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확산 중인 동네 병·의원 부설 ‘아동발달센터’. 성형외과·정형외과·안과·비뇨기과 등 전공을 가리지 않고 아동 발달 지연 치료 센터를 두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부모들의 불안을 노린 신종 ‘병원 장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인터넷 캡처

아이의 뒤집기나 걸음마가 조금만 늦어도, “맘마” 같은 말의 발화가 ‘조동(조리원 동기)’ 애들보다 더뎌도 부모는 걱정이 태산이다. 영유아 건강검진에서 ‘발달 지연이 의심된다’는 소견이라도 나오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부랴부랴 대학 병원에 예약 전화를 걸지만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다. “그 교수님 예약은 후년까지 꽉 차 있어요.”

이른바 ‘금쪽이 효과’로 아이의 발달과 정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집 근처에 아동발달센터가 있다면 부모들에겐 반가운 동아줄이 될 수 있다. 다섯 살 아들을 지난 1년간 동네 소아과 부설 발달센터에 보낸 정모(40)씨는 “대학 병원 진료는 엄두도 못 냈고, 가까운 센터를 수소문해 치료를 받았다”며 “발달 지연이 경미한 수준이라고 했지만 어떤 부모가 치료를 주저하겠나”라고 말했다.

이런 부모들의 불안과 공포를 파고드는 신종 ‘병원 장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성형외과·안과·정형외과 등 아동 발달 치료와는 거리가 먼 병·의원들이 아동발달센터를 설치하고 있는 것이다. 성형외과 부설 아동발달센터? 믿고 아이를 맡길 전문성이 있는 곳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래픽=송윤혜

◇비뇨기과 의사가 아동발달센터 운영

경기도 남부에 사는 김지연(42·가명)씨는 외아들 문제로 걱정이 많았다. 2020년 여름에 태어난 재훈이가 또래에 비해 말이 늦었기 때문이다. 마스크 착용과 집합 금지가 일상화된 영유아기를 보낸 ‘코로나 베이비’. 주변에 같은 고민을 호소하는 엄마가 많았고, 맘카페에서 아동발달클리닉 광고를 보게 됐다. “초기 상담은 무료예요. 언어치료·놀이치료·미술치료. 우리 친구들 만날 생각에 너무 설레요!”

예약을 하고 찾아간 곳은 ‘A의원 부설 아동발달클리닉’. 같은 층의 A의원은 성형외과·피부과·비뇨기과 진료를 보고, 탈모·비만도 다루고 있었다. 김씨는 “막상 가 보니 성형외과 부설이라 너무 황당했다”며 “시설도 깨끗하고 프로그램이 다양했는데 상담실장이 보험 실비 청구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2022년 초 문을 연 A의원은 ‘비뇨의학과’ 전문의 1명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홈페이지에는 간이 성형, 피부·비만관리 전문 의료 기관으로 홍보했는데, 부설 아동발달클리닉을 열어 온 가족을 상대로 모객한 셈이다. 지난 1~2월에는 ‘학교 준비반’까지 운영했다고 한다. 준비물과 실내화·겉옷 정리, 화장실 가기 같은 평상시 학교 생활 습관, 숫자 세기·받아쓰기·발표 같은 학습 준비, 또래들과의 사회 생활 능력 등을 예습하는 과정이었다.

경기도 B산부인과의원 역시 2020년부터 부설 발달센터를 운영해 왔다. 학교와 비슷한 형식으로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5교시로 나눠 언어·음악·체육·인지 등의 그룹 수업과 개인 치료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신학기에는 ‘삼삼오오’ 이벤트를 열었다. “3월에 가족, 친구 지인 등 3명이 함께 오(5)시면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평가를 각각 5만원씩 할인!” 가정의달 5월에는 부모미술치료. “부모는 강하다고 하지만 한 아이의 부모이기 전에 나 자신도 소중한 누군가의 자식입니다.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플라워캔들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선착순 8명!” 마사지숍이나 미용실 같은 곳에서 할 법한 이벤트다.

이 B산부인과 부설 센터는 몇 년간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동센터로 꼽혔다. 이 센터는 올 초 C소아과가 인수해 같은 자리에서 운영하고 있다. C소아과는 신축 아파트가 많은 경기도 대도시에 지점 여러 곳을 두고 있는데, 모두 같은 형식으로 부설 아동발달센터를 운영 중이다. 대부분 ‘아동 발달 검사 무료’를 내세우고 있다.

