면 수시로 지나가는 수레를 불러 세우면 된다. 아프로시요브의 현 종점은 부하라이지만, 서쪽으로 더 뻗어서 실크로드 유적이 몰려 있는 히바·누쿠스까지 총길이 1200㎞로 연장될 예정이다.

반가운 소식 하나 더. 지난 6월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고속철도 수출입 계약 체결에 따라 2027년부터는 국내에서 제작된 KTX-이음이 아프로시요브의 일원으로 실크로드를 달린다. 우즈베키스탄 철도 당국은 또 이탈리아의 관광 여행 회사 아르셀라와 손잡고 2026년 말부터 초호화 여객열차를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