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외교 안보 일선에 근무했던 분들의 회고록 인심이 좀 박하다. 비밀 업무에 종사했던 분들은 더욱 그러하다.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역대 정보기관 수장들의 경우, 외교관 출신인 노신영 전 안기부장, 군인 출신인 임동원 전 국정원장의 회고록이 꽤 알려져 있지만, 다른 정보 수장들 대부분은 회고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 발간된 이병호 전 국정원장의 책, ‘좌파 정권은 왜 국정원을 무력화시켰을까’가 반가웠다. 이병호 전 원장 본인은 회고록이 아니라고 했지만, 어쨌든 그의 경륜과 식견을 읽을 수 있는 책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책을 읽던 중 의아한 대목을 발견했다. 최덕근 영사에 대한 부분이었다. 최 영사는 내가 주(駐)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 발령받기 15년 전인 1996년 10월 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피살된 당시 현직 영사였다. 우리 해외 공관원이 현직 근무 중 피살된 것은 최덕근 영사 전에도 후에도 없었다. 이병호 전 원장은 자신의 책에서 최 영사 관련 러시아 형법상 공소시효가 “국정원의 요청으로 무기한 연장되어 있다”고 했다.
2012년 최 영사 사건 관련 공소시효 업무를 맡은 것은 당시 정무 담당 영사였던 나였다. 어느 날 본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최덕근 영사 사건 관련 공소시효 완성 여부를 파악하고, 러시아 측에 공소시효 연장을 요청하라는 요지였다.
일단 사건의 전모를 파악해야 했다. 그런데 관련 문서철이 없었다.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총영사관 관내를 며칠에 걸쳐 이 잡듯이 뒤져 문서철을 복원했다.
다음은 법률 검토였다. 러시아 형사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며칠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공부한 결과, 희한한 결론에 도달했다. 러시아법에는 우리가 아는 식의 공소시효가 없다는 것이었다. 설마 싶어서 러시아법 변호사 두 명에게 각각 법률 검토를 맡겼다. 두 명의 검토 내용을 비교해 보니 내 해석과 일치했다.
법률 검토 내용은 꽤 복잡한데,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한국 법에서 공소시효란 형사사건 발생일에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국가 소추권이 소멸하여 공소 제기가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공소시효는 러시아법에 없다. 왜냐하면 러시아법에서 공소시효의 기산일은 사건 발생일이 아니라 용의자 특정 시점이기 때문이다. 용의자가 특정되지 않으면 러시아 형법상 공소시효는 아예 시작되지 않는다. 설사 특정됐다 해도 만약 그 용의자가 도주하거나 소재 불명 상태가 되면 공소시효는 중단된다. 이 경우 사법 당국은 수사를 중지하지만, 용의자가 특정되거나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면 사법절차는 언제든 제기된다. 그러니 최덕근 영사 사건의 공소시효라는 것은 애초에 완성될 수가 없는 것이다. 러시아 사법 당국은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으며, 설사 특정했다 해도 그들은 도주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을 확인받기 위해 변호사를 대동하고 러시아 연방 검찰 연해주 지청을 방문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책상에 문서철들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쌓여 있었다. 모두 최 영사 사건 파일들이었다. 러시아 측은 자기들이 최 영사 사건을 종결 처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산더미 같은 문서철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건 기록을 보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오라고도 했다. 즉석에서 일부 문서를 열람했는데, 제일 먼저 손에 잡힌 것이 처참한 사건 현장 사진이었다.
러시아 검찰은 우리 측 해석에 완벽히 동의했다. 이로써 공소시효 문제는 해소됐다. 이런 경위는 모두 본부에 상세히 보고했다. 공소시효 문제는 애당초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러시아 법상 공소시효가 국정원의 요청으로 연장되었단다. 우리나라는 형법상 공소시효를 다른 나라가 요청한다고 연장해 주나? 뭔가 보고가 잘못 올라간 것 같다.
사실 최덕근 영사를 떠올리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일면식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나라를 위해 일하다 희생된 같은 공관 근무 선배 아닌가? 그런데 해당 공관에서는 사건 문서철 하나 정리해두지 않고 있었다. 공소시효 문제 역시 조금만 검토해 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인데, 지레 호들갑을 떨었다. 더욱이 이번에 이병호 전 원장 책을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아직도 우리는 최 영사 사건에 대해 보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건의 주모자와 실행자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북한이나 제3국에 머무는 한, 국제법상 우리가 사법권을 집행하기는 난망하다. 애초에 최 영사를 해코지한 것은 특정 개인이 아니다. 형사 문제로 처벌할 일이 아닌 것이다. 사건의 진정한 주모자는 김씨 왕조를 정점으로 하는 북한 체제다. 따라서 최 영사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비례의 원칙에 따라 북한 체제에 대해 적절한 복구(復仇) 조치를 일찌감치 단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1996년 이후 대통령이, 그리고 국정원장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기억만 하고 있다. 도대체 정의는 언제 실현되는 것일까?
최 영사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내 또래였으니 아마 지금쯤 50대일 것이다. 그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부친을 잊지 않았다고.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 드리고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저 김씨 왕조 정권을 타도하고 통일을 이룸으로써 당신의 아버지를 기리겠다고. 이 지면을 빌려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