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낙엽은 유독 빨리 진다고 한다. 효자로 길을 따라 사랑채까지 일렬로 빼곡히 서 있는 은행나무는 그 노오~란 잎이 비교적 이르게 떨어지는 나무 중 하나다.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서울 다른 지역보다 빨리 떨어진다”고 환경미화원들은 입을 모았다. “채광이 좋아서” 혹은 “터가 좋아서”라는 말도 있고, 한 미화원은 “나라님께 이른 가을을 선물하고 싶어서”라고도 했다.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낭만적으로 들렸다.
그러나 그 은행잎은 곧 노오~란 쓰레기로 바뀌었다. 비질을 시작하고 한동안 “낭만에 대하여~”를 흥얼거리던 나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구나. 심지어 쓰는 동안에도 낙엽이 진다. 1년에 두 번 낭만 찾았다간 두 팔 다 떨어지겠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 낙엽, 꽃잎은 전부 치워야 할 쓰레기입니다. 빗방울님만 예외지요.” 먼 옛날 한 미화원이 이런 말을 남겼다. 이맘때 전국은 노랗고 빨간 낙엽으로 뒤덮인다. 그러나 알고 계시는지. 당신이 잠든 사이에, 당신이 출근하기 전에, 누군가 낙엽을 치운다는 사실을. 미화원들이 꼭두새벽에 쓸고 난 뒤 보기 좋게 한두 장씩 다시 떨어진 낙엽을 당신이 서정적으로 “가을이구나” 하며 즈려밟는다는 사실을.
◇바람아, 멈추어다오~
지난 15일 새벽 3시 30분. “어이구, 올해 낙엽이 왜 이렇게 안 진대.” 사랑채 인근에서 만난 종로구 미화 1반 염모(58) 반장이 말했다. 그는 22년 차 베테랑 미화원. 평소 작업은 오전 5시부터지만, 낙엽 철엔 1시간 일찍 나와 일을 시작한다. 예년 같으면 이맘때 한바탕 비바람이 친 뒤 기온이 급락하며 낙엽이 절반 이상 떨어지는데, 올해는 늦더위로 아직 3분의 1도 안 졌다고. 미화원 입장에선 낙엽이 한 달 내내 찔끔찔끔 지는 것보다 사나흘에 왕창 떨어져 며칠 고생하는 게 낫단다.
그가 낙엽 쓸기용 대비(大비)를 건넸다. 이걸로 쓰는 건가? 여기를? 다? 요즘은 빗자루 대신 강한 바람이 나오는 ‘송풍기’로 낙엽을 우수수 쓸어버린다고 들었다. 난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요령을 피우고 싶었다. 은밀하게 “바람 나오는 기계는 안 쓰나요?” 물었다. 일명 ‘바람개비’. 염 반장이 “새벽엔 주택가에서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오기 때문에 쓰기 어렵다”고 했다.
입맛을 다시며 대비를 들었다. 기성품은 무겁고 솔이 짧기 때문에, 긴 가지만 골라낸 뒤 “미화원 선배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으로 불에 그을려 솔을 휘게 만든 ‘수제’ 빗자루를 쓴다고. 동화 속 마녀가 타는 빗자루처럼 꼬리가 길~었다.
낙엽을 앞으로 밀어가며 쓸기 시작했다. 캄캄한 새벽, 고요함 속에서 사각사각 낙엽 쓸리는 소리만 들린다. 처음엔 잘 쓸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낙엽이 쌓일수록 뒤로 날리고, 옆으로 날리고, 사방팔방 날리기 시작한다. 20m쯤 전진하는데 20분 정도 걸렸다. 그리고 걸어온 곳을 돌아봤다. 분명 쓸었는데 쓴 것도 아니고 안 쓴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였다. 어쩌다 아빠가 한 설거지처럼.
“솔을 앞으로 밀 때뿐 아니라 뒤로 당길 때에도 바닥에 대기 때문”이라고 했다. 뒤에서 앞으로만 쓸어야 하는데 앞에서 뒤로도 쓸고 있던 셈. 그러나 막대 든 팔을 같은 각도로 반복해 움직이다 보니 금세 어깻죽지가 뻐근해져 요령껏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의외로 은행잎은 물기를 머금어 무거웠다! 염 반장이 “새벽 비라도 내리면 바닥에 나뭇잎이 달라붙어 더 안 쓸린다”고 했다.
쓸고, 쓸고, 또 쓸었다. 줄곧 바닥만 보면서. 거북목이 되다 못해 거북이로 변할 것 같았다. 목도 굽었고, 느리고, 딱이네. 미화원은 목 디스크와 손목 부상이 잦다. 비질 때문이다. 바람이라도 살랑 불면 쓸고 지나간 곳에 나뭇잎이 또 떨어진다. 이 구역에 한동안 바람이 안 불었으면 좋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다가, 이윽고 ‘낙엽을 구태여 왜 쓸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에 도달했다.
“폐기물관리법상 쓰레기이기 때문”이라는 무미건조한 답에 이어 “비가 내리면 미끄러질 수 있고, 빗물받이를 막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매우 합리적인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그냥 입을 닫았다. 군말 없이 쓸었다.
◇송풍기 좀 쓰게 해주세요
반복 노동에 지친 난 ‘송풍기 집착녀’가 됐다. 쓸면 떨어지고, 쓸면 떨어지고! “이제 바람개비 써도 되지 않을까요?” 오전 5시 30분쯤, 조깅하는 사람들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내가 물었다. 그러자 이번엔 “조깅하는 분들께 먼지 날린다고 야단맞는다”고 한다. 염 반장이 “낙엽이 안 쓸려 있어도 야단맞으니까 어서 치우라”고 했다. 반장님, 뭘 어떡하란 말입니까.
국민에게 돌려준 청와대 방면에 도착해서야 송풍기를 쓸 수 있었다. 다만, 바람 세기가 센 ‘엔진 송풍기’ 대신 소음이 작고 세기가 다소 약한 ‘전기 송풍기’를 써야 했다. 배터리 달린 전기 송풍기 본체를 배낭처럼 둘러메고, 진공청소기 흡입구처럼 생긴 관을 쥐었다. “휘잉~” 소리와 함께 낙엽이 홍해처럼 갈라지며 썰물 빠지듯 밀리기 시작했다. 비질로는 1시간에 40~50m 깨끗이 쓸기가 어려웠는데, 30여 분 만에 100m는 거뜬. 미화원 김모(51)씨는 “낙엽을 빨리 쓸고 쓰레기를 치워야 해 늘 마음이 급하다”며 “낙엽 철 3~4주 만이라도 시민들이 송풍기 사용을 양해해 준다면 감사할 것 같다”고 했다.
◇잎만 날리냐, 먼지도 날린다
“에이취! 에취!” 이것은 경복궁 인근 대로변으로 이동한 조모씨가 연신 재채기하는 소리. 이번엔 플라타너스 잎을 쓸러 왔다. 서울 가로수는 은행나무가 가장 많고, 둘째가 플라타너스다. 은행잎과 달리 색은 갈색, 크기도 성인 손바닥만 하다.
그럼 빨리 쓸리지 않냐고? 다른 문제가 있다. 2반 반장 박성균(49)씨가 “바싹 말라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잎은 바스러지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먼지와 섞여 폴폴 날린다는 의미. 대신 은행잎보다는 가벼워 100ℓ 봉투에 담았을 때 상대적으로 들기는 수월하다.
콧물을 흘리며 봉투에 잎을 쓸어 담았다. 요령이 있다. 봉투 양옆을 넓게 양발로 밟아 고정. 쪼그리고 앉아 양팔로 한아름 잎을 감싸 안으로 밀어 넣는다. 낙엽 더미가 바닥 먼지와 함께 얼굴을 덮쳤다. 이런 이유로 미화원들은 방진 마스크를 쓴다. 하지만 착용 5분도 안 돼 갑갑하고 숨이 막혔다. 결국 벗었다. 콧물이 더 났다.
이날은 둘이 했지만 맡은 구역은 혼자 청소하는 게 원칙. 종로구청에 따르면, 미화원은 통상 오후 5시까지 시간당 2.72km의 거리를 청소한다. 쓸린 잎은 농장 등의 퇴비로 쓰거나 소각된다. 송파구처럼 은행잎이 빨리 지는 남이섬으로 보내 가을 기분 물씬 내는 ‘은행나무길’을 조성하기도 한다. 올해만 샛노란 은행잎 20t이 남이섬으로 이주.
◇젊음의 거리? 쓰레기 거리!
마지막으로 술집이 모여 있는 관철동 젊음의 거리에서 쓰레기 청소. 골목마다 꽁초와 컵라면 용기, 플라스틱병, 캔, 접착력이 있어 바닥에 딱 붙은 술집 입장용 팔찌 등이 낙엽과 엉켜 있었다. 또 양말은 왜 벗어둔 걸까. 9년 차 미화원 이재성(45)씨가 “오늘은 평일이라 깨끗(?)하네요”라고 했다. 주말엔 발 디딜 틈 없이 쓰레기가 빼곡한 전쟁터란다. 그래서 주말 역시 교대로 근무한다고.
다행히 엔진 달린 송풍기를 쓸 수 있었다. 이 시간에는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기에 가능한 일. 먹다 남은 음료가 담겨 묵직한 캔이나 병은 비질만으론 쓸기 어렵다. 허리를 굽혀 주워야 하는데, 어디 한두 개라야 말이지. 이씨는 “청소하는데 꽁초를 앞에 던지거나 ‘먼지 날린다’며 가게에서 항의할 땐 가끔 속이 상한다”며 “그래도 ‘차 한잔하라’며 음료를 건네는 시민도 많아 보람을 느끼며 일한다”고 했다.
오전 7시 반쯤, 동이 트기 시작한다. 대로변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직장인이 하루를 시작하는 오전 8시가 되면, 미화원은 새벽 근무를 마치고 ‘직접 만든’ 아침 식사를 하러 휴게실로 향한다. 이날 메뉴는 김치찌개, 연근조림, 무생채, 남도 김치.
밥까지 야무지게 얻어먹고 집으로 향하는 택시. 기사님이 “노~랗네. 가을인가 봐요”라고 했다. “저거 다 쓰레기예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앞으로는 노오~란 은행잎을 볼 때마다, 낙엽을 치우는 사람들과 이날의 비질, 송풍기가 떠오를 것 같다. 가을이 저무는 소리. 사각사각, 휘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