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를 숙성 창고로 사용 중인 일본 나가하마 증류소. ‘교장선생’이라고 적혀 있다. /김지호 기자

초등학교 교실에 위스키가 한가득 쌓여 있다. 귀한 위스키는 교장실에, 교무실이나 학급 층수별로 그 종류도 천차만별. 음악 교실에 놓인 위스키에는 모차르트 음악이 흐르는 청진기까지 붙어 있다. 초등학교에서 웬 술타령이냐 싶겠지만 이곳은 일본 내 가장 작은 증류소인 ‘나가하마’의 숙성 창고. 폐교가 새로운 지역 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일본 시가현 나가하마시에 있는 나가하마 증류소. 1996년에 설립돼 맥주 양조사업을 해오던 증류소는 2016년부터 위스키까지 병행해서 생산하고 있다. 맥주를 증류하면 위스키가 되는 셈이니 증류기만 새로 들이면 됐던 것. 증류소에 들어서면 숙성을 제외한 위스키의 모든 공정 과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8평 남짓한 공간에서 당화, 발효, 증류까지 이뤄지는 곳이다. 연간 수천만 리터를 뽑아내는 대형 증류소와 달리, 이들이 한 해 뽑아낼 수 있는 증류액은 약 8만리터. 그마저도 365일, 증류기를 하루 1회 이상 돌려야 한다.

나가하마는 총 6개의 2000리터 워시백(Washbag·발효조)을 사용하고 있다. 각 워시(Wash·발효액)에서 증류 후 나올 수 있는 스피릿(Spirit·원액)의 양은 약 260리터. 어림잡아 오크통 하나를 채울 수 있는 용량이다. 그렇게 탄생한 나가하마 증류소의 슬로건은 ‘일양일준(一醸一樽)’. 한 번의 양조로 하나의 오크통을 채운다.

폐교를 숙성창고로 활용하고 있는 일본 시가현 나가하마 증류소. 창문이 많아 직사광선에 노출된 초등학교는 외부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극단적인 온도 차로 빠른 숙성이 이루어진다. /김지호 기자

나가하마는 내륙성 기후로 여름이 뜨겁고 습하다. 겨울철에는 폭설로 교통이 마비되기도 한다. 여름 평균 기온은 25~30도 사이. 겨울철에는 -5도까지 떨어진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숙성 방식은 폐터널과 폐교가 된 2층짜리 초등학교다. 연간 5%에 육박하는 위스키의 증발량을 조절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길이 300m의 터널은 연중 10~15도를 유지하며 습도 높은 환경을 제공한다. 온도 변화가 적을수록 위스키의 숙성도 균일하게 이뤄진다. 나가하마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원액이 터널에서 숙성을 시작하는 이유다. 안정화 작업을 거친 오크통은 초등학교로 옮겨진다. 창문이 많아 직사광선에 노출된 초등학교는 외부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극단적인 온도 차로 빠른 숙성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는 오크통과 스피릿의 화학작용을 가속화시켜 술이 빠르게 무르익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증류소의 헤드 디스틸러 이하라 유야는 “다양한 오크통이 가진 특징을 잘 표현하는 게 증류소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나가하마는 각종 와인 오크통을 사용한 위스키로 국제대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수상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증류소 견학뿐만 아니라 1박 2일 증류 체험까지 예약이 꽉 찬 상태다. 손으로 빚은 듯한 크래프트 증류소만의 매력을 경험하고 싶다면 들러보시길.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