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질서’라는 팻말 앞에서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뉜다. 안도하거나, 뒷걸음질 치거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철창부터 보일 것이다. 수갑도 걸려 있다. 흔히 교정(矯正) 시설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 아니나 다를까 눈높이에 ‘희망과 내일이 있는 교정’이라 적혀 있다. 더 안쪽으로 들어서면, 취조 혹은 변호사 접견용처럼 생긴 철제 책걸상이 놓여 있다. 당황할 필요 없다. 누군가 자리로 안내할 것이다. 지난봄 광주광역시 하남동에 문을 연 고깃집(’삼형제’) 풍경. 대놓고 내부에 ‘하남교도소’ 간판도 달아놨다. 창살로 구획하고 죄수복도 비치했다. 여기서 고기 굽고 술을 마시면 그 자체로 묘한 해방감이 들 것이다.
교도소를 콘셉트로 한 이색 공간이 주목받고 있다. 갈수록 전과자는 늘어도, 가보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미지의 장소. 서울 행당동 한양대 인근의 요리 주점 ‘갱생’은 입구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긴다. ‘미래를 여는 선진 교정 구현’이라는 세로 팻말이 문 옆에 떡 붙어 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 벽면에는 ‘도덕성 함양으로 건전한 삶을 살자’고 페인트로 적혀 있다. 어쩌면 술집에서 가장 필요한 도리일지 모른다. “들어와서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대화를 나누고 갱생하고 가라는 큰 뜻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식당도 눈에 띄어야 살아남는다. 테이블에 앉아 ‘트러플 치즈 감자전’ 등 예상 밖 메뉴를 훑다 고개를 드니 정면에 또 하나의 경구(警句)가 보인다. ‘반성하는 삶의 자세, 자아실현과 인격 완성.’ 누구도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 시대. 한번 갇히면 나오기 힘들 것 같은 철문 여러 개가 인테리어용으로 벽에 설치돼 있다. “실시간으로 갱생되는 기분”이라고 한 식객이 리뷰를 남겨놨다. 이곳을 방문했다면 누구나 경비 초소(카운터)를 거쳐야 한다. 전국적으로 무전취식 상습범이 활개를 치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돈을 안 내면 나갈 수 없다.
이 감옥에는 좀비가 들끓는다. 유령도 출몰한다. 전북 익산시 성당면 ‘익산 교도소 세트장’에서는 지난달 홀로그램 기술로 구현한 귀신 체험 ‘호러 홀로그램 페스티벌’이 열렸다. 교도소라는 강렬한 현장성이 공포를 극대화하는 이색 놀이터로 재탄생한 것이다. 행사 8일간 다녀간 방문객만 3만5000여 명. ‘내부자들’ ‘이로운 사기’ 등 영화·드라마 300여 편의 촬영지로 이름을 알렸으나, 효용이 계속 넓어지고 있다. 방 탈출 앱을 활용한 놀이 프로그램 ‘교도소가 살아있다’, 1박 2일 캠핑 ‘경이로운 감빵 생활’ 등 가족 단위 재미 요소가 잇따라 흥행했기 때문이다.
진짜 교도소도 변신 중이다. 50년 역사의 전남 옛 장흥교도소는 ‘빠삐용 Zip’으로 다음 달 다시 태어난다. ‘더 글로리’ ‘모범택시2′ 등 국내 유일 실제 교도소 촬영장이 복합 문화 시설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연무관은 영화 전문 서적 및 자료를 모아놓은 ‘영화로운 책방’으로, 여성 죄수를 수용하던 여사동은 창작과 집필을 위한 ‘글감옥’ 등으로 환복한다. 현대 미술 전시 ‘프리즈날레(프리즌+비엔날레)’, 수감자로 분장한 뒤 감옥 곳곳을 탐험할 수 있는 상황극 ‘프리즈놀래(프리즌+놀래)’도 열린다. 신축·이전으로 유휴 공간이 되자 5년 전 이곳을 매입한 장흥군 측은 “향후 사색과 치유의 ‘갱생 문화 발신지’로서 일상을 돌아보는 공간이 되도록 고민하겠다”고 했다.
범죄와 단죄, 국민적 염원이 담긴 인기 콘텐츠. 그리하여 교도소는 작가라면 한 번쯤 꼭 가봐야 할 곳(?)이 됐다. 지난달 22일 CJ ENM 신진 작가 창작 지원 사업 오펜(O’PEN) 작가 30여 명이 서울 구로구 남부교도소를 찾았다. 향후 드라마·영화 대본 작업을 위한 현장 학습. 백문이불여일견이기 때문이다. 3시간쯤 곳곳을 둘러보며 디테일을 체크한 배지영 작가는 “특히 기억에 남은 건 독거실(독방) 철문의 무게”라며 “쉽게 탈옥할 수 없도록 고안된 것이겠지만 육중한 철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죄의 무게를 느끼라는 숨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