세 살 아들이 C소아과 센터 중 한 곳에 다닌다는 엄마 이모(39)씨는 “언어 치료는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고 하는데 대학 병원은 대기가 너무 길었다”며 “치료를 6개월쯤 받았는데 만족한다”고 말했다. “옛 어른들 말씀처럼 36개월이 지나니 거짓말처럼 말문이 트이더라고요. 우리 애가 단순히 좀 늦은 아이일 수도 있지만, 발달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데 부모가 뭐든 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성형외과와 아동발달센터’ 같은 조합이 아주 특이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고령화·저출생 사회상을 반영하듯 요양 병원과 아동발달센터가 공존하기도 하고, 정형외과·안과·피부과 등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대학 병원 응급의학과 출신들이 모여 만든 내과·외과 진료 중심의 한 병의원 체인은 최근 아동 발달 클리닉, 도수 치료 클리닉, 문제성 손발톱 클리닉 등을 잇따라 열고 있다. 흉부외과 전문의 1명이 운영하는 경기도의 한 의원은 미용성형·백옥주사 등을 하는 뷰티웰빙센터와 헬스장처럼 꾸며놓은 스포츠 재활센터가 주력인데 같은 건물 위층에 부설 아동발달센터를 열었다.

정형외과 부설 아동발달심리클리닉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언어 치료 1만원... 안 할 이유 없어”

출생아 수는 2018년 32만6000여 명에서 2023년 23만명으로 매년 감소세다. 그런데 같은 기간 발달 지연 지급 보험금은 172억원에서 1599억원으로 9배 이상 늘었다(14개 손해보험사 취합). 아이들은 줄어드는데 ‘느린 아이’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셈.

발달 지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진단 건수가 증가하지만, 보건 당국과 보험 업계는 ‘보험금 사냥’ 같은 비즈니스가 성행하기 때문으로 의심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아동발달센터 대부분은 “실손보험 청구가 가능하다”는 점을 집중 광고하고 있다.

이런 구조다. 일반적인 사설 아동발달센터에서는 치료마다 5만원 안팎이 든다. 이 사설센터는 정부에서 주는 바우처가 아닌 한 100% 자부담이다. 반면 ‘병원 부설’ 센터는 ‘의사 처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실비 보험금 청구가 가능하다. 병원 부설 센터에선 언어 치료 1회에 약 8만원이 드는데, 6만4000원가량을 보험에서 돌려받을 수 있다. 자부담은 1만6000원 정도로, 동네 의원들은 지역화폐도 받고 있기 때문에 실제 개인이 지불하는 돈은 이보다 적을 수 있다. C소아과 센터를 다니는 이씨는 “1만원 안팎으로 언어 치료를 받을 수 있으니 안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 보험금을 청구하려면 ‘발달 지연’이라는 진단이 필요하다. 일명 ‘R코드’, 보통 진단 코드 ‘R62′를 받게 된다. R코드가 찍혀 있는 진료 확인서와 영수증, 세부 내역서 등을 제출해 진료비를 돌려받는 것이다. 이 코드를 발급하는 병원이 어디인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좀 어색하긴 해도 의사라면 누구나 가능하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형외과·비뇨의학과·산부인과 부설 아동발달센터가 우후죽순 생겨난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영업하는 보험 브로커도 다수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의 D성형외과는 E컨설팅 업체와 아동 발달 클리닉 도급 컨설팅 운영 계약을 맺었다. E사가 발달 클리닉 매출의 15%를 가져가는 조건으로, 치료 프로그램 구성이나 치료사 채용 등을 사실상 도맡아 하는 구조. D성형외과는 이름을 빌려주는 것과 보험금 청구를 위한 R코드를 발급해주는 역할이다.

◇보험 사기 우려… 소비자에게 피해 전가

사법 처리 사례도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부산지법 형사7부는 의사 면허를 빌려 운영하는 이른바 ‘사무장 병원’을 열어 발달 지연 아동들을 상대로 무면허로 진료하고, 수십억 원에 달하는 의료 급여와 보험금 등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일당에 유죄를 선고했다. 사무장 병원장은 징역 3년 6개월을, 병원 개설을 도운 소아과 전문의 4명은 벌금형 또는 징역형(집행유예)을 받았다.

경기도의 한 정형외과는 부설 수중치료센터에서 일곱 살 아이를 대상으로 1년 4개월간 수중 언어 치료를 했다며 보험금을 청구했는데, 알고 보니 평범한 수영 강습이었다. 이 센터는 의사가 직접 치료에 참여했다고 허위로 작성한 치료 일지를 보험사에 제출하기도 했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이 기형적인 아동발달센터 난립 상황을 지적했고, 보건복지부가 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8월까지 ‘아동 발달 지연’으로 건보 급여 청구 내역이 있는 의료 기관 311곳 가운데 212곳(68%)은 불법 개설 의심 기관으로 집계됐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부모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신종 보험 사기”라며 “실비를 노린 병원 부설센터가 늘어나면서 치료비는 비싸지고, 사설 발달센터는 폐업 위기에 몰려 결과적으로 일반 의료 소비자들이 비용을 떠안는다”고 했다.