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정례씨는 1983년 5월 5일 자 조선일보에 ‘쥐잡기는커녕 제 밥까지 빼앗긴 고양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집에 쥐가 들끓어 옆집 고양이를 빌려왔지만 고양이는 쥐가 제 밥그릇에 입 대는 것도 모른 채 잠만 자더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41년, 서울 어느 아파트에 사는 홍길동씨는 요즘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쥐가 출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쥐를 의인화해 ‘서생원(鼠生員)’이라 부르지만 사람처럼 대할 수는 없는 일. 서생원들의 아파트 습격 사건이 잦아지면서 1990년대 들어 사라진 ‘쥐잡기 운동’을 다시 해야 할 판이다.
◇서울 한복판에 쥐 떼가
2019년 입주한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관리 사무소는 최근 쥐 방역을 의뢰했다. 이 아파트 입주민은 “서울 신축 단지에서 쥐가 자주 목격돼 충격받았다”고 했다. 중계동 구축 아파트에선 쥐가 거주 공간까지 침투했다. 지난달 “벽지가 누렇게 젖고 냄새가 나는 것은 물론, 천장에서 찍찍대는 소리가 들린다”는 민원이 접수된 것. 여의도 한 아파트에선 “현관문을 열어뒀더니 복도에 있던 쥐가 거실까지 들어와 눈을 마주쳤다”는 섬뜩한 경험담이 공유된다.
서울에서 ‘찍찍찍’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이 늘어난 것은 재작년부터. 직장인들로 불야성을 이루는 여의도 상가에서 쥐 떼 약 스무 마리가 쓰레기 봉투를 뒤지는 장면이 목격됐고, 작년 말 서울 지하철 2·5호선 영등포구청역 승강장에서는 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쥐가 발견됐다. 급기야 올해부턴 서생원들이 가가호호 방문(?)을 시작했다. 수십억원짜리 강남 신축 아파트도 예외가 아니다.
쥐 방역 업체들은 최근 1년 사이 방역 의뢰가 늘어난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국내 최대 방역 업체인 세스코는 “작년부터 쥐 관련 의뢰가 확실히 늘어났다”고 했고, 방역 업체 ‘방역 수사대’ 한호 대표는 “한 달에 30여 건 쥐 방역을 나가는데 강남 고급 아파트나 12층 이상 고층 아파트 의뢰 건수 비중이 높아진 게 과거와 달라진 현상”이라고 말했다.
◇쥐약 거부가 개체 수 늘렸나
1970년 ‘전국 쥐잡기 운동’을 시작할 당시 농림부는 우리나라에 쥐가 9000만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전국 540만 가구에 호두알만 한 쥐약 20g을 공짜로 줬다. 쥐약을 뿌린 지 20일 만에 4154만 마리를 소탕했다는 홍보가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다시 쥐약이라도 배포해야 하나 싶지만 문제는 ‘쥐약’이다. 한 아파트 관리 사무소는 “쥐약을 뿌리면 ‘강아지나 고양이가 쥐약 먹으면 어떻게 할 거냐’ ‘쥐약 먹은 쥐를 고양이가 먹을 수도 있다’는 항의가 빗발친다”고 했다.
쥐 개체 수 증가는 구서(驅鼠·쥐를 잡아 없애는 일) 방식의 변화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화학적 방제인 쥐약에서 직접 쥐를 잡는 물리적 방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개체 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한 전문 방역 업체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과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일명 ‘캣맘’의 민원이 늘면서 공원이나 공용 도로에도 쥐약 놓는 걸 자제하라고 한다”며 “가장 싸고 효과적인 쥐약을 쓰지 못하면서 쥐가 급격히 늘어났다”고 했다.
그러자 쥐 잡는 일에 ‘첨단 장비’까지 동원된다. 세스코는 터널식 포획용 틀에 사물인터넷(IoT)을 접목한 ‘바이퍼’라는 장비를 사용 중이다. 쥐가 들어오면 자동으로 밀폐되고, 실시간 경보를 전송한다. 쥐 사체가 노출되지 않고, 2차 오염도 막을 수 있다. 서울 강동구는 이 바이퍼를 천호 로데오거리, 명일시장 같은 쥐 출몰 지역에 설치했다. 문제는 효율성. 첨단 전문 장비를 설치하고, 24시간 감시해 전문 요원이 출동하는 구조로는 비용 대비 효과가 아쉽다.
◇길고양이, 쥐 잡을 수 있을까
쥐의 천적 고양이는 뭘 하고 있는 걸까. 동물 보호자들은 “길고양이가 줄어들어 쥐가 많아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마라도의 길고양이들을 섬 밖으로 방출하자 쥐가 늘어났다는 민원이 있었다. 정부는 지난 6년간 길고양이 개체 수 감소를 위한 중성화 사업에 100억원이 넘는 국비를 썼다. 고양이 48만935마리가 수술대에 올랐다.
“고양이가 쥐 퇴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박도 있다. 캣맘에게 사료 받아먹는 길고양이들의 사냥 본능이 퇴화됐고, 고양이 사료가 쥐의 먹이가 되며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것. 미국 뉴욕 쓰레기 재활용센터의 고양이를 관찰해 2018년 논문을 발표한 마이클 도이치는 “고양이는 배가 고프고 다른 쉬운 먹이가 없을 때만 사냥한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주는 먹이가 있거나 쥐보다 더 작고, 잡기 쉬운 야생동물이 있으면 쥐 사냥에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찌 됐건 쥐는 감염병을 옮기기도 하고, 밤마다 우다다다 천장을 달려 불면증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쥐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