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릴 마스터’라는 새로운 직종이 등장했다. 지난 9월 경기도는 ‘그릴 마스터 대회’를 개최하고 시연에 참여한 전문 그릴러들에게 인증 동판을 수여했다. 커피 바리스타나 와인 소믈리에처럼, 뛰어난 고기 굽기 기술자를 장인으로 인정하고 존중하겠다는 취지다. 지난달에는 미국육류수출협회가 전국 최고의 스테이크 마스터를 뽑는 ‘미국산 스테이크 능력고사’를 진행했다. 지난해 ‘돼지고기 능력고사’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확인하고 마련한 행사다.
한국인은 더 이상 밥심으로 살지 않는다. 고기 굽기가 기술로 인정받을 만큼 고기 소비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인 1인당 돼지·소·닭고기 등 육류 소비량은 처음으로 60kg을 돌파한 60.6kg. 쌀 소비량(56.4kg)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1인당 육류 소비량은 2022년 59.8kg으로 쌀(56.7kg)을 앞질렀다. 2000년 통계와 비교하면 육류 소비는 2배 가까이 늘어난 반면 쌀 소비는 약 3분의 2로 줄었다.
◇한국인 면 소비 세계 1위
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쌀 소비는 갈수록 줄어들지만, 국수와 빵 등 분식류 소비는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쌀에 국수와 빵을 더한 탄수화물을 육류와 비교해야 올바른 한국인의 영양 섭취 현황이 보인다. 2022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1인 하루 에너지 섭취량은 남성의 경우 2013년 단백질 14.9%·지방 21.6%·탄수화물 63.5%에서 2022년 단백질 16.2%·지방 25.7%·탄수화물 58.1%로, 여성은 2013년 단백질 14.0%·지방 20.8%·탄수화물 65.2%에서 2022년 단백질 15.7%·지방 26.0%·탄수화물 58.3%로 나타났다.
단백질을 통한 에너지 섭취가 증가하고 탄수화물을 통한 에너지 섭취는 감소한 것이다. 하지만 육류와 쌀 소비량 증감만큼은 아니다. 쌀밥은 덜 먹지만 국수와 빵을 더 먹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장조사 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인의 면(파스타 제외) 소비량은 1인당 9.7kg으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17년 발간한 ‘면류 시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1인당 면류 소비량은 7.7kg으로 유로모니터 조사 결과보다는 낮다. 시장 규모가 큰 라면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한국인 1인당 라면 소비량은 75.6그릇으로, 2위인 네팔(58.4그릇)을 크게 넘어서는 압도적인 세계 챔피언이다(독일 스타티스타).
빵은 밥을 대체할 만큼 사랑받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2018년 조사에 따르면, 1인당 연간 빵 섭취량은 78~92개로 나타났다. 국내 식빵과 베이글 등 제품형 플레인 빵의 내년 시장 규모는 8645억원까지 커질 전망이다(유로모니터). 2018년(6484억원) 대비 약 33% 오른 수치다.
◇삼겹살 등 고지방 부위 편애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눈에 띄는 건 지방을 통한 에너지 섭취가 가장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영양학자들은 “한국 사람들이 지방이 많은 육류나 빵류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장 선호하는 육류는 돼지고기다. 1인당 육류 소비량 가운데 돼지고기가 30.1kg으로 절반에 가깝다. 삼겹살이 1위(62.3%), 목심이 2위(21.3%)로 지방이 많은 부위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삼겹살은 전체의 약 30%가 지방이며 이 중 포화지방이 절반을 차지한다. 반면 앞다리·뒷다릿살(3.6%) 등 저지방 부위는 즐기지 않는다. 소고기도 고지방 부위를 선호한다. 한우 등급 판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흔히 마블링(marbling)이라고 하는 근내지방도. 한우 최고 등급인 ‘투뿔(1++)’은 근내지방도가 17% 이상이다.
한국인은 빵도 지방과 당류 함량이 높은 제품을 선호한다. 국내 유통 빵의 평균 당류 함량은 22.9g으로, 1일 당류 섭취권고량(50g)의 45.8%나 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소비자(한국인)가 가장 선호하는 빵은 2위에 오른 ‘케이크(29%)’였다. 1위인 ‘기타(43%)’는 여러 종류의 빵을 아우르는데, 단팥빵·크림빵 등 케이크와 마찬가지로 설탕을 포함한 당류와 크림·버터 등 지방 함량이 높은 빵류가 대부분. 제빵업계 관계자는 “서양에서 빵이란 설탕·버터 등이 들어가지 않은 담백하고 칼로리가 높지 않은 주식인 반면, 한국인에게 빵이란 여전히 달콤한 디저트·간식이란 인식이 강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