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계절, 요즘 산에 가보면 깜짝 놀란다. 외국인이 많아서다.
서울 북한산과 관악산, 인왕산 등에서 마주치는 주말 등산객 중 20~30%는 외국인이다. 영어부터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는 물론 중앙아시아나 북유럽으로 추정되는 외국어가 등산로 곳곳에서 들린다.
외국 등산객은 20~30대 MZ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멀리서부터 눈에 띈다. 차림이 한국 등산객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평범한 면 티셔츠에 청바지나 러닝 쇼츠, 운동화에 물병 하나 들고 오는 경우가 많다. 젊은 외국 남성들로 구성된 산악마라톤팀이 산길을 바람처럼 뛰어 올라가기도 한다.
이들이 기능성 등산복·등산화에 스틱, 돗자리와 오이, 곶감, 수육에 막걸리까지 욱여넣은 배낭을 멘 한국 아저씨·아줌마들과 북한산 비봉에서 뒤섞이는 풍경을 상상해보시라.
서울뿐만이 아니다.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은 “몽블랑이나 피레네 산맥에 원정 등반 온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산악인은 “지난달 설악산에 갔더니 흔들바위까지는 한국인이 절반인데, 그 위 울산바위 가는 험준한 길과 공룡능선은 80~90%가 외국인이더라”고 전했다.
동양에서 가장 큰 바위산이라는 울산바위는 외국 MZ 사이에 ‘암벽 절경에 속초 시내와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세상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소문 났다. 마치 우리가 산티아고 순례길과 마추픽추, 옐로스톤을 죽기 전 가봐야 한다고 선망하듯.
꿈의 ‘Seoraksan’에 홀로 올라 자신을 찾는 여행을 하다 사고가 나기도 한다. 지난 4월 울산바위에서 이스라엘 20대 여성이 다쳐 119 대원들이 업고 내려왔다. 10월에도 하산길에 굴러 떨어진 스웨덴 여성의 연락을 받은 스웨덴의 남자 친구가 강원소방본부에 국제전화를 걸어 원어로 구조 요청을 했다.
K 등산이 핫한 이유는 뭘까. 영국 등반가 조지 말로리의 말을 빌리면 ‘산이 거기 있으니까’. 그것도 아주 가까이.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지로, 세계 평균(30%)의 두 배가 넘는다.
미·유럽 대도시는 대부분 평야라 국립공원급 산에 오르려면 이동에만 며칠 잡는다. 일본만 해도 산은 많지만 등산로가 위험해 현지인도 등산보단 산기슭으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도심에서도 웬만한 산에 지하철·버스로 30~40분이면 닿을 수 있다. 설악산·지리산을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도 한다.
이렇게 산을 오르면 빌딩숲과 아파트촌, 고궁 등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외국인에겐 굉장한 시각적 충격이라고 한다. “서울 구경을 강남이나 광화문에서 하는 건 하수” “한국의 진짜 매력은 산”이라고 한다.
산이 겹겹이 포개져 보이고 기암절벽이 많아 사진발 잘 받는 한국 등산 인증샷은 소셜미디어에서 큰 인기다. 특히 서울 도심 야경을 배경으로 한 일몰·야간 등반 사진은 세계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황홀한 장면이라고.
또 정상에서 컵라면과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있다거나 구간마다 화장실이 있는 것, 가파른 암벽에 계단과 난간이 설치된 것도 신기해한다. 산마다 절이 있고 역사가 있다.
하산하면 도토리묵에 파전, 막걸리, 산채비빔밥을 먹을 수 있는 맛집이 즐비하다.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재미를 누릴 수 있다.
서울관광재단이 7국 1092명에게 ‘서울에서 등산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82%가 ‘그렇다’고 했다. 서울시는 우이동 북한산 초입과 삼청동 북악산 앞에 외국인 등산안내센터를 열고 등산화·등산복을 빌려준다.
백화점에선 올해 아웃도어 제품의 외국인 구매액이 작년보다 2~3배 급증했다.
대구 앞산, 인천 계양산, 서울 안산 등 각지의 동네 산도 글로벌해졌다.
등산 커뮤니티엔 “일본에서 오는 바이어가 등산시켜 달라는데 어딜 데려가면 좋겠냐” “프랑스 친구가 ‘5시간 안팎 상급자 코스를 등반하고 한국식 뒤풀이와 사우나를 하고 싶다’며 구체적으로 주문하더라”며 ‘외국인 접대 코스’를 짜달라는 문의가 줄 잇는다.
외국인 전용 등산클럽 ‘Climbing in Korea’에는 1만6000명이 활동 중이다. 이들의 11월 모임은 한양도성과 북한산, 양주 불곡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