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의 별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삿포로 맥주의 별 말이다. 삿포로가 맛있다거나 특별하게 다가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별은 나에게 어떤 빛도 비추지 못했다. 이제는 아니다. 나는 그 별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이틀 연속으로 삿포로 맥주를 마시고 나서다. 조금 다른 조합의 삿포로 맥주를 두 잔씩 마셨다. 도쿄 긴자에 있는 삿포로 블랙 라벨 바에서였다. 긴자역 지하를 지나다가 라이언 맥주 바와 나란히 있는 삿포로 바가 눈에 들어온 날이 있었다. 뒷모습을 보인 채로 사람들이 서 있기에 보니 맥주를 마시고 있는 것 아닌가. 나도 모르게 따라 들어갔다. 나는 서서 마시는 바를 좋아하고, 지하철의 지하 통로에 붙어 있는 것도 뭔가 향수를 자극해서.
이 서서 마시는 바에는 규칙이 있었다. 한 사람이 두 잔씩만 마실 수 있다는 것. 서서 마시는 것 말고는 그게 규칙이었다. 서서 한 잔을 마시거나 두 잔을 마시고 퇴장하는 게 이 바의 운영 방침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세 가지 맥주를 판다. 라거, 에일, 포터 이렇게 세 가지가 아니라 따르는 방식에 따른 세 가지 맥주를. 퍼펙트, 클리어, 하이브리드 이렇게. 그러니까 한 번에 이 세 가지를 모두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나는 성격이 급한 사람. 그게 어떻게 다른지 쓰여 있는 메뉴판(한국어로도 쓰여 있다)은 읽지도 않고 ‘퍼펙트’를 시켰다. 아니! 이게 맥주라고? 나는 감탄하며 단번에 잔의 3분의 2를 비웠다. 이런 건 내 사전에 없는 일이다. 예전보다는 그래도 맥주를 어느 정도 마시게 되었지만, 맥주는 배가 부른 술이고, 나는 용적률이 그리 크지 않은 나의 위장을 배려해야 한다. 나의 식탐에 비해 위장의 탄성이 매우 하찮다는 걸 인지하고 나서 조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펙트는 그렇게 마셔줘야 했다. 내가 마셔본 맥주 중에 단연 가장 맛있는 맥주였기 때문이다. 아, 그 감동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쓰지 말고 나의 표정을 보여준다면 단박에 이해되겠으나 그건 가능하지 않으니 계속 쓰기로 한다. 남아 있는 ‘퍼펙트’를 마저 마시며 한 잔만 마시고 저녁을 먹으러 가려 했던 계획을 접었다. 내게 할당된 귀중한 나머지 한 잔을 마셔야 했다. 그래서 퍼펙트 다음에 클리어를 시켰다. 클리어는 뭐, 그냥 맛있는 맥주. 평범하게 맛있는 맥주였다. 퍼펙트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첫 잔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목이 많이 말랐기 때문일까? 퍼펙트를 다시 시켜 확인하고 싶었으나 나는 이제 더 주문할 수 없었다.
평범하게 맛있는 클리어를 마신 덕분에 맥주를 따르는 방법을 숙지할 수 있었다. 첫째, 흐르는 물에 컵을 세척한다. 둘째, 탭을 열어 나오는 맥주를 버리고 컵을 기울여 맥주를 따른다. 셋째, 거품 밸브(가 따로 있다)를 열어 거품을 넘치게 받는다. 넷째, 스패출러로 거품을 컵 구연부와 맞추어 깎는다. 다섯째, 컵 밑면의 물기를 거즈로 닦는다. 여섯째, 맥주를 서빙한다. 편의상 첫째부터 여섯째로 쓰긴 했으나 맥주를 따르는 직원들의 손동작은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워서 끊김이 없었다. 공연을 보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몸놀림이었다. 맥주 한 잔에 550엔(약 5000원)을 내고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라는 생각도 함께.
‘삿’은 ‘메마른 것’, ‘포로’는 ‘큰 것’이라는 뜻의 아이누어(일본 소수민족의 언어)라고 한다. 삿포로의 별은 북극성을 상징하며, 북극성은 개척의 상징으로 홋카이도의 상징적인 건물마다 저 별이 새겨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삿포로 블랙 라벨 바에서 찍은 사진을 보다가 천장의 거대한 별 조명을 발견했다. 나는 홋카이도의 서늘한 별빛을 받으며 맥주를 마